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거랑의 선거바람
벚꽃거랑의 선거바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4.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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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은 하늘도 짐짓 자제하는 눈치였다. 아침나절의 우려를 말끔히 씻어주기라도 하듯 봄비는 종일 발목이 잡혀 있었다.

활처럼 생긴 개울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 ‘궁(弓)거랑’(남구 무거생태하천)은 이날따라 ‘벚꽃 한마당’ 행사를 즐기려고 몰려든 상춘(賞春) 인파로 몸살이 다 날 지경이었다.

삼호동주민센터와 신복로터리 사이, 자그마한 다리 한 모퉁이에선 ‘기호 1번’과 ‘기호 2번’ 유세차량이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스피커의 볼륨을 높여 가고 있었다. 오후 3시가 조금 지났을까. 2번 유세차량 바로 옆 인도를 한복판을 지키고 있던 짙푸른 의상 차림의 최유경 시의원(더민주당)과 인도를 지나가던 짙붉은 선거운동복 차림의 안수일 남구의회 의장(새누리당)이 서로 얼굴을 마주쳤다. 원수(?)가 외나무다리에서 만나기라도 한 것일까.

하지만 이는 기우일 뿐이었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것은 적대(敵對)의 눈길이 아니라 다정하고 친근해 보이는 미소였다. 안수일 의장이 말문을 먼저 열었다. “우리 싸우는 사이 아닌 것, 잘 아시지요? 그런 의미에서 사진 한 장 찍읍시다.” “네, 그러시죠.” 최유경 시의원도 부드럽게 말을 받았다. 소속정당이 다른 두 지방의원은 지인의 도움으로 ‘오누이 포즈’의 사진 몇 장을 남겼다. 옆에서 지켜보던 누군가가 슬쩍 한 마디를 던졌다. “이게 바로 정치고 소통이란 거야!”

따뜻한 기운의 봄바람이 잠시 다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거랑 양쪽으로 줄지어 늘어선 벚꽃나무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이파리들을 털어내기 시작했다.

거랑 위 가설무대 확성기에선 버스터 버스터의 ‘벚꽃 엔딩’이 호흡을 맞추고 있었다. 일본의 여성 아이돌 그룹 ‘모닝구 무스메(モ-ニングむすめ=morning girls)’의 ‘사쿠라 만카이(さくら?開=벚꽃 만개)’가 굳이 없어도 좋은 풍경이었다.

올해로 8회째 맞이한 ‘벚꽃 한마당’은 있는 그대로 멋지고 훌륭한 선거운동의 무대이기도 했다. 이채익, 심규명, 박기준…. 3명의 후보와 선거운동원들은 가까운 신복로터리와 벚꽃 행사장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한 표 부탁’으로 흐르는 시간들을 붙들려고 애썼다. ‘사모님’들도 인파를 헤쳐 가며 미소 작전으로 ‘남편’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뒤질세라 유력 정치인들도 한 몫 거들기에 바빴다.

오후 5시도 더 지났을 무렵, 로터리에서 ‘기호 1번’을 연호하던 빨간 선거운동복 차림의 변식룡 시의원이 행사 운영본부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몇 분 안 지나 신사복 차림의 정치인이 잇따라 나타났다. 변 의원이 반가운 표정으로 악수와 함께 덕담을 건넸다. “우리 서로 좋은 사이 아닙니까?” 악수 상대는 ‘기호 2번’ 지원군인 김진석 전 남구청장 출마자였다. “동구, 북구의 연대 정신을 살려 야당 후보 돕기로 한 겁니다.”

또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주민센터 앞 작은 다리 쪽으로 황급히 길을 건너는 사람이 있었다. 오렌지색 차림의 노(老)정객 이 복씨였다. 십여 년 전 남구청장 선거 때 이채익 후보와 맞붙어 쓴 잔을 마신 아픈 기억 때문일까, 그의 말에는 앙금이 묻어나 있었다. “1번 말고 5번 찍어야 됩니다.”

벚꽃 한마당에는 4·13총선과는 무관한 저명인사들의 발길도 꾸준히 이어졌다. 초청인사인 서동욱 남구청장은 행사장 구석구석을 돌며 격려 인사를 건넸다. 해마다 VIP 자격으로 모습을 드러내던 박순환 전 시의회 의장(한국산업인력공단 기획·홍보이사)도 존재감 드러내기에 시간을 쪼개고 있었다. 궁거랑 무대를 밝힌 비색(秘色)의 조명은 벚꽃 이파리의 색감과 묘한 조화를 이루며 늦봄의 정취를 유감없이 내뿜고 있었다.

<김정주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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