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잎향과 파도소리 어우러지는 ‘대왕암 공원’
솔잎향과 파도소리 어우러지는 ‘대왕암 공원’
  • 최상건 기자
  • 승인 2016.03.17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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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 대왕암공원

겨우내 얼었던 땅이 녹고 기온이 올라가기 시작하는 춘분이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하늘 아래 사람들이 모두 농사를 시작하는 달이라는 옛 조상들의 말은 춘분을 전후한 시기를 말한다.

만물이 깨어나 새로이 몸단장을 마치고 기지개를 펴는 이 때, 오랜 세월 울산을 지켜왔던 ‘전설’도 새 단장을 마치고 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천년 전,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기백이 이제는 전설로 남은 ‘대왕암공원’으로 따스한 햇살과 상큼한 바닷바람을 맞으러 떠나보자.

 

▲ 1만5천 그루의 소나무숲을 관통하는 대왕암 공원 산책로.

◇도심 속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대왕암공원

대왕암공원은 동구 일산동과 방어동 일원 94만2천㎡ 면적에 백여년을 살아온 1만5천여 그루의 소나무가 빽빽DL 모여있는 대송림과 약 7㎞의 해안산책로, 동해를 지키고자 수호신이 됐다는 옛 왕족의 전설이 서려있는 대왕암이 있다.

 

▲ 1906년 일제가 동해 해상을 장악하기 위해 설치한 울기등대.

대왕암으로 가는 길은 크게 세 가지. 슬도에서 고동섬전망대를 지나 대왕암으로 향하는 해안산책로와 일산해수욕장에서 용굴을 지나는 트래킹 코스, 대송림을 관통하는 산책로가 있다. 트래킹을 즐기지 않는다면 차량을 대왕암주차장에 세우고 대송림을 구경하며 걷는 산책로가 가장 무난하다.

대송림 산책로 코스로 들어서면 솔향이 코 끝을 간지럽히는 1만 5천여 그루의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바람이 불 때면 솔잎들이 서로 부딪히며 파도소리와 비슷한 기묘한 음색을 연주한다.

산책로 한 쪽으로 길게 늘어선 동백나무도 반겼다. 개화시기를 맞은 동백나무는 사람들이 다가와 사진을 찍자 수줍은 듯 붉은 꽃봉오리를 틔우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야만 끝을 볼 수 있는 소나무숲을 지나면 에메랄드 빛깔의 끝없이 펼쳐진 동해가 나타난다. 대왕암에 부딪혀 산산조각 난 파도는 깨어진 보석처럼 아름다운 자태를 뽐낸다.

대왕암으로 가기 위해서는 ‘대왕교’를 건너야 한다. 지난해 말 통행 안전을 이유로 옛 대왕교가 철거됐다. 새롭게 놓인 ‘신 대왕교’는 3개월의 공사를 거쳐 지난 16일 개통했다.

이 대왕교를 건너면 대왕암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대왕암은 신라 제30대 왕인 문무왕의 왕비인 자의왕후가 나라를 지키는 호국룡이 되겠다는 유언을 남긴 채 승하하자 신하들이 바위섬 아래 묻었다는 전설이 서려있는 곳이다. 그 기운 때문인지 대왕암 아래와 주변 바다엔 해초가 자라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내려온다.

대왕암 정상에서 서쪽을 바라보면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제106호로 지정된 울기등대가 서있다. 울기등대는 1905년 러일전쟁 때 나무로 지어진 등대가 시작이며 방어진항으로 배를 유도하는 역할을 맡다 1906년 3월 26일, 일제가 본격적으로 동해를 장악하기 위해 현재 위치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건설했다. 울기등대는 동해 남부 연안을 지나는 뱃길을 밝히다 새로운 등탑이 건설되면서 등대의 기능은 정지됐다.

사실 대왕암공원은 1962년 5월부터 울기공원이라 불리다 2004년 2월 대왕암공원으로 명칭이 변경됐다. 나라를 지키겠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대왕암 옆에 나라를 빼앗은 자들에 의해 세워진 등대가 공존하는 모습을 보며 역사의 아이러니를 느낄 수 있었다.

 

▲ 20년만에 교체된 대왕교를 건너 대왕암으로 향하는 시민들.

◇수많은 전설과 사연이 서려있는 대왕암공원 북쪽의 기암괴석들

대왕암과 울기등대를 뒤로 한 채, 일산해수욕장으로 향하는 해안산책로A로 들어서면 ‘고이’라는 기암괴석을 만날 수 있다. 고이는 공원 북쪽 해안가에서 가장 높다해 이름 붙여 졌으며 최근 설치된 전망대에 오르면 전하와 미포만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고이에서의 풍경은 멀리 현대중공업에서 배를 만드는 크레인과 동구의 시가지, 수 만년동안 해풍에 깎여 기괴한 모습을 한 기암괴석이 기묘한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그림처럼 그려져 있다.

고이를 지나 해안산책로를 걷다 보면 ‘거북바위’도 볼 수 있다. 생김새가 거북이와 비슷해 명명된 이 바위는 예로부터 재복을 기원하는 신성한 장소라고 전해져 내려온다.

해안산책로를 따라 좀 더 들어가면 ‘햇개비’라는 가파른 절벽이 나타난다. 옛사람들은 이곳에서 밤이면 도깨비불이 많이 날아다닌다고 해 이 같은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햇개비 절벽 앞에는 ‘민섬’이라는 조그마한 4개의 돌섬이 있다. 이 섬은 ‘민’이라는 선녀가 용궁의 근위대장과 사랑에 빠지자 옥황상제의 벌을 받고 바위섬이 되었다는 전설이 서려있다.

민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해안가에는 ‘용굴’이라는 커다란 구멍을 볼 수 있다. 뱃사람들을 괴롭히던 청룡을 용왕이 굴 속에 가두고 큰 돌로 막았다는 설화가 있는 곳이다. 민섬과 용굴은 달이 뜨는 밤이면 한 폭의 동양화처럼 보여 늦은 오후 일산해수욕장에서 대왕암으로 이어지는 트래킹 코스는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하다.

◇이야기가 녹아있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자연이 만들어낸 명승지

대왕암공원에서 이름난 명승지를 모두 돌아보는데 그리 많은 시간은 걸리지 않았다. 이 땅에 살다간 사람들이 남긴 일상은 이야기가 됐고 시간이 흐르며 전설로 피어났다.

아름다운 이야기가 녹아있는 돌들과 풍경들은 자연이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었다. 기암괴석 곳곳에 사연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었지만 내용이 너무 짧아 아쉬움을 남겼다. 대왕암공원을 찾는 이들에게 아름다운 풍경에 절절한 이야기가 좀 더 풍성하게 전달된다면 우리나라 최고의 관광지가 될 것이다.

글=최상건 기자·사진=김미선 기자

▲ 대왕암공원 입구 미르공원에 마련된 용 모양 어린이 놀이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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