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의 생각 한 컷
어느 봄날의 생각 한 컷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4.18 2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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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야말로 몸살을 앓는 지구의 열꽃이 제대로 핀 듯했다. 벚꽃가지가 손을 맞잡은 도로는 터널이 되어 마치 구름 속 같았다. 사월초순의 봄은 온 집안의 사람을 모두 밖으로 불러 낸 듯 유원지마다 사람의 꽃들로 아름다웠다. 연인끼리 부부끼리 가족끼리 사진을 찍고 음식을 먹고 환담을 나누며 따가운 봄햇살도 무색한 듯 장렬한 봄의 축제는 끝이 없었다.

나도 그 무리 속에 끼어 흘러가고 있었다. 파란 하늘과 노란 개나리 그리고 지난 봄비에 아직 채 마르지 않은 까만 벚나무의 몸피와 연분홍 꽃잎…….

물 위로 늘어진 꽃가지 옆에서 한 컷의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더 이상 나는 혼자만의 사진은 찍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카메라 앞에서 혼자만의 포즈를 취한다는 것이 부담스럽고 어색해졌다. 나이 듦을 확인할 때마다 그리 유쾌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지만 좀 다른 의미의 사진을 찍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젠 어떤 날 어떤 곳에서 누구와 어떤 의미를 갖는 사진을 찍고 싶다. 그래서 가족과 아이들과 부모님과 동생들과 지인들과 함께 찍는 사진이 좋다. 그 순간의 행복을 오래 간직하고 기억하고 싶다. 누구나 젊은 시절은 혼자만의 사진을 더러 찍기도 하는 시기이고 사진 속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에 묘한 흥미도 느끼기도 하는 때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후 그런 사진들을 한참동안 들여다봐도 사진 속의 그 모습만 보일 뿐 그 외의 뚜렷한 기억이나 감정의 잔재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들을 한다.

얼마 전 어느 대중가수의 ‘가족사진’이란 제목의 노래를 들으며 눈물을 훔친 적이 있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며 불렀다는 그 사람의 마음이 내 마음에 닿았기 때문이었을까. 빛바랜 가족사진 속에서 기억해내고 읽어낸 이야기들이 애절하게 다가왔었다.

이젠 여행에서도 사진 찍는 횟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그냥 얼마간의 추억 정도를 남길 뿐이다. 대신 눈으로 가슴으로 마음으로 넘치도록 출렁거리는 순간의 희열과 감동과 애잔함마저 담으려고 애쓴다. 사실 여행을 하고 돌아와서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보면 사진에만 담으려다 정작 놓친 순간들로 아쉬웠던 적이 많았다. 어떤 피사체에 몰두하다 전체적인 느낌이나 풍경을 지나쳐버렸다는 말이다.

몇 주 전 다녀온 일본여행 중 코무덤에 갔을 때도 나는 아픈 마음에 한 장의 사진도 찍지 못했다. 교토의 어느 지역에 있던 코무덤은 임진왜란 당시 희생된 우리 조상들의 신체 일부를 묻은 안타까운 현장이라는데 실제로 무덤의 크기를 보며 그 비통함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봄날 누군가가 무덤 앞에 놓고 간 한 잔의 술과 마른 꽃이 한없이 처량했다. 더욱 아이러니하게도 그 맞은편 도로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신사가 무덤을 내려다보듯 웅장하게 버티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이르게 핀 벚꽃 잎이 하릴없이 흩날리고 있었던 기억은 어떤 한 장의 사진보다 더 선명히 가슴에 남아있다.

이 봄의 서정을 우리는 꼭 몇 장의 사진으로만 남겨야할까. 생각할 때마다 가슴속에서 꽃으로 피는 가족과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안타깝거나 행복했던 순간들조차 우리 기억 속에서 멀어지지 않게 가슴 가운데 남겨 둘 일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인생의 길’에서 ‘죽음을 기억하라. 오늘밤까지 살라. 동시에 영원히 살라.’라고 했다는 말은 순간순간의 소중한 시간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고 충실하게 살라는 의미로 나름 해석하고 싶다.

이정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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