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이전투구(泥田鬪狗)’
‘2016 이전투구(泥田鬪狗)’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3.06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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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연합뉴스TV ‘명품리포트 脈’을 진행하던 여성 앵커가 리포트 말미에 ‘정치권의 너저분한 집안싸움’이라며 쓴 소리를 내뱉었다. 야권의 김종인-안철수는 물론 여권의 김무성-이한구까지 싸잡아서 한 표현이었다.

선거철의 정치권 싸움을 가리켜 호사가들은 흔히 ‘진흙탕싸움’이니 ‘이전투구’니 하는 소리를 자주 한다. 요즘은 이 두 말이 동의어로 쓰인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이·전·투·구’의 한자말을 뜯어보면 더 선명해진다. 진흙 니(泥),밭 전(田),싸울 투(鬪),개 구(狗)…. 뜻풀이를 하자면, 저질 느낌이야 진하지만,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 혹은 ‘진흙탕에서 벌어지는 개싸움’이다.

하지만 이 사자성어(四字成語)는 앞으로 다른 표현으로 바꾸어 쓰는 게 더 좋을지 모르겠다. ‘시궁창싸움’으로…. 세계적 명품잔치 ‘보령 머드(mud=泥)축제’가 세계인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으니 그 지체 높은(?) 말을 ‘너저분한 집안싸움’에 끌어들이는 게 결례라도 될까 싶어서 한 번 해보는 소리다.

한데 ‘이전투구’란 말, 그 내력이 참 재미있으면서도 매력적이다. 여느 사자성어와는 달리 ‘중국산’이 아니라 ‘국산’이란 점도 그렇다. 한동안 그 이름이 KBS 역사드라마 제목으로 뽑혀 시청률 상승에 일조했던 조선의 개국공신 정도전(鄭道傳, 1342∼1398). 바로 그가 지어낸 말이라는 데는 별다른 이설이 없지 싶다. 두루 알려진 대로 배경 이야기는 대충 이렇다.

“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1392년)직후 정도전에게 팔도(八道) 사람들의 기질을 평가하도록 명했다. 정도전은 그 명을 사자품평(四字品評)으로 받들었다. 경기도 사람은 경중미인(鏡中美人=거울에 비친 미인), 충청도 사람은 청풍명월(淸風明月=맑은 바람, 밝은 달), 전라도 사람은 풍전세류(風前細柳=바람에 하늘거리는 버드나무), 경상도 사람은 송죽대절(松竹大節=소나무·대나무 같은 곧은 절개), 강원도 사람은 암하노불(岩下老佛=바위 아래의 늙은 부처), 황해도 사람은 춘파투석(春波投石=봄 물결에 던지는 돌), 평안도 사람은 산림맹호(山林猛虎=산속에 사는 사나운 호랑이)에 비유했다.

이제 남은 것은 이성계의 고향인 함경도 사람에 대한 평가였다. 정도전은 잠시 머뭇거렸다. ‘얼른 말하라’는 태조의 재촉에 정도전이 어렵사리 말을 꺼냈으니 다름 아닌 ‘이전투구(泥田鬪狗)’ 였다. 진흙탕에서 싸우는 개처럼 강인하다는 해석이 뒤따랐지만 이성계는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고향 사람들을 개(狗)에 비유하다니! 눈치 빠른 정도전이 표현을 잽싸게 바꾸었다. ‘석전경우(石田耕牛=돌밭을 가는 소, 즉 우직한 품성)’였다.”

하지만 요즘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쓰임새는 부정적인 쪽으로 굳어졌다. ‘강인한 성격’이란 의미는 사라진 지 오래고 ‘볼썽사납게 서로 헐뜯거나 다투는 것’을 비유해서 쓰는 말로 둔갑했다. 혹자는 ‘아주 막돼먹은 싸움질이나 난장판에 대한 비유’로 풀이한다.

제20대 국회의원선거(4·13 총선)가 코앞에 닥친 요즘 중앙무대는 물론 지방무대에도 이전투구가 난무한다는 지적이 꼬리를 문다. 울산도 중구와 북구, 울주군이 그렇고 남구갑은 한 술 더 뜬다. 6일 A예비후보 측이 B예비후보 측을 겨냥해서 낸 ‘검찰 고발(협박 및 허위사실 유포 등)’ 보도자료는, 사실이라면, 실소마저 터뜨려야 할 판이다. “A후보측 C부장에게 ‘밤에 다니다가 이빨이나 와장창 나가면 어쩌려고 하나. 당신만 손해야. 다리라도 부러지면 어쩌려고 하나’….” 이 정도면 ‘진흙탕싸움(이전투구)이 아니라 가히 ‘시궁창싸움’ 수준이다. 메니페스토(정책공약)가 실종된 선거난장판. 지금이라도 이성을 되찾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김정주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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