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의종군 (白衣從軍)
백의종군 (白衣從軍)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3.13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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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거, 아무나 하나.” “뭔데?”
“백의종군이라는 것.” “아∼, 이순신 장군이 두 번씩이나 했다는…”
“그래, 바로 그거야.” “근데, 왜 아무나 못해?”
“용기가 있어야 하지.” “허어 이 사람, 용기가 뭐 밥 먹여 주나?”

4·13 총선이 코앞인데, 공천 후유증이 예상 밖으로 크다. 여야 불문, 선거판은 지진이 아니라 쓰나미다. 이를 두고 ‘초상집 분위기’라 했던가. 살생부(殺生簿) 존재가 진짜라는 소리도 나온다. 저승사자 위세에 중진이고 나발이고 좌불안석(坐不安席)이다. “낙장불입 소리 제발 그만 하시게. 자네도 생각해 보게나. 내 코가 석잔데 자네 소원 들어줄 여력, 지금 어디 있겠나?” 하기야 그렇다. 비례대표고 뭐고 이미 물 건너갔다는 말이 맞다. 백의종군? 거, 웃기는 소리 좀 작작 하라고 해라.

‘백의종군(白衣從軍)’이란 용어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이야기에 주로 나온다. 그 첫 번째는 1587년, 함경도 녹둔도 둔전관(屯田官) 시절의 일이다. 모함을 당한 그는 여진족의 기습을 제대로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감투를 빼앗긴다. 그로부터 10년 뒤 임진왜란 때, 수군통제사이던 그는 부산 앞바다에 진을 친 가토 기요마사의 왜군을 공격하라는 조정의 명령을 거역했다는 이유로 파직과 함께 관복(官服) 아닌 평복(平服=白衣)으로 갈아입는다.

한편 순천향대 이순신연구소는 지난해 1월 ‘난중일기’ 고증을 거쳐 서울에서 경남 합천군 율곡면 도원수부(都元帥府)에 이르는 640㎞ 구간을 ‘백의종군路’로 명명한다. 이 구간은 충무공이 1597년 4월 1일부터 8월 2일까지 지나쳤던 120일간의 여정이기도 했다.

‘白衣從軍’은 문자 그대로 ‘흰옷을 입고 전쟁터에 나가 싸운다’는 뜻이다. ‘백의(白衣)’를 가리켜 ‘병졸(兵卒) 신분’ 또는 그보다 못한 ‘민간인 신분’이라는 두 갈래 해석이 있다.

여하간 백의종군이 벼슬이나 계급장을 내려놓는다는 의미인 것만은 분명하다. 조선시대 벼슬아치들은 평민과는 구분이 되게 흰옷은 입지 않았다. 백의종군하는 장수의 신분에 대해선 ‘병졸 강등’, ‘보직 해임’ 두 가지 해석이 나란히 존재한다.

다시 2016년의 정치판. 요즘 같은 선거철에 ‘정치인의 백의종군’은 ‘출마 포기’를 의미한다. 자의든 타의든 간에. 공천 미련을 버리고 밑바닥으로 내려가 조용히 입 다물고 있겠다는 의지 또는 그렇게 하라는 주문을 동시에 의미한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 친노(親盧)계의 최인호 혁신위원이 친노 좌장(座長) 이해찬 전 총리에게 ‘백의종군 결단’을 요구했다. 문재인 전 대표에게 힘을 실어주게 살신성인(殺身成仁)의 본을 보여 달라는 ‘출마 포기’ 종용이었다. 같은 당 소속 몇몇 현역 국회의원들은 공천에서 탈락한 뒤 스스로 백의종군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울산지역의 여권은 사정이 전혀 딴판이다. 그럴 낌새라곤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쳐든 반기(反旗)의 높이가 하늘이라도 찌를 기세다. 그럴 만한 이유는 저마다 다 있다. 그러다 보니 지지자를 앞세운 ‘탈당→무소속 출마 불사’ 소리가 꼬리를 문다. 아직 결판이 안 난 선거구의 예비후보들은 애간장이 더 탄다. “나 떨고 있니?” 자문자답 소리도 들린다.

‘백의종군’이란 말을 새삼 끄집어낸 것은 잘잘못을 논하기 위함이 아니다. 정치(政治)는 생물(生物)이요 ‘배반(背反)의 미학(美學)’이란 점을 거듭 확인했노라, 전하고 싶을 뿐이다. 누군가가 내뱉은 이 말도 같이 전하고 싶다. “백의종군은 잘못에 대한 처벌인 동시에 명예회복의 기회다.”

<김정주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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