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불멸을 꿈꾸는가
그대 불멸을 꿈꾸는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9.2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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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위험할 까닭이 없는 일이었지만 그녀는 자기 삶의 한 순간이 다른 모든 순간들처럼 무화(無化)해버리지 않고 세월의 흐름에서 뽑혀져 나와 어느 날 어떤 빌어먹을 우연이 그것을 요구하는 날 마치 서투르게 매장된 주검처럼 되살아나리라는 그 생각에서 오는 고뇌를 쉬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 밀란 쿤데라, 『불멸』

삶의 모든 순간은 지나가버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설사 그 순간들을 동영상으로 촬영해 놓더라도 그 순간 자체가 지속되거나 되살아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그 맛의 느낌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란다. 우리 집 둘째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나면 한 동안 양치질을 꺼린다. 그 맛과 즐거움의 여운을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다. 이 아이는 나를 닮아 식욕이 매우 왕성하다. 통닭을 먹을 때면, “오! 이쁜 통닭아. 내가 맛있게 먹어줄게” 하며 무시무시한 멘트를 간드러지게 날리곤 한다. 사람들은 재미있고, 즐거운 시간이 만나면 그 순간을 줄기차게 연장하려고 애를 쓴다. 오락에 빠져 밤을 꼬박 새우기도 하고, 회식 끝에 흥이 달아올라 1차, 2차, 3차로 자리를 바꿔 가며 쾌락의 진액을 바닥까지 보고야 말듯이 발악하다 쾌락의 찌거기나 배설물에 스스로 역겨워하곤 한다.

우리의 일상 생활은 작은 불멸에 대한 집착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말 모든 순간들이 불멸하고 있다가 불쑥 불쑥 튀어나온다면 - 정말 모든 순간들이 불멸한다면, 내가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만큼만 튀어 나오지도 않을 것이다 - ‘서투르게 매장된 주검이 되살아나’는 것을 보는 것처럼 끔찍하리라. 순간순간 즉시 멸하여 무화(無化)해버린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럽고 고마운 것인가!

나는 교사이기에 내가 가르친 학생들이 내가 제공한 지식과 정보를, 나의 인간적인 면모를 되도록 오래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한 몸짓까지도…. 그러고 보니 내 몸짓은 형편없었던 것 같다! 내가 학생들에게 또는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 보여준, 어떤 몸짓 중에 기억될 만한 것이 있었던가? 한때 내가 학생들을 기억해주는 만큼 그들도 나를 기억해줄 거라고 믿으며 열 몇 개 반 학생들의 이름을 다 외운 적도 있었다. 담임을 했던 학생들에게는 생일 때마다 글을 한 편씩 적어 주거나 책을 한 권씩 선물하면서 자상함을 인정받으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이것 또한 내가 꿈꾸었던 작은 불멸이 아닌가.

나는 지금도 끊임없이 불멸을 꿈꾸고 있다. 과거에 만났던 사람들이 여전히 나를 기억해 주기를 바라면서, 지금 만나는 사람들이 나를 기억해주지 않을까봐 전전긍긍한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내가 죽으면 사람들이 나를 무엇으로 기억할 것인가에 대한 생각도 자주 하게 된다. 책이라도 한 권 남겨야 하는가. 혹자는 책이 아니면 무엇이 남게 되겠냐고 말한다. 생각해 보면 그렇기도 하다.

무자식이 상팔자이고 아들 셋이면 ‘목매달’이라고 한다. 지구 온난화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높아만 간다. 화려한 싱글을 부러워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이것이야말로 치유할 수 없는 불멸고질(不滅痼疾)이 아닌가 싶다. 나의 온전한 불멸은 자식이 아닌가. 그래서 자식에 관계되는 일이라면 다른 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기적이고 투쟁적으로 되는 것은 아닌지.

인간은 불멸을 꿈꾸는 만큼 살아 버티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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