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다
부끄럽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9.23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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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이웃 도시에서 문학상이 또 하나 제정되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공업도시로만 알려져 있는 도시에 사는 사람으로서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이 도시는 그만한 여력이 없는가? 결코 아니다. 경제적인 척도로 치자면 그 도시는 이 도시를 따라올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도시는 그런 엄청난 일을 만들어낸 것이다. 물론 그 도시는 우리 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가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라는 자부심과 그로인해 구축된 문학적 인프라가 잘 다져진 곳이라는 이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이 그 도시의 문화적 자존심이다.

그런데 이 도시는 문화적 자존심을 세우는 일에는 무관심하다. 이 도시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그런 이름을 얻을 수 있을까?

어느 날 저녁, 글 쓰는 이들이 모여 앉아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일행 중 한 명이 눈이 번쩍 뜨이는 제안을 했다.

우리, 수필문학상을 하나 만들어봅시다. 다른 장르의 문학상은 곳곳에 있으니 우리는 수필의 위상을 제대로 세우고 전국적인 규모로 자리매김할 수필문학상을 만들어 보자는 겁니다. 인구 100만이 넘는 산업 경제도시인 울산에서 제대로 된 수필문학상 하나 만들자는 거, 괜찮은 생각 아닙니까? 우리보다 인구도 적고 세수도 적은 소도시들도 탄탄한 문학상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이게 뭡니까. 부끄럽게.

그는 아주 강경한 어조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모두가 동조했다. 그럴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박수가 여기저기서 나왔다. 얼굴 표정도 환하게 밝아졌다. 모두가 힘을 합쳐 추진할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곧 회의적인 의견도 나왔다. 그 비슷한 일을 전에도 추진해 보았지만 그게 그리 녹록한 일이 아니라는 것, 시 지원이나 기업체의 지원을 받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 이미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글 쓰는 일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다는 것 등이 그 이유였다.

그런데 그들과 문학상 이야기를 하면서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활자를 멀리하는 세상이라고는 하나 작가들의 치열하지 못한 글쓰기도 부끄러워해야 하는 일이고, 문학을 외면하는 독자들, 촉각적인 재미에만 빠져드는 청소년들도 그렇다. 생각해 보면 문학이 위기에 빠진 것을 독자의 탓만 할 것이 아니다. 쉽게 글을 써대는 작가(?)들의 책임도 있고, 진정한 고민 없이 허명을 얻기 위한 글쓰기도 지탄의 대상이 된다.

내가 사는 곳이 문화의 불모지라고 투덜대면서 진정 문학이 문화의 힘으로 시민에게 다가가는 일에 대해서도 핑계가 많았다. 문예진흥기금 배분에 대한 불평도 많았고, 메세나에 적극 동참하지 않는 기업체에 대한 불평도 당연한 듯이 내뱉었다. 그 또한 부끄러운 일이다. 누구나 쉽게 읽고 다가서 마음을 위무 받을 수 있는 영혼의 통로가 바로 수필일 수 있다. 그 통로를 만들어 보자는 이야기다.

울산이 자랑할 만한 수필문학상을 만들자는 의견은 고무적이다. 수필의 향기를 진정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뽑는 일을 해를 이어간다면 수필은 사람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장르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울산이 안고 있는 불명예스러운 이름들을 걷어내는 일에도 분명 일조를 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서, 시 관계자들이나 메세나 운동에 동참하는 기업의 관계자들, 문학의 힘을 믿는 이들이 모여 그동안의 부끄러움을 벗겨내는 자리가 마련된다면 방법은 분명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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