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선부지 활용, 세계적 명품 나오게 고민했으면”
“폐선부지 활용, 세계적 명품 나오게 고민했으면”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6.04.26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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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자원 풍부한 매력적인 울산
편의시설·교통망 부족 아쉬워
역명바뀐 ‘태화강역’ 인지도 낮아
울산인지 알도록 역명 지어야
 

단장을 여러 차례 했을 지금의 역 건물(驛舍, 남구 산업로 654)도 속살은 예전 그대로의 느낌으로 다가온다. 대합실에서 계단을 타고 다시 미로 같은 2층 복도를 거쳐 다다른 남쪽 끝이 바로 역장 집무실이다. 시야를 잠시 바깥으로 돌려보았다. 여객승강장 좌우로 늘씬한 키를 자랑하며 철길과 나란히 일렬종대로 늘어선 소나무(赤松) 수십 그루가 호기심을 자극한다. 역사를 학성동 ‘구(舊)역전’에서 삼산동 ‘신(新)역전’으로 옮겨올 무렵(1992년 하반기)에 심은 나무들이라니 지금의 자리에서 뿌리 내린 지도 24년은 족히 넘었지 싶다.

철도인생 34년… 호계역 근무만 3년4개월

이태종(56·사진) 울산 태화강역장. 너그럽고 인자해 보이는 모습이 영락없는 ‘이웃집 아저씨’다. 국립 한국철도대학 1기를 졸업하고 1983년 철도 직에 첫발을 내디뎠으니 햇수로 어언 34년째다. 가장 오래 몸담았던 부산지방철도청과 자택(문현동)이 있는 부산이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지만 울산도 연(緣)으로 치자면 어지간히 질긴 도시다.

첫 발령지가 호계역이었고 울산역, 온산역, 남창역까지 두루 거쳤으니 그럴 만도 하겠다. 2008년에 시작한 호계역 두 번째 근무는 자그마치 3년 4개월을 채웠다. “울산지역 역 근무, 저보다 많이 한 분은 아마 없을 겁니다.”

그래서일까, 그의 울산에 대한 애착은 남다른 데가 있어 보인다. 태화강역장도 자원하다시피 해서 챙긴 직함이다. 울산의 자랑거리 ‘관광자원’에 대한 관심은 울산사람보다 더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밖에서는 울산을 ‘산업도시’ 정도로만 알고 있지만 제가 보기엔 안 그래요. 매력 있는 관광자원이 의외로 풍부한 고장인 셈이지요. 고래박물관이 있는 장생포, 남부 최대의 전통옹기 마을 외고산, 새해 해가 가장 일찍 돋는 간절곶까지 말이지요.”

“호계-강동 교통망 없어 아까워”

그는 강동 해안과 서생 지역에 대한 애정도 대단한 편이었다. 하지만 도통 박자가 안 맞았다. 누군가 맞장구라도 쳐주었으면 좋으련만.

“강동’하면 주상절리에 횟집에… 이 얼마나 좋습니까? 하긴 지금도 그렇지만 호계에서 강동 가는 버스 편이 없어요.” 그는 “아까워 죽겠다”는 말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관할 지자체에 건의도 해 보았지만 허사였다고 했다. 주말은 놔두더라도 평일에 셔틀버스라도 다니게 해주면 지역경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건데, 경주 양남을 찾은 관광객이 요기는 정자에 와서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좀체 못 버리고 있었다.

서생 지역에 대한 생각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았다. 그는 봄철 벚꽃이 만개한 시점의 서생포왜성을 먼저 떠올렸다. 관광객들을 위한 주차공간이 빈약하기 짝이 없는 사실도 안쓰러워했다. 서생포왜성이라면 임진왜란 당시 왜장 가토 기요마사의 지시로 1593년에 쌓기 시작한 바로 그 성이다.

“남부에 남아있는 30여 개 왜성 가운데 원형 보존이 가장 잘 된 성이지요. 얼마 전 지진피해를 입은 일본의 구마모토성도 가토 기요마사가 조선인 포로들을 부려 1607년에 쌓은 성 아닙니까?” 구마모토에 ‘울산’이란 이름의 마을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곁들인다. 애타게 고향을 그리워하며 ‘울산마치(蔚山町)’에 거주했을지도 모르는 조선인 포로들. 혹시 그들은 울산왜성과 서생포왜성에서 축성기술을 익혔다가 바다 건너 타향으로 끌려간 울산사람들은 아니었을까?

“옹기마을 임시승강장 활용 관광코스 구상”

이태종 역장은 서생포왜성과 옹기마을을 아우르는 관광 코스에 대한 구상도 슬쩍 털어놓는다. 그의 언급 중에는 ‘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가 열리던 해(2010)에 외고산 옹기마을에 설치했던 임시 승강장의 재활용 문제도 들어있었다. 남창역-옹기마을을 오가던 임시열차를 올해 옹기축제(5.5∼8) 때도 다니게 하면 좋을 것이라고 했다.

남창역 얘기가 나온 김에 그는 5년째 남창역 주변의 사람과 풍경을 주로 찍는다는, 직장이 온산이라는 사진작가 한 분의 이야기도 넌지시 귀띔해 준다. 그 작가의 작품들로 태화강역에서 ‘철도 사진전’이라도 한 번 열게 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에 좋은 생각이라며 흔쾌히 응낙한다.

‘울산역’ KTX에 넘겨줘 못내 아쉬워

울주군 남창역∼북구 호계역의 동해남부선 구간에는 코레일 부산경남본부 소속 6개 역이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그 중에서도 맏형 격인 태화강역은 조직 규모로만 따지면 서울∼부산 KTX열차의 중간기착지인 KTX 울산역보다 한 수 위다.

무궁화호가 하루 36회 정차하고, 여객 수는 하루 평균 5천명을 넘나든다. 역무원 수는 40명을 헤아린다. 이들 가운데는 부역장 6명(역무 분야 3명, 운전취급 분야 3명)이 3조 2교대로 역장의 업무를 뒤받쳐 준다.

이태종 역장의 영향력이 미치는 6개 역 가운데 역무원이 배치된 유인역(有人驛)은 4곳이고 나머지 2곳은 무인역(無人驛)이다. 선암역은 ‘신호장’ 개념의 무인역, 효문역은 신호 취급만 하는 무인역이다.

그러나 이 노선은 사람만 실어 나르지는 않는다. 그의 어깨에는 화물 수송의 책임도 지어져 있다. 울산항역과 장생포역의 존재가 그런 사실을 조용히 말해준다. 울산항선은 울산지역의 수출화물(컨테이너)을 부산신항까지 실어 나른다. 장생포선은 유류(항공유)를 비행장이 있는 대구까지 실어 나른다.

그러나,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이 역장에게는 아쉽고 서운한 일이 하나 있다. 2010년 11월 1일 KTX 울산역 개통과 함께 ‘울산역’이란 이름을 무력하게 빼앗기고 만 일이다.

“역명은 인지도를 반드시 감안해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태화강역’이란 이름은 한참 잘못 지어졌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울산에서는 제일 큰 역인데도 외지에서는 간이역 정도로 알고 있으니까 말입니다.”

역 이름은 보통 국토교통부와 지자체가 서로 협의해서 짓는다. 옛날은 대체로 ‘지명’ 우선이었지만 지금은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무척 다양해진 편이다. “지역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말하자면 역 이름도 마케팅 차원에서 짓고 있다고 보아야겠지요.” ‘KTX 노선의 ‘울산역’이 열차 내 방송에서는 ‘울산통도사역’으로 불린다는 말도 덧붙인다.

“남창역사,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

이 역장은 요즘 2년 후를 내다보는 버릇이 몸에 배었다. ‘2018년 말’이라면 ‘부산∼포항 복선전철화 사업’이 마무리되는 시점이다. 그날이 오면 울산에도 엄청난 변화가 찾아올 것이 분명하다.

먼저, 호계역이 간판을 내리는 대신 송정동 박상진호수공원 북쪽에 북구의 새로운 중심축이 될 새 역사가 새로 간판을 달게 될 것이다. 가칭 ‘송정역’이란 이름이 걸맞을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인다. 폐선(廢線) 조치에 따라 지금은 문화공간으로 거듭났지만, 부산에도 같은 이름의 역이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동울산역이 제격? “이름은 외지인들도 아하, 울산의 역이구나 하고 금방 알아차릴 수 있도록 배려해야지요.” 이 역장의 조언이다.

그 다음, 부산∼포항 복선전철이 개통되면 태화강역∼부전역의 운행시간은 25분, 태화강역-포항역의 운행시간은 16분이 단축될 것이다. 경주 구간은 불국사역이 빠지는 대신 신경주역이 새로운 경유역이 될 것이다.

또 하나, 폐선부지의 재활용 문제가 급부상할 것이다. 울산시 전체가 시끌시끌해질지도 모르는 이 과제는 신중하게 중·장기적으로 접근하고,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두 번째 조언이다. 미국 뉴욕시는 폐선부지 활용 방안을 10년짜리 장기 프로젝트로 삼았다는 얘기도 덧붙인다.

“폐선에 ‘레일 바이크’ 올리는 것, 그런 방안은 더 이상 거론 안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유는 간단했다. 폐선부지가 생긴 지자체마다 ‘레일 바이크’ 소리를 내다보니 ‘한물간’ 소재가 됐기 때문이다. 그 대신 울산 특유의 색깔을 살린, 우리나라 폐선부지 활용의 본보기가 나타나기를 기대했다.

또한 일제강점기(1935년)에 지어진 목재건축물 남창역사는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할 계획이다.

2018년 말, 태화강역사도 ‘신장개업’

변화는 그뿐만이 아니다. 태화강역도 신축공사를 거쳐 새롭게 탈바꿈할 것이다. “편의시설과 환승시스템을 두루 갖춘 선상역사(線上驛舍=선로 위에 역사가 있는 철도역의 형태)로 꾸밀 계획입니다.” 복선전철 개통 시기에 맞춰 늦어도 내년 3월까지 설계를 끝내고 선설공사에 들어갈 참이다.

이 역장에 따르면 태화강역 관할 구역의 전체 폐선 길이는 남창∼덕하역 6.5km를 비롯해 약 45km. 덕하역 근처 주민들은 넓은 덕하역의 땅 일부를 쪼개 덕하시장을 넓히는 방식의 역세권 개발을 바라고 있다. 효문역∼호계역 구간(12km)의 폐선부지는 울산시에서 관심이 많은 편이다.

경북 안동 임하가 고향인 이태종 역장은 등산, 트레킹, 그리고 여행이 취미다. 트레킹 코스로는 주로 동남아 여러 나라의 산악지대를 즐겨 찾았지만 일찍이 말레이시아의 코타키나발루, 네팔의 안나푸르나도 다녀온 경험이 있다.

“역마살(驛馬煞)이라도 낀 모양이지요.” 웃음도 그리 요란해 보이지는 않는다. 부인 김갑숙(55) 여사와의 사이에 출가한 딸과 외아들을 두고 있다.

글=김정주 논설실장·사진=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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