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하늘꽃이 피었습니다
5월 하늘꽃이 피었습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5.17 2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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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입니다. 입하를 지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하늘꽃들이 피어납니다. 세상은 온통 하얀 색 꽃이 산화락(散華落)하고 있습니다. 하늘도, 바람도, 땅도 하얗습니다. 귀도, 눈도, 마음도 하얗습니다. 하늘꽃은 넉넉장군의 고봉밥으로, 나무꾼의 초백이에도, 넋반에도, 사자반에도, 고시래반에도 소복소복 가득 피어납니다. 염전에 소금꽃 피듯 죽순의 뽀얀 속살같이 그렇게 반반(飯飯)으로 피어납니다. 도정(搗精)으로 클렌징하고 묵은지에, 된장에 하얀 꽃가지로 피었습니다. 삶도 죽음도, 사랑도 이별도, 웃음도 눈물도, 기쁨도 슬픔도 하늘꽃으로 피어났습니다.

벚꽃, 이화가 낙화한 자리에 층층이나무꽃, 조팝꽃, 하늘꽃, 아카시꽃, 불두화가 뒤질세라 피어납니다. 동백꽃이 떨어지면 동박새 작은 눈엔 촉촉이 이슬 맺히고, 소쩍새 울고 떠난 삼경 이부자리에는 전전반측(輾轉反側)·전전불매(輾轉不寐) 곡굉(曲肱) 흔적이 낭자합니다. 오동나무 보라색 꽃은 파랑새를 깃들게 하고 아카시 하얀 꽃은 꾀꼬리를 유혹합니다. 벚꽃으로 봄을 마수걸이한 이후 층층이나무꽃, 조팝꽃이 차례로 피어납니다. 아카시꽃도 진한 향수로 사박사박 소리 내며 도착합니다.

산하대지는 천원(天圓)에서 흰여울 같은 이팝꽃이 산화되어 지방(地方)에서 고두밥으로 수놓고 있습니다. 부감으로 본 이팝꽃은 시절을 쫓아 멍석 편 마당에 고루 펴널은 고두밥 같습니다. 밥이 그리워 서러운 계절에 심한 꽃멀미로 봄을 보냈습니다. ‘함께 사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야. 하늘꽃 보는 것도 사랑이야’라고 독백을 합니다.

쌀밥처럼 하얀 이팝꽃을 보니 저절로 입안에 침이 가득 고입니다. 미풍에 꽃잎 떨어져 아쉬운 마음 가득한데 깜찍한 참새가족 새 식구 나들이에 무심코 쪼아대는 노란부리참새가 얄밉습니다. 날갯짓 공부하다 하늘꽃에 불시착한 꼬리 짧은 까치새끼도 미워집니다. 엄마새의 다급한 소리에는 아랑곳없이 꽃잎 쪼기에 아예 재미를 붙였습니다.

이팝나무의 이팝이 쌀밥인 니밥 즉 니반(?飯)에서 비롯된 것은 모두 아는 사실입니다. ‘이팝’으로 발음하는 이밥은 야생 벼를 의미하는 이(?)와 밥을 의미하는 반(飯)이 합쳐진 국한문 혼용 낱말입니다. 밥을 먹는 일본사람은 활짝 핀 벚꽃을 쌀밥으로 상징하기도 합니다. 우리나 일본이나 쌀밥은 한 시대에는 귀했던 것 같습니다.

굿에서도 밥은 중심입니다. 설리화(雪梨花)라는 꽃으로 굿당을 장엄합니다. 설리화는 눈 같고 배꽃 같다는 말입니다. 장엄화이기도 하지만 영가의 밥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설리화는 하얀 조팝꽃의 다른 이름입니다. 영어로는 ‘신부의 화환(bridal wreath)’이라는 의미로 상징됩니다.

‘제사 덕에 이밥이라’는 속담은 제사 때는 아무리 어려운 살림살이라 해도 망자에게 올리는 메는 쌀밥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이밥나무 천 그루를 사만 평에 심었다. 그 위에 장경각을 모셨는데, 장경각은 법보잖아요. 법보니까 부처님이라 거기 모셔놓고, 신록이 우거질 때, 여기 사 만평에 천 그루의 이밥나무 꽃이 핀 곳만 하얀 거라. 그러면 녹음은 쟁반이 되고, 이밥나무 꽃은 하얀 쌀밥이 되어 부처님께 하얀 쌀밥 공양 올리는 것과 같이 되는 거라. 그렇게 숲 가꾸기를 하는 거라.” 통도사 서운암 성파 스님이 이팝나무를 심은 이유입니다.

“배고픈 시대에는 흰 꽃만 보아도 쌀밥이 연상된다”고 했습니다. 울타리에 활짝 핀 하얀 찔레꽃은 마치 덕석에 펼쳐 놓은 고두밥으로 보였답니다. 과거에 살았던 조부모는 배고픈 자식을 챙기느라 하얀 찔레꽃이 피면 흰 쌀밥이 생각나 꽃을 보며 서럽게 울었다고 했습니다.

양산시에서 의미를 두고 알리는 나무가 이밥나무입니다. 이팝나무가 어디엔들 없겠습니까. 인연을 모르는 어리석음 탓이겠지요. ‘부처님 공양(供養) 말고 배고픈 사람 밥을 먹여라’라는 말은 현실적인 말인 것 같습니다. 회심곡 가사에도 ‘배고픈 이 밥을 주어 아사공덕하였는가’라고 묻고 있습니다. 이 또한 종교가 실천해야할 덕목이 아니겠습니까. ‘이 설움 저 설움 해도 배고픈 설움이 제일’이라는 속담은 경험 없는 사람은 이해하기 쉽지 않겠습니다. 어느 누가 배고픔에서 자유롭겠습니까. ‘금강산도 식후경(食後景)’. 이 말에는 여유가 느껴집니다. 모두가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십시일반(十匙一飯)’,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가윗날만 같아라’, ‘가반(加飯)하십시오’라는 표현은 모두 인정이 묻어나는 정겨운 말들입니다.

하늘꽃은 이밥꽃을 비롯한 5월에 피어나는 흰 꽃의 다른 이름으로 불러보았습니다. 5월의 하늘꽃은 눈물을 흐르게 하였습니다. 하늘꽃을 처음 만난 날 아버지가 먼 길을 떠나시던 그날도 눈가에 피지 않던 하얀 눈물꽃이 새삼스럽게 두 줄기로 서럽게 피었습니다. 이팝꽃 꽃말이 ‘영원한 사랑’이라지만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깜짝사랑 영이별’이란 표현이 어울릴 것 같습니다. 인연을 만나도 인연인 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은 하늘꽃인들 이팝꽃인들 무슨 감정이 일어나겠습니까. 그저 바라만 보아도 흐뭇한 하늘꽃 피는 계절, 어떤 것이라도 감싸는 보자기 같은 하늘꽃 마음을 닮아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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