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아철아 우리철아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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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9.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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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그룹 성장으로 울산은 급속히 팽창
서울의원 인근 땅 사들여 ‘고려병원’ 개원

‘당시 박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과 정주영 회장의 개척 정신으로, 현대그룹은 우리나라에서 굴지의 기업으로 우뚝 솟았고, 조선소를 시작으로 중공업과 자동차 공장이 세워지며 승승장구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였다. 현대그룹의 성장과 공업단지 조성으로 많은 사람들이 울산으로 유입되자 울산은 급속히 팽창했다.

급격한 변화의 물살에 휩쓸린 울산 사람들 중에는 ‘현대’ 등의 대기업에 자기 땅을 헐값으로 팔았다가 후회하는 이들도 많았고, 돈을 벌기 위해 울산에 왔다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불구가 된 사람들도 흔하게 볼 수 있었다.

울산 전체에 개발이 한참 불 때에, 내가 책임지고 있었던 조선소 내의 의무실 운영을 포기했다. 의무실 운영으로 벌어들이는 돈은 제법 많았으나 하루도 긴장을 풀지 못하고 환자들을 돌보는 일에 몸이 부대꼈고, 내 나름의 앞날에 대한 구상을 하던 중이었기에 미련 없이 의무실 운영을 포기하게 되었다.

‘서울의원’과 ‘조선소 의무실’, 두 곳의 진료를 위해 하루도 편한 잠을 자 본적이 없다가 한 곳을 포기하자 몸과 마음이 홀가분했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자 울산의 현 상황이 눈에 들어오고 나는 지금이 기회라고 생각했다.

내가 현대조선소와 ‘서울의원’을 분주히 오가는 동안 울산의 인구는 수년전에 비해 10배나 불어났고, 눈부신 발전의 모태로 하여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울산으로 몰려들었다. 저마다 부푼 꿈을 가지고 울산에서 일자리를 마련했고, 유동인구가 불어난 만큼 서울의원의 수익도 늘어 제법 많은 돈을 번 나는 서울의원 인근의 땅을 사들여 5층짜리 건물을 짓고 ‘고려병원’을 개원했다.

‘고려병원’은 울산에 처음 생긴 준 종합병원이었다.

요즘의 대형 병원에는 비할 게 못되지만 그 당시 울산에는 몇몇 개인의원만 있었을 뿐, 여러 과(科)의 진료를 동시에 볼 수 있는 병원이 없었는데, 고려병원이 최초로 개원한 것이다.’

‘서울의원’과 비슷하게 ‘고려’라는 이름은 코리아의 본래 이름이라는 점과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시대의 이미지가 작용하는 것으로 멋있어 보였다.

낱말의 뜻도 높을 고(高)에 곱고 화려하다는 려(麗)이니 대단히 곱다는, 우아한 병원이다.

의원은 일반의(一般醫) 한 사람이 여러 과의 병을 진료하는 것이고, 병원은 여러 과의 전문의(專門醫)들이 자기 전문분야를 진료하는 곳이다. 여러 전문의가 있는 고려병원을 개원하고 밤낮으로 환자들을 맞았는데 1970년대만 해도 ‘왕진(往診)’제도가 있어서 병원 일이 끝난 뒤, 한밤중에도 ‘환자 집에까지 가서(갈 往), 진료(볼 診)를 하였다.’ 이것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고단한 하루 일과를 마치고 깊은 잠에 빠졌다가 다급한 호출을 받는 밤이면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이끌고 환자를 찾아갔다.

<동강 선생의 미출간 자서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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