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과 달리 그 옛날, 향수에 젖은 기성세대에게 재미있는 추억거리가 하나 있다. 대전역에서 치열하게 벌였던 가락국수 쟁탈전이다. 기차가 플랫폼에 서서히 다가가면 가락국수 한 그릇 사먹기 위해 일찌감치 내릴 채비를 해야 한다. 기차가 정지하는 몇 분 동안에 쏜살같이 먹어치워야 하는데, 가판대까지 달려가 서로 돈을 지불하면 주인은 냉큼 국수를 담고 뜨끈뜨끈한 국물을 내리붓는다. 그것을 받아들고 후룩후룩 먹어치우는 모습을 보면 가히 게걸스럽다. 꼴은 우습지만 거기에 고춧가루 한 숟가락 퍼 넣어 먹으면 맛은 기가 막힌다.
우리나라 토종물고기는 30여 종 있다. 붕어, 메기, 산천어, 미꾸라지, 잉어, 빠가사리 등이다. 그 중 토종물고기 산천어는 매년 겨울 강원도 화천에서 축제가 열릴 정도로 인기 있고 매력적인 놈이다. 외모도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특급 청정수에서만 사는 냉수 어종이라 우리에게 친근감이 더욱 있다.
여행길을 나서다보면 이 산천어는 언뜻 KTX의 외양과 빼닮았음을 알 것이다. 정면에서 보면 양 눈이 초롱초롱히 박혀 있고 아가미는 열차의 전면 돌출부와 다를 바 없다. 또 양쪽 배 부위에는 15여 개의 굵은 선이 세로로 그어져 있어 마치 울산행 9시발 123열차의 고삐 15량을 보는 듯하다. 그뿐인가. 등 위에 많은 점박이가 찍혀있는 것도 객실 하나하나의 창문을 연상하게 하니 영락없는 산천어다.
이 국산 KTX 열차는 공기저항을 줄이기 위해 몸체는 어쩌면 유선형의 ‘산천어’를 바로 모티브로 삼은 듯하다. 실제로 2010년 2월 명칭 공모를 통해 ‘ KTX-산천’을 채택하여 명명한 것도 그런 연유에서일 것이다.
기차라 하면 연상되는 말은 ‘여행’이다. 17C 영국의 역사가 풀러(T. Fuller)는 ‘널리 여행하는 사람은 세상을 많이 안다’고 했듯이 여행을 하면 현명해지고 그렇지 않으면 바보가 될 수 있다니 그 소중함을 가르치는 것 같다. 그리고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고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울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왕년의 대우그룹 회장도 세계를 폭넓게 비즈니스 여행을 하여 성공가도를 달렸지 않았나?
또한 여행이라면 빠트릴 수 없는 모험가 ‘한비야’가 있다. 7년 동안 여자의 몸으로 오지 여행을 다녀올 정도로 과감했던 그는 ‘여행은 다른 문화, 다른 사람을 만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을 만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어릴 때 아버지로부터 낡아빠진 세계지도 한 장을 선물 받고 그것에 매료되었던 그는, 열정적인 도전정신과 헌신적인 구호정신으로 모든 이에게 감동을 주지 않았나?
‘여행’을 떠나면, 준비할 때의 그 짜릿한 설렘, 일상에서의 탈출, 맛 나는 음식, 아름다운 자연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음에 너무나 행복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삶의 의미’를 찾아보는 최상의 호기라는 사실이다.
우리의 ‘삶’은 여행과 같을 것이다. 여행이 항상 즐거움과 행복만 채워주는 것이 아니듯, 우리의 삶도 어려움과 고난이 늘 상존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런 소용돌이에서도 인생의 여행길을 걷다 보면, 나의 가슴을 뛰게 하는 무엇이 분명 있다. 그것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곧 보물덩이가 아니겠나?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