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살고 싶은 곳
그가 살고 싶은 곳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4.1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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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들었던 울산에서 머무는 날도 그에게는 이제 3일밖에 남지 않았다. 3박을 하면 짐을 싸서 경기도 일산으로 이사 간다. 가슴이 찡해온다. 이유는 이제 막 정년을 맞이했고, 게다 25년전 운 좋게 그곳에 싼 값으로 구입해둔 아파트가 있어서다.

동남쪽 끝 최대공업도시 울산에서 북서쪽 끝 신도시 일산까지는 꽤나 멀다. 그는 그 먼 거리를 이렇게 생각한다. 킬로미터로 환산하면 수많은 숫자로 표시되지만 마음은 아주 가깝다고 말이다. 아마 그 동안 서울에 용무가 있을 때마다 틈틈이 가보아 점점 달라지는 모습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일 것이다.

차분히 한번 그를 따라가 보자. 지하철 일산선을 타고 서울 도심에서 40여분 타고 가면 ‘마두’(馬頭)라는 생소한 역에 다다른다. 이 역명은, 일산의 상징 정발산에서 바라보면 마을 전체 형상이 마치 말의 머리와 같다고 하여 붙여진 재미나는 이름이다. 역을 나오면 좌우에는 제법 큰 상가건물과 아파트촌이 도시계획선을 따라 즐비하게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초창기 건설된 1기 신도시로 지금은 인구가 100만이나 되는 곳이다.

그가 사는 곳은 아파트촌 안에 있는 두 개의 쾌적한 공원을 쭉 거쳐 가면 나온다. 가면서 보이는 것은 왼쪽으로 초·중·고등학교다. 일부러 그렇게 설계한 듯 사이좋게 인접해 있는 것이 편안히 느껴진다. 아무래도 그가 사는 곳은 학교와 무슨 인연이 있는지 늘 따라다니는 것 같다. 그것이야 그의 팔자니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의 집 쪽으로 가다보면 큰 분수대도 있고 널찍널찍한 벤치가 좌우에 아치형으로 배열되어있는데 마치 시골 대청마루 같다. 비가 오든 눈이 오든 아무런 지장 없이 앉아 쉴 수 있어서 좋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모여 즐겁게 이야기하는 모습이 마치 시골같이 정겨워 보인다. 주위에서 뛰노는 아이들 모습도 생기발랄하다.

저기 한 모퉁이에 조그마하고 깨끗한 공중 화장실이 있다. 지저분한 옛날 화장실은 이젠 그만 봤으면 하는 공원관리자의 한 맺힌 생각인 듯, 그 안에는 하루 시간대별 확인판이 걸려있다.

왼쪽으로 꺾어 들어가니 이젠 호젓한 길이다. 그가 이제껏 보지 못했던 보행자만의 길. 그가 바라던 먼 훗날의 무릉도원 같은 곳이 아니런가! 아니 어디에 이런 멋진 길이 또 있을까? 그는 스스로 ‘사색의 길’이라 명명하고 싶어 한다. 일본 에도 시대의 유명한 하이쿠 시인 바쇼(松尾芭蕉)가 음유했던 800리 길 ‘오쿠노호소미치’(?の細道) 같지 않은가! 영원히 그는 여기에 머물고 싶은 것이다.

길모퉁이 빵 파는 가게에 들어서니 빵집 여주인의 솔직한 이력이 벽에 걸려있어 흥미롭다. 일본 동경의 유명한 제과학교 졸업장이다. ‘위 사람은 몇 년부터 몇 년까지 본교에서 형설의 공을 쌓았음으로 이에 졸업장을 수여합니다’라는 내용이다. 주인의 이력답게 갓 구워낸 건강하고 풍미 있는 빵을 진열하고 있다. 더더욱 주인은 제빵 과정을 일일이 설명도 곁들어주고 있어 입맛을 돋우게 한다.

학교 건물이 있으면 으레 주거지 주변에는 많은 학원이 따라 다닌다. 어학원 옆에는 은행이, 그 은행 옆에는 마트, 햄버거가게, 카페, 미용실, 한의원, 스포츠센터 등 사람 사는 곳에 필요한 모든 것이 총총히 모여 있다. 정말 아늑하고 편리한 도시 속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아마 그곳이 그가 사는 곳이다. 잠을 푹 잘 수 있고 아침에 일어나 느긋하게 목욕할 수 있는 곳, 손자들이 안전히 뛰어놀 수 있는 곳, 아름다운 음악을 들으면서 좋은 생각과 멋진 글을 지어낼 수 있는 곳, 그리고 사시사철 창가 햇살을 받으며 아리땁게 꽃피는 곳. 그가 사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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