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화강의 흰뺨검둥오리
태화강의 흰뺨검둥오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5.15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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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화강대공원 십리대숲을 따라 산책길을 거닐다 보면 이따금 앙증맞은 조류의 유영(遊泳)과 마주칠 때가 있다. 큰 키에 양반 자세로 고독이라도 즐기는지 고고함을 뽐내는 왜가리나 해오라기하고는 느낌의 차원부터가 다르다. 5월의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물살을 앞장서서 가르는 어미 뒤를 쫄쫄 따라다니는 깃털 뽀송뽀송한 새끼들의 행렬…. 태화강이 나들이객들에게 덤으로 주는 또 하나의 멋진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저 귀여운 녀석들의 바른 이름은 무엇일까? ‘비오리’인가, 아니면 ‘논병아리’일까? 한동안은 그저 상상의 보따리 속에 집어넣고 다녔고, 그래도 배짱 하나는 참 편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임자를 만났다. 궁금증을 풀어헤칠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음력 사월초파일(부처님 오신 말), 월하(月下) 큰스님 수제자이자 조류생태학박사인 김성수 선생을 그의 암자(?)에서 만난 것이다. 일 년 열두 달을 태화강에서 살다시피 하는 분이니 어느 정도는 아시지 싶어 말문을 열었다. 다행스럽게도 기대는 어긋나지 않았다.

“태화강에 보이는 녀석들, 비오리도 논병아리도 아닙니다. 삼호다리 아래 중류 쪽은 흰뺨검둥오리, 선바위 근처 중상류 쪽은 청둥오리들이지요. 새끼 데리고 다니는 건 무조건 흰뺨검둥오리로 보시면 됩니다. 겨울에 남아있는 녀석(텃새)들은 1월에도 교미를 하는데 두 녀석들, 용케도 알 낳는 시기가 같습니다. 다만 흰뺨검둥오리는 암수 모두 색깔이 그저 그런 편이지만 청둥오리 수컷은 깃털 화려하고 덩치도 커서 매력덩어리입니다.” 흰뺨검둥오리(spot-billed duck)란 이름은 뺨 전체가 희고 몸은 거무스레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 풀이도 덧붙인다.

사실 조류라면 암컷들은 하나같이 자연보호색을 띠는 것이 하나의 공식이다. 이는 알을 품는 포란(抱卵) 시기에 포식자들의 눈에 안 띄기 위한 위장전술, 생존전략 같은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흰뺨검둥오리 암컷이 청둥오리 수컷을 좋아한 끝에 가끔씩은 교잡(交雜=cross, hybridization)이 이뤄질 때도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1월 중순 태화동 명정천을 둘러보고 흰뺨검둥오리 성체의 먹이사냥 모습 사진 여러 장을 인터넷에 올린 ‘정파선인’이란 블로거는 자신의 글 제목을 숫제 ‘바람난 울산 태화강 명정천의 흰뺨검둥오리’라고 달았다. ‘네이버 지식백과’는 “야생상태에서 흰뺨검둥오리와 청둥오리 사이에 간혹 잡종이 생기기도 한다”는 말로 그런 사실을 뒷받침한다.

김 선생은 흰뺨검둥오리나 청둥오리가 텃새로 둔갑한 이유도 풀어준다. “처음엔 ‘철새’였는데 기후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다 보니 텃새로 눌러앉고 만 겁니다.” ‘정파선인’은 “흰뺨검둥오리의 30% 정도가 텃새”란 주장을 펴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태화강에선 이들 두 종류의 철새가 어느 새 여름, 겨울을 안 가리고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친근한 텃새로 탈바꿈한 지 제법 시간이 지났다. 자연의 경이로움이다.

김 선생의 말 뒤끝에 파안대소(破顔大笑)가 따라붙는다. “환경변화에 적응 잘하고 어미 쫄쫄 따라다니는 모습, 어디서 많이 본 장면 안 같습니까?” 듣고 보니 그럴싸하다. 중앙정치에서건 지방정치에서건 두루 통할 수도 있는 말이란 생각에 또다시 이어지는 것은 감탄사다. 차제에 ‘계파 정치’, ‘패거리 정치’란 말 대신 ‘흰뺨검둥오리 정치’라고 이름 붙여도 괜찮지 않을까. 거 참, 김 선생 말씀, 생각할수록 언중유골(言中有骨)일세!

어쩌면 사람과 비교한다는 것은 자연에 대한 모욕 아니냐고 따져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더 이상 변명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이런 말로 맞받을 수는 있을 것 같다. “모름지기 인간은 자연에서 배워야 하는 법입니다. 특히 정치하는 분들은요…”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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