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드러낸 공동교섭… 현실성 떨어지는 요구안
실체 드러낸 공동교섭… 현실성 떨어지는 요구안
  • 이주복 기자
  • 승인 2016.03.13 22: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영권 침해’에 ‘근로시간 단축 임금유지’ 황당요구
전문가들 “비현실적 공동교섭 한계, 과거 선례 답습”

 ◇ 과도한 공동교섭 요구안… 논란 불가피
최근 금속노조가 현대자동차그룹사(이하 그룹사) 노조의 공동교섭을 승인하면서 ‘실적쌓기에 급급해 산별정신을 훼손했다’는 안팎의 비판을 받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룹사 노조 대표단이 근로조건 개선과는 거리가 먼 요구안을 마련해 노노간, 노사간 갈등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대·기아차 등 10여개 주요 그룹사 노조는 지난 10일 각 노조 대표자 회의에서 ‘공동교섭 요구안’을 확정하고 내달 중 요구안을 사측에 전달키로 했다. 이날 확정된 주요 요구안은 ▲납품단가 결정 시 원가 및 물가연동제, 초과이익 공유제 도입 ▲경영승계 위한 계열사 구조조정, 매각 금지 ▲국내생산 및 투자 확대, 일자리 창출, 고용안정에 노사가 참여하는 미래전략위원회 구성 등 회사 고유의 영역인 경영권을 심각하게 침해할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어 논란을 낳고 있다.

그룹사 노조는 또 총액 임금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연간 근로시간을 1천800시간 이하로 줄이자는 요구안도 내놨다. 사실상 변칙적인 임금인상 요구로 볼 수 있다. 정기상여금 및 정기적,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복리후생비를 통상임금에 포함하라는 요구도 논란이 예상된다.
통상임금 문제는 각 사별로 다른 상황에 놓여 있고, 현대차 노조는 이미 통상임금 소송 1심에서 사실상 패소 판결을 받았다.
노사전문가는 “현대차의 경우 노조가 법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회사가 십분 양보해 통상임금 문제를 임금체계 개선 문제와 함께 합의로 풀어가는 과정인데, 노조가 또다시 이러한 요구를 하는 것은 통상임금 문제를 원점으로 되돌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누구를 위한 공동교섭?” 심화되는 노노갈등
그룹사 노조의 공동교섭 추진은 맏형 격인 현대차노조 현장 노동조직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키는 등 노노갈등 양상을 보이며 출발부터 삐걱됐다.

그룹사 노조 대표단의 공동교섭 세부방침이 전해지자 현대차노조 조합원들도 회의적인 반응을 내놓기 시작했다. 현대차 현장조합원 박모씨는 “과거 이해관계가 비슷한 동종사인 기아차와 공동투쟁을 추진했음에도 구호만 요란했고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는데 완전히 다른 업종과 공동교섭을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비현실적인 것 아니냐”며 비판했다.

또 다른 조합원 김모씨는 “그동안 현실과 동떨어진 무리한 요구안은 사회 여론의질타를 받고 결국 철회되는 과정을 반복했다”며 “집행부는 비현실적인 공동교섭보다 당면한 내부 현안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업계 관계자는 “그룹사 가운데 임금, 복지, 근로조건 등 모든 면에서 최상위에 있는 현대차 노조가 공동교섭으로 얻을 수 있는 추가적 실익은 없을 것”이라며 “다른 그룹사들은 공동교섭을 통해 현대차 수준의 상향 평준화를 바라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 올해 노사협상 ‘난항’ 예고
현대자동차 노사는 올해 단체교섭에서 임금피크제 확대시행, 통상임금 문제를 포함한 임금체계 개선 등 지난 해 마무리하지 못한 굵직한 현안들을 놓고 협상을 벌인다. 통상적으로 5월께 상견례를 시작으로 본격 협상에 나서게 되는데 현대차 노조가 벌써부터 그룹사 노조들과 연대해 공동교섭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노사갈등을 더욱 키우는 양상이어서 험로가 예상된다.

현대차 노조는 4년 전 기아차 노조와의 공동투쟁에서 별다른 결과물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이후에도 공동교섭 시도는 있었지만 사업장별 현안 차이라는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 무산됐다.

업종, 기업규모, 경영성과, 임금구조 등 제반 여건이 다른 상황에서 공동교섭 시도 자체가 비현실적이며 결국 과거 선례를 답습하게 될 것이라는 게 지역 노사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한 노사전문가는 “이런 변칙적이고 무리한 교섭 요구는 가뜩이나 경영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들의 기초체력과 경쟁력을 약화시키게 되고 결국 노조에게 고용불안이라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현대차는 “노조의 비현실적인 공동교섭 요구에 응할 법적 의무나 이유가 없다”며 거부 입장을 밝혔다.
그룹사 노조가 회사 고유 권한인 경영권 침해를 시도하고 통상임금 등 꾸준히 논의를 진행해왔던 사항까지 무위로 돌리려는 등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으면서 노사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지게 된다.
이주복 기자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