이상한 내기, 귀신 쫓는 내기
이상한 내기, 귀신 쫓는 내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9.24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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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곳에는 별의별 내기가 다 있다. 기네스북에 들어가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영국 사람들은 내기를 좋아 하니까 경마부터 일기예보까지 다 내기를 한다. 얼마 전 북경 올림픽에서는 우리들끼리 축구 시합의 스코어로 내기를 걸었다. 이런 내기는 상대가 있고, 엇비슷한 상황에서 근소한 확률이 있을 때 흥미를 끈다. 우리의 축구시합 내기는 금방 시들해졌다. 미국의 라스베이거스는 합법화된 내기의 백화점과 같다. 그 주는 내기로 먹고 산다.

약 60여 년 전, 옹기종기 초가집들이 모여 있는 동네 어귀에 공동묘지가 있을 때, 10대의 말썽꾸러기들이 친구 집에 모여, 밭에서 금방 뽑아온 무를 먹고 생 트림을 하다가 내기를 한다. 누가 무서움을 안타는지, 담력이 센지 내기를 한다. 대개는 골목대장이 있기 마련이어서, 골목대장이 먼저 공동묘지에 가서 끈으로 표시를 해놓은 말뚝을 박아놓고 오면, 다음 사람이 공동묘지에 가서 그 말뚝을 뽑아오고, 다음 사람이 가서 다시 박아놓는 내기이다. 맨 마지막 차례까지 못가고 중간에 주춤거리다가 포기하는 친구들이 나오고 그들을 모아 닭서리(남의 집이나 자기 집 닭장의 홰에 들어가서 닭을 훔쳐오는 것)를 시키고, 푹 삶아 소금 찍어먹는다. 쥐도 새도 모르게 먹어치운다. 필자는 바지에 OO을 싸며 말뚝을 뽑아왔다. 집에 닭장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상대도 없이 스스로에게 내기를 거는 경우가 있다. 동네 목욕탕 습식 사우나탕에서 벌어진 일이다. 필자가 사우나를 하고 있는데 같은 또래의 사람이 들어왔다. 스스로에게 내기를 하였다. ‘저 사람 나가고 난 뒤에 나가야지’가 스스로에게 건 내기였다. 모래시계가 5분이 지나고도 한 참이 되었는데 이 사람이 나가지를 않고 있다. 그날따라 정자의 모 해수탕의 습식 사우나처럼 엄청 뜨거웠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얼마나 더 있을 것입니까?’라고 불쑥 물었다. 그 사람 대답이, ‘그러는 댁은 얼마나 더 있을 것입니까?’이었다. 둘이는 문을 박차다시피 튕겨 나와서 껄껄 웃고 말았다. 각자 스스로에게 내기를 하고 있었다.

해방 전에, 의과대학 학생들이 심야에 해부학 실습을 마치고 집으로 갈 때면, 시신(屍身)들이 있는 방에서 다 같이 나가곤 했다. 무서워서 그랬다. 그런데 한 학생이 평소에도 담력이 세기로 소문이 자자했는데, 학교 문밖을 나서는데 실습실에 책을 놓고 왔다고 혼자서 되돌아갔다. 다른 친구들은 그 친구의 담력을 믿고 있는 터라 그냥 헤어졌다. 다음 날 아침, 학교가 발칵 뒤집혔다. 혼자 실습실로 되돌아갔던 친구가 실습실 문 앞에 서 있는 상태로 죽어있었다. 그리고 실습복(흰 가운)의 뒷자락이 한 움큼 문틈에 끼여 있었다. 상상컨대 문을 잠그며 실습복이 문에 끼인 것 같았다. 그리고 막 나가려는데 귀신이 뒤에서 붙잡는 줄로 착각하고 밤새껏 발버둥 치며 스트레스를 받다가 사망한 것이다. 불행하게도 귀신 쫓기 스스로의 내기에 지고 만 것이다.

이것은 실명을 밝힐 수 없는 실화(實話)이다. 이제 가을로 접어들며, 벼 이삭들이 누렇게 변하기 시작했다. 이럴 때 정감이 넘치는 가족끼리의 이야기는 귀신이야기가 제격이다. 그래야 자손들이 제사(祭祀)를 잘 지낸다.

/ 박문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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