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송망정(裁松望亭)
재송망정(裁松望亭)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3.24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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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장생의 하나로 상징되는 사철 푸른 소나무가 재선충 피해로 말라죽으면서 그루 수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 울산 동구의 대왕암 송림은 자랑스럽다. 가까운 양산 통도사의 노송 길은 건강하다. 그러나 두 곳 모두 재선충 피해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지속가능하려면 각별한 노력과 실천이 요구된다.

“우리 조상은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태어나고 소나무로 만든 관에 묻혀 땅으로 돌아갑니다. 소나무가 바로 한국인이었지요.” 소나무 사진작가 배병우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필자는 몇 자 더 보탠다. “소나무로 밥을 짓고, 소나무 잎으로 금줄을 치고, 소나무가지로 달집을 태우고, 솔잎을 깔아서 찐 송편을 먹고, 봉용(복령=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약재)으로 약을 삼습니다. 소나무는 우리 민족의 정서입니다.”

소나무는 다박솔, 청장목, 황장목, 노송 등 이름도 다양하지만 저마다 운치가 있다. 소나무는 상록수로서 불변함과 지속성으로 상징된다. 그런 연유로 임금과 왕권의 대표적 상징이 된 까닭에 ‘일월오봉도(日月五峯圖)’에도 그려져 있다.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 애국가 가사에서도 불변함이 확인된다.

소나무는 성장속도가 늦어 ‘살아 천년 죽어 만년’이라는 말도 생겼다. 소나무는 건축자재, 곽, 선박건조 재목, 제당목 등 생활에서 폭넓게 쓰일 뿐 아니라 인간의 길흉화복을 비는 당목으로도 모셔져 민중들의 예경(禮敬)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특히 한옥의 대들보로 사용될 경우 ‘성주신’으로 모셔지기도 한다. 민요 ‘성주풀이’에서는 ‘성주본이 어디메뇨. 경상도 안동 땅 제비원의 솔씨 받아 거지봉산에 던졌더니 그 솔이 점점 자라나서…’ 라는 말이 나온다. 안동 땅 제비원이 성주나무의 본이 된 것은 지형적으로 경북 북부지역에 소나무의 분포가 넓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울산발전연구원이 발간한 ‘울산의 마을민속 잊혀져가는 도시와 마을의 신’(강혜경·한삼건, 2015)을 바탕으로 울주군 제당나무 종류를 살펴봤다. 총 293곳의 제당 중 제당나무가 없는 23곳을 제외한 270곳의 제당나무 중 느티나무(102그루, 3 7.7%) 다음으로 소나무(87그루, 32.2%)가 많았다. 소나무는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고 손(損)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예경의 대상으로 친숙하다. 현재도 솔가지는 금줄에 달며, 달집살이 재료, 불교 사방찬의 쇄수게 작법구 등 벽사적인 도구로 쓰이고 있다.

울산의 지명 가운데 북구의 송정동, 울주군 범서읍의 송현(松峴=솔고개), 구영리의 뒷길 송곡(松谷=소나무 골짜기) 등은 모두 소나무 때문에 생긴 지명이다.

소나무의 천적은 사람이다. 과거 무분별한 벌목으로 봉산(封山) 제도가 실시되기도 했다. 그래서 성주풀이에서는 솔씨를 ‘거지봉산(擧之封山)’에 던졌다는 말이 나온다. 봉산에 심지 않으면 마구 베어가 재목으로 자라지 못했기 때문이다. 현재의 천적은 재선충(材線蟲)이다. 산을 오를 때면 재선충의 확산을 막기 위해 훈증 처리해 녹색 비닐로 덮어둔 모양이 무덤 같아서 볼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재송망정(裁松望亭)’이라는 말은 ‘소나무를 키워 정자를 보려 한다’는 말이다. 소나무는 오랜 기간 더디게 자라기 때문에 미래를 기약하는 의미로 쓰인다. 다박솔인 어린 소나무를 키워 청장목이되고 다시 황장목으로 키워 대들보로 정자를 만들 때까지 오랜 기간이 필요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재송망정(裁松望亭)’을 새긴 표석이 울산에 있다. 바로 울산 중구 종가로 710번지의 외솔중학교로 이 학교의 교목은 소나무다. 1981년 개교 후 34년간 사용하던 울산동중학교의 이름이 올해 3월 1일부터는 외솔중학교로 바뀌었다. 소나무가 교목인 외솔초등학교도 가까운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외솔초, 외솔중은 다 같이 외솔 최현배 선생의 올곧은 나라사랑의 뜻을 이어받은 학교다. 외솔중학교 옛 교문 왼쪽에는 2001년 11월에 세워진 재송망정의 표석이 있다. “재송망정은 작은 소나무를 심어 훗날 정자를 바라본다는 말이다.

소나무는 옛날부터 꿋꿋한 절개와 의리를 나타내며 대들보로 많이 쓰인다. 정자는 멀리 넓게 볼 수 있도록 높은 곳에 지어서 정신수양과 학문을 연마하는 공간이다. 따라서 이 교정은 훗날에 국가를 위해 훌륭한 인재를 양성한다는 뜻으로 이 표석을 세운다.”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재송망정’이라는 말은 조선 후기의 학자 송남 조재삼(趙在三.1808-1866)이 지은 ‘송남잡지(松南雜識)’에 쓰여 있다. 박경가(朴慶家. 1779 -1841)는 ‘동언고략(東言考略)’에서 재송망정과 의미가 비슷한 ‘양송견정자(養松見亭子)’라는 표현을 구사했다.

쥐 21일, 토끼 30일, 두루미 35일, 염소 150일, 사람 300일, 말 330일…. 나열한 것은 모두 임신 기간이다. 높은 곳에서 훤히 내려다보는 현실에서 빙산의 일각을 보고 다 안다고 착각한 적은 없는지 묻고 싶다. 아직도 ‘자기 논에 물 대기(我田引水)’ 식으로 쉽게 그리고 빨리 목적을 이루고자 한다면, ‘재송망정’ 네 글자의 의미를 한 번 더 되새겨볼 것을 정중히 권하고 싶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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