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까마귀의 아사공덕(餓死功德)
떼까마귀의 아사공덕(餓死功德)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3.17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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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사공덕(餓死功德)’이라는 말은 배고픈 이를 찾아 도움 주는 것을 말하는 사자성어다. 최고의 공덕일 것이다. 마음을 돌이켜 고친다는 의미의 노래 ‘회심곡(回心曲)’에도 아사공덕을 권하고 있다. ‘배고픈 이 밥을 주어 아사공덕(餓死功德)하였던가’라는 가사다. 배고픔은 동서고금을 통해 동물의 중심에 서 있다. 곁에 붙는 정서는 서러움이다. 서러운 것 중에 배고픈 서러움보다 더한 것이 있을까. 하얀꽃 찔레꽃, 하늘꽃 이팝꽃 등 흰 꽃은 배고픈 이들에게는 모두 하얀 쌀밥을 연상시킨다. 한 시대에 쌀밥은 부의 상징이자 행복의 원동력이었다. 부모의 주검을 대하지만 슬픔에 앞서 반함(飯含)을 하면서 천석(千石) 만석(萬石)을 말하고, 제상에는 메를 올린다. 배고파 죽은 고신내를 위로하기 위해 고수레를 하며, 객귀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물밥(水飯, 물에 만 밥)을 준다. 제사상의 삽시(揷匙) 의식도 배고픔을 면하라는 상징적 의미로 느껴진다.

일꾼에게 고봉(高捧, 밥그릇 속보다 위로 높이 올려 뜨는 밥)을 건네는 것, 십시(十匙)하여 일반(一飯)을 만드는 정서도 모두 배고픔의 서러움을 채워주는 밥으로 이어진다. ‘아침에 우는 새는 배가 고파 울고요, 저녁에 우는 새는 님 그리워 운다’는 사랑 노랫말에도 밥이 있다. ‘이 뭐꼬’라는 화두를 든 선승도 삼시세끼 따뜻한 공양을 챙긴다. 깨친 부처도 사시마지(巳時麻旨=사시인 오전 9시∼11시 사이에 부처님 앞에 올리는 밥)를 받는다. ‘밥 한번 먹자’는 친구의 인사에도 밥을 귀중하게 여긴 흔적이 남아있다.

열흘을 굶긴 수컷 쥐를 상대로 성욕과 식욕을 실험했다. 한 곳에는 발정기의 암컷을 두고, 다른 한편에는 먹이를 두었다. 수컷이 갇힌 케이지를 열자 재빨리 찾아간 곳이 발정을 한 암컷이 아닌 먹이 쪽이었다. 상상을 벗어난 것이다. 오래전에 들은 이야기다. “까마귀 때문에 올해 배 농사 다 망쳤다”는 기사를 읽었다. 배 농사는 ‘평덕’ 가지에서 적화(摘花)하고, 또 적과(摘果)한 뒤에 정성들여 돌보아 3∼4개의 대과를 수확하는 농사다. 까치 등 조류는 부리로 무엇이든지 쪼는 생태적 습성이 있다. 꽃눈은 잎눈보다 일찍 도톰하게 봉오리가 되기 때문에 피해가 더하다. 특히 위로 솟은 꽃눈은 치명적이며, 떼까마귀의 취식지 이동경로에 있는 과수원일수록 꽃눈 피해의 개연성은 항시 열려있다. 까마귀가 적화에 동참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조류가 쪼는 것은 정서적으로 차이가 있어 주인의 불만이 있을 수 있다. 까마귀류는 다른 조류에 비해 학습능력이 있기에 철선(鐵線)으로 된 ‘덕’이나 발가락으로 움켜쥐어 안정적으로 휴식할 수 있는 위로 자란 가지보다 평덕 가지를 횃대로 선호한다.

조류는 인류와 다르게 서식(취식·번식 등) 환경이 건강하지 못할 경우 날아가 버림으로써 문제를 해결한다. 반면 먹을 것이 있으면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라도 다시 찾는다. 매년 겨울, 울산을 찾는 떼까마귀가 그러한 조류 중의 한 종이다. 그들은 ‘오라 한다고 오고, 가라 한다고 가는 새’가 아니다.

지난 15년간 챙겨보니 10월에 오고 4월에 갔다. 이제 그들은 번식지로 떠날 채비를 알게 모르게 서서히 준비하고 있다. 그 가운데 체중을 늘리는 것이 우선이다. 평소 하루에 먹는 양은 몸무게의 2∼5%이지만 월북(越北)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8%로 증가시켜야 한다. 날개 힘의 원동력은 탄수화물로 늘어난 몸무게에 있기 때문이다. 긴 이동거리에서 소모되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갯짓 에너지에 대비하고 번식지에 도착하여 건강한 산란을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영양 보충을 해두어야 하기 때문이다. 떼까마귀가 찾는 과수농가는 드물다. 다행히 이번에 떼까마귀가 체중을 늘리는 데는 고맙게도 울산 울주군 서생면 위양리 양암마을 과수원의 꽃눈이 보양식으로서 한 몫 했으리라 생각된다. 꽃눈 피해로 다소 가슴앓이야 했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면, 과수원 주인장은 떼까마귀를 아사(餓死)에서 구해준 공(功)을 쌓은 셈이다. 이제 돌아올 것은 떼까마귀로부터 받을 덕(德)일 것이다. 검은 깃털을 가진 떼까마귀는 철새로서 안정된 생태환경을 이용하고 있다. 지혜롭게도 겨울과 봄에는 서식지를 바꾸는 것이다. 이러한 이동은 봄에 번식지에서 먹을 남겨둔 먹이 자원의 이용을 가능케 하고 북부의 혹한도 피할 수 있게 한다.

떼까마귀들은 추수 때 떨어진 낙곡을 1차 먹이로 삼는다. 그러나 먹이가 부족하면 취식지를 농경지에서 과수원으로 옮기기도 한다. 작년부터는 ‘곤포사일리지’의 증가로 낙곡 부족 현상이 생겼다. 설상가상으로 청보리 재배 면적이 늘어나 취식 면적이 줄어드는 바람에 먹이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작년부터 떼까마귀의 과수원 출현이 잦아졌다는 말을 새겨들어야 한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라는 속담은 ‘어떤 일이 서로에게 이롭고 좋다(兩全其美的事)’는 의미를 지닌다. 떼까마귀는 지난 15년간 단 한 번의 ‘노쇼’(No show=예약한 뒤 연락도 없이 나타나지 않는 것)도 없이 찾아왔다. 가치는 경제로 이어진다. 잔 가지는 치고 굵은 가지는 키우듯이 떼까마귀의 도래 가치와 월동 가치를 활용하고 부각시켜 창조경제에 한 몫으로 활용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성수 조류생태학박사 울산학춤보존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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