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족(洗足) 의식
세족(洗足) 의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4.24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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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족(洗足)’이란 한자 뜻 그대로 발을 씻는 의식이다. 이 성스럽고 상징적인 의식은 예수가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행한 의식이었다. 세례요한(=洗者요한)이 먼저 예수에게 베풀었고 예수도 이어받았던 세례(洗禮), 침례(沈禮) 의식은 일찍이 인도 힌두교도들이 신성시하던 의식이었다. 하지만, 두루 듣지 못한 탓인지는 모르나, 세족만큼은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하지 못할 예수 고유의 의식이었다.

세족에 대한 기록은 신약성경, 그 중에서도 ‘요한(복음)’ 13장에서만 나타난다. 이른바 ‘최후의 만찬’(=聖만찬) 자리에서 예수가 열두 제자들에게 행한 일종의 고별(告別) 의식이었다. 잠시 그 장면을 성경구절을 통해 머릿속에 떠올려 보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성경 참조)

<…만찬 때의 일이다.…(예수님께서) 식탁에서 일어나시어 겉옷을 벗으시고 수건을 들어 허리에 두르셨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부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고 허리에 두르신 수건으로 닦기 시작하셨다.…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제 발만 아니라 손과 머리도 씻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목욕을 한 이는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된다. 너희는 깨끗하다. 그러나 다 그렇지는 않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너희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라는 예수의 말을 받아 ‘깨끗하지 못한 이’가 예수를 팔아넘긴 가롯 유다(=시몬 이스카리옷의 아들 유다)라는 설명을 친절하게 덧붙인다.

가톨릭에서는 세족 의식이 행해진 날을 부활절 직전의 목요일로 본다. ‘세족목요일’(洗足木曜日, Maundy Thursday)이란 말이 그래서 생겨났다. 초기교회(=초대교회)에서는 다음날인 ‘성(聖)금요일’ 저녁예배 때 예배 인도자가 예수가 열두 제자의 발을 씻긴 것을 기념하는 뜻으로 예배 참석자 12명을 골라 발을 씻어주었다고 한다.

흥미로운 것은 세족 의식의 의미를 두고 해석이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물론 멀게는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의 분분한 해석에 기인하겠지만, 그 풀이는 개신교와 가톨릭(천주교)가 조금씩 다르고, 개신교 쪽은 그 가짓수가 더 늘어난다.

예수의 세족 의식이 제자들에겐 실로 놀랍고 경이로운 경험이었다. 너무도 파격(破格)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대인 풍습에서 발을 씻어주는 것은 하인이 상전을 위해서나 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사랑과 존경심이 극진하다 해도 포옹이나 입맞춤 정도가 최상의 표현이었다. 그러나 예수는 제자들의 그 더러운 발을 애정 어린 손으로 손수 씻어주기까지 했던 것이다.

새울산침례교회 유병곤 목사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섬김’을 가르치셨다”고 말한다. 서로 섬길 뿐만 아니라 그 섬김의 정신으로 사회적 약자를 비롯한 또 다른 사람들을 섬길 줄 알라는 본보기를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3장 14∼15절에는 “주님이며 스승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었으면,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어야 한다. 내가 너희에게 한 것처럼 너희도 하라고, 내가 본을 보여준 것이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유 목사는 그러면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고 한 예수의 말씀(마태복음 7장 12절)도 인용한다. 또 다른 성직자는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라고 한 예수의 말씀(마태복음 23장 12절)을 떠올린다.

그러나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리는 이는 드문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다. 전국적 현상이었는지도 모르지만, 4·13 총선을 앞두고 일부 정치인들은 예수가 한 일을 흉내 내어 ‘세족식’이란 것을 갖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일이 있었다. 과연 그분들은 예수의 참된 가르침을 온전히 깨닫고 실천에 옮겼던 것일까? 아니면 보여주기 식 ‘정치 쇼’를 즐겼던 것일까?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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