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판은 어차피 도박판
정치판은 어차피 도박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4.17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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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기(雜技)에 잠시라도 한눈 팔아본 적 있는 한량이라면 한 번쯤 들어보았음직한 말이 있다. 바로 ‘운칠기삼(運七技三)’이란 노름판 용어다. 느낌이 속되니 만큼 풀이도 속되게 한 번 해보자. “운칠기삼이란, 노름판(도박판)에서 재주가 아무리 뛰어나도 운이 안 따라주면 말짱 도루묵(허탕)이란 뜻이 함축된 감칠맛 나는 명언(?)이다.” 솜씨가 신기(神技)에 가까운 ‘타짜’에게만 예외일 뿐이다.

이 말을 선거판에 빗대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있다. ‘기(技)’는 30%에 지나지 않지만 ‘운(運)’이야말로 70%나 된다는 주장이다. 선거판과 도박판을 동일시하는 안목이다. 지난주에 끝난 4·13 총선 결과만 뒤돌아보아도 전혀 허튼 소리는 아닐 것이다.

계파싸움으로 밤새는 줄 모르던 더불어민주당이 제1당으로 등극할 줄 누가 감히 알았겠는가?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새누리당이 제2당 신세로 전락할 줄 누가 짐작이나 했겠는가! 굳이 시선을 먼 데로 돌릴 필요도 없다. 울산바닥에서 작대기만 꽂아도 당선된다던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13.07% 포인트나 곤두박질치고, 젖 냄새 풀풀 나는 신생 국민의당 지지율이 21.07%로 치솟을 것이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그러기에 정치는, 그리고 정치의 꽃인 선거는 ‘운칠기삼’에 좌우되는 도박쯤으로 해석해도 크게 무리는 아닌 것이다.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정치와 선거는 ‘선택(選擇)의 도박(賭博)’이다. 잘만 하면 가문의 영광이나 부귀영화는 오로라도 신기루도 아니다. 주군(主君)을 잘만 만나면 떡고물쯤이야 기대고 자시고 할 것도 못 된다. 줄 세우고 줄 서기 현상은 바로 그런 연유로 되풀이되는지도 모른다. 혹자는 정치와 선거를 ‘제비뽑기’나 ‘로또복권’에 비유하기도 한다. 잘못 하면 ‘쪽박’ 신세지만 잘만 하면 ‘대박’이 터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판에서 ‘선택의 도박’에서 대박의 환희를 맛본 진영이 있다. ‘홀로서기의 달인’ 안철수 대표를 좌장으로 하는 국민의당 그룹이다. 물론 한시적 결과론이지만, 2016 상반기 한국 정치판에서 ‘제3의 물결’을 일으키려 혼신의 힘을 다했고, 그 요동치는 광경을 똑똑히 눈여겨보았고, 그 존재감을 지금도 유감없이 과시하고 있는 진영이 바로 안철수 그룹인 것이다. 그러나 ‘신(神)의 한 수’가 안겨준 대박이 언제까지 지속된다는 보장은 아무데도 없다. 도박은 어디까지나 도박일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이 정치(政治)란 ‘생물(生物)’의 생리(生理)이니까 하는 소리다.

잠시 시야를 울산바닥으로 좁혀 보자. 선택의 도박이 기승을 부린 것은 울산의 선거판도 예외가 아니었다. ‘광(光) 팔기’ 뒷얘기가 들리는 것만 보아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몇 십 배 더 능가하는 압권의 도박도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드문 것 같다. 집단탈당 사태까지 빚은 울주군 선거구의 이른바 ‘2018 감투자리 전쟁’이 그것이다.

차기 지방선거를 겨냥한 이 보이지 않는 전쟁의 이면에는 울주군 출신 광역의원 2인의 불꽃 튀는 숙명적 대결이 숨어 있었다. ‘선택의 도박’이었던 것이다. 외견상 정치인 A씨는 주군(主君)을 배신하고 군령(軍令)을 따랐고, 정치인 B씨는 군령을 배반하고 주군을 따랐다. 그 길만이 ‘2018 감투자리’를 거머쥐는 유일의 지름길이라고 판단하고 승부수를 던졌을 게 분명하다.

총선이 끝난 현 시점, 판정승은 얼핏 정치인 B씨에게 돌아간 것처럼 비쳐진다. 그러나 2년 후의 일은 아무도 모르는 법. 예측을 불허하는 정치적 상황변수가 너무도 많이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들의 정치적 선택은 도박 행위를 연상시킨다. 그렇다고 어느 한 쪽을 꼭 집어서 나무랄 일도 못 될 것 같다. 어차피 정치판은 도박판이니까!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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