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아, 철아, 우리 철아”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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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9.23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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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의료법인제도로 종합병원 설립 결정
건립에 소요 모든 경비 부담 은행서 대출받아

‘행여 산모라도 받는 날이면 밤을 새우기 일쑤였고, 다음날의 진료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처럼 전문의 제도가 없던 시절이어서 일반의로 국가가 실시하는 시험에 합격하고 인턴을 마치면 일반의사로서 여러 가지 병을 진료해야 했다. 요즘 의사들은 아무리 돈을 많이 준다고 해도 왕진제도에 흔쾌히 찬성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24시간 대기해야 하는 완전 중노동을 누가 하려고 하겠는가. 새벽에 왕진을 다녀와서 겨우 1시간, 또는 2시간 눈을 붙이다가 날이 밝자마자 밀려드는 환자를 상대하는 날이면 돈도 귀찮아지고 그저 잠이나 푹 잤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고 했다.

20여년을 울산 시민들의 지지와 믿음을 바탕으로 ‘서울의원’과 ‘고려병원’을 성장시키는 동안 나날이 발전하는 의료기술과 의료시설의 혜택을 지역주민들에게 전달할 방법을 모색해 오던 중에 정부에서 의료법인을 법제화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의료법인이란 종합병원 설립에 뜻을 가진 사람이 본인의 재산을 출자하고 모자라는 금액은 정부의 지원을 받아서 건축, 경영하는 제도이다.

20년 가까이 개인의원과 준 종합병원을 운영하면서 영안실조차 없는 실정과 생명이 위독한 중환자들을 부산이나 대구로 이송하는 도중 구급차 안에서 사망하는 경우를 많이 봐 온 나로서는 정부의 지원 소식이 반갑기만 했다.

그 당시 울산에는 큰 수술을 감당할 수 있는 종합병원이 없었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대도시로 환자를 이송 시켰고, 이송 도중에 사망하면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서울과 인근 대도시에 한참 뒤쳐진 의료시설과 시민들의 열악한 의식을 답답하게 생각하던 차에 정부의 의료법인제도는 귀가 솔깃하는 소문이었고, 나는 내 모든 재산을 통틀어 종합병원 설립의 첫걸음을 뗐다.

종합병원은 내 청춘을 고스란히 바친 의료인의 마침표를 찍는 최종목표가 되었다. 그러나 막상 설립을 결정하고 정부의 지원내용을 확인해보니 실망스럽기 짝이 없었다. 정부의 지원이란 것이 고작 건축에 소요되는 경비를 은행권에 알선해주고 운영에 필요한 의료기를 일본에서 차관으로 주선해주는 정도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정부의 알맹이 빠진 주선으로 종합병원을 설립한 자가 건립에 소요된 모든 경비를 은행에서 대출 받아 이자까지 부담하며 차용해서 병원이 운영을 시작하면 원금과 이자를 갚아나가는 것이었다. 이처럼 병원건립에 소요되는 모든 경비를 설립자가 부담하는데 사유재산이 아니라 국유재산으로 귀속되는 불합리한 제도였다.’

<동강 선생의 미출간 자서전에서>

비영리법인(法人)에는 의료법인 외에도 학교법인, 사회복지법인, 종교법인 등이 있다. 공익을 위한다는 대의명분에는 법인들 간에 차이가 없다.

그러나 학교법인의 경우, 전통이 있는 서울의 모 사립학교처럼 후대에 와서 엉망이 되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동강선생이 이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1977년 전국에서 10번째로 의료법인 허가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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