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지방화
언론의 지방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9.23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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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의 사설(社說) 논자(論者)가 새삼스럽게 언론의 지방화를 외치게 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대통령 병(presidential fever, 권력을 잡고 싶어 하는 열병)에 걸려서 어쩔 줄 몰라 하던 사람들이 만들어낸 꾀로 조그만 땅덩어리의 우리나라에서 ‘지방화’가 생겨났는데 이것을 제대로 운영하지 못하니까 민심은 다시 중앙집권적 틀로 가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정치를 중앙집권적 틀로 바꾸어도 언론은 중앙지의 틀로 바꾸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 병을 앓고 있던 사람들이 생각한 속셈은, 중앙권력을 지방자치라는 허울 좋은 간판으로 분산 시켜 허약해진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가 권력을 잡아볼 기회를 노리는 것이었다. 정치권에서 민주주의란 이름으로 지방자치를 외치니까 교육도 덩달아 교육과정(敎育課程)의 지방화를 외쳤다. 미국의 교육과정 운영을 어설프게 뒤쫓은 것이다. 미국의 넓은 땅을 약 한 달에 걸쳐 종단, 횡단, 일주해보면 정치뿐만 아니라 교육과정도 지방화 해야 함을 느낄 수 있다. 알래스카와 하와이는 빼놓고, 나머지 주들은 기후로, 지리적으로, 민속적으로, 인종적으로 상당한 차이가 있다. 한마디로 옥수수, 해바라기, 밀밭의 지평선(地平線)이 수도 없이 많은 나라이다. 교육에서는 학력으로도 큰 차이를 보인다. 당연히 교육과정이 그 지역의 특색을 고려하여 개발되어야 한다. 정치도 그런 명분을 갖고 있다. 우리나라는 울산의 향교와 안동의 향교(?)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단일 민족의 단일 언어로 된 반나절 생활권의 나라이다. 정치권력과 교육행정을 지방화 할 ‘일거리’가 없다. 지방자치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라면 ‘햇볕 정책’을 주장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났을 때, 북한에 지방자치를 건의해 보았는지 묻고 싶다. 그러나 언론은 지방화 해야 할 타당성이 다음에 있다.

둘째 이유로 서울시 의회 의장 선거가 혼탁했었다고 해서 울산시 의회 의장선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그들대로 가고, 우리는 우리대로 가는데 제대로 된 언론이 울산시민의 알 권리에 맞추어 일을 해주면 된다. 맑았는지 혼탁했는지를 시민들에게 알려줄 뿐이다. 서울에서 한자교육(漢字敎育)을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고 해서 우리가 꼭 따라야 할 필요는 없다. 대신 우리는 영어와 일본어를 더 철저하게 시키기로 하고 이것을 잘 지키는가 언론이 밝혀주면 된다. 울산의 어느 대학 J총장에게 본보가 인터뷰를 요청했을 때, 시간 조정을 하여 날짜를 잡고, 30분 인터뷰를 한 시간 가까이 하게 했다. 언론의 지방화를 행동으로 보여준 것이다. 다른 대학 K 총장은 5일 전에 날짜를 정했는데, 인터뷰 2일 전에 인터뷰 연기, 그것도 3주 뒤에 일정을 다시 잡자고 통보한다. 중앙지의 인터뷰를 그렇게 할 수 있었는가? 언론의 지방화를 철저하게 외면한다. 서울의 어느 대학 총장이 누가 되었는지 우리에게는 관심이 없고, 울산의 어느 대학 총장이 어떤 사람인지 지방지를 살펴보며 알게 되어있다. 이것이 언론의 지방화이다.

다만 지방언론이 재정이 열악하다고 해서 협박성 협찬으로 마찰을 빚으며 편향된 시각으로 공정성을 잃으면 시민들이 등을 돌린다. 신문용지가 화장지로도 인기가 없음을 알고 있을 터이다. 본보는 논설실에 직필정론(直筆正論)을 걸어놓고 있음을 애독자들께서는 인지해 주시기 바란다.

/ 박문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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