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가리의 장가 채비
왜가리의 장가 채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3.03 2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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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울산 출신 가수 고복수(高福壽.1912-1972)가 부른 ‘짝사랑’의 첫 소절이다. 으악새와 왜가리는 같은 새의 다른 이름인 것을 울산 사람은 이미 잘 안다. 한자권에서 으악새는 푸른빛의 깃을 지닌 물새라는 의미로 ‘창로(蒼鷺)’라 부른다.

지난날 물가에서 새 한 마리가 울면서 날아갔다. 그 울음소리가 ‘으악’으로 들렸다. 그 새의 이름이 ‘으악새’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같은 새인데도 그 울음소리가 ‘왝’으로 들렸다. 그 후 으악새를 ‘왜가리’라고 부르게 됐다.

한때 으악새를 두고 ‘새다’, ‘새가 아니라 억새다’로 내기를 한 적도 있었다. 요즘은 기회 있을 때마다 ‘아∼아, 왜가리 크게 우니 춘절인가요…’라고 가사를 고쳐 으악새와 왜가리는 같은 종 다른 이름이라고 이해시킨다.

왜가리는 원래 여름철새였지만 일부 개체는 1년 내내 머무는 텃새로 변해 겨울을 난다. 지난 1월 한겨울 날씨에도 약 100마리가 태화강에서 관찰되어 그 사실을 뒷받침했다.

왜가리는 봄이 되면 큰 소리로 운다. 이는 번식기가 왔다는 신호로서 다른 행동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그동안 왜가리는 주로 물가에서 한 마리 혹은 서너 마리가 몸을 잔뜩 웅크린 채 하루하루를 어렵게 보냈다. 몇 차례 내린 봄비가 마른 대지를 흠뻑 적신 뒤로는 흩어져 단독생활을 하던 왜가리가 서서히 한 곳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러한 행동의 변화는 왜가리가 장가들기 위한 채비다.

첫째, 활동영역에 변화가 생긴다. 왜가리는 아침 잠자리에서 날아 나온 후 낮에는 주로 물가에서 보내고 야간에는 숲을 찾아 가지를 횃대삼아 잠을 잔다. 이러한 행동이 일정하다. 그러나 겨울나는 개체는 불규칙한 패턴을 보인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 대숲에서 잠자기를 포기하고 대부분 발을 물에 담근 채 밤을 지새우는 ‘수중 숙영’을 택한다. 이는 삵, 야생고양이 같은 천적으로부터 생명을 보존하려는 것이다. 동시에 수온이 기온보다 높은 것을 알고 수온을 이용해 체온을 유지하려는 것이다.

태화강에서 겨울을 나는 왜가리는 주로 태화강-동천 합수(合水)지점의 모래톱에서 쉽게 관찰된다. 구 삼호교 아래쪽 양지바른 물가는 남한테 양보하기 싫어하는 왜가리가 겨울을 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왜가리의 장가 준비는 활동영역이 물가에서 대숲으로 옮겨지면서 시작된다.

왜가리는 집단번식지를 선호하는데, 그 장점을 알기 때문이다. 무리지어 한 장소에서 번식하는 이유 중 대표적인 것은 천적의 공격에 집단대응하기 위함이다.

둘째, 몸 색깔에 변화가 생긴다. 조류는 번식기가 되면 여러 가지 성징(性徵)의 변화와 함께 행동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왜가리는 성조(成鳥)일수록 날개와 털의 색상(흰색, 검은색, 회색, 붉은색 등)이 뚜렷하고 짙다. 또한 노란색 부리와 다리는 점차 선명한 붉은색으로 변한다. 모두 어린 새에서 찾아볼 수 없는 성숙한 어른 새들의 성징이다. 특히 뒷머리의 검은색 긴 댕기 깃은 ‘혼인 깃’으로 길고 검은색이 짙을수록 건강한 개체다.

자연의 섭리는 번식기의 꿩, 공작, 원앙 등 수컷의 몸 색깔이 짙어지거나 화려해지는 등 두드러진 깃의 색상을 갖게 했다. 암컷은 수컷의 커진 울음소리, 짙어진 깃 색, 붉어진 다리 색 등 다양한 변화를 눈여겨본 다음 상대의 구애를 받아준다. 구애를 까다롭게 받아주는 것은 튼튼한 후손을 보아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인 셈이다. 번식기의 수컷이 서로 만나면 죽기 살기로 경쟁하는 것은 자기의 자손을 번식시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싸움이다.

셋째, 행동에 변화가 생긴다. 2월 초순까지만 해도 양지쪽이나 갈대를 병풍삼아 모래톱에서 서너 마리 혹은 대여섯 마리씩 모여 을씨년스럽게 웅크리고 있던 왜가리가 최근에는 다들 대숲의 번식지로 모여든다. 텃새가 된 왜가리는 철새인데도 남아있는 왜가리보다 행동이 더 다양하다. 일찍 크게 울기, 대숲으로 모여들기, 대숲에서 잠자기, 대나무에 오래 앉아있기, 집지을 나뭇가지 물어 나르기, 대숲 상공으로 단독 혹은 무리지어 간간이 날아오르기와 같은 행동으로, 모두 번식기에 선보이는 행동들이다. 이러한 행동은 영역을 지키고 힘을 과시하는 행위로 이어진다.

왜가리는 물가 근처 숲이나 나무에다 나뭇가지를 엉성하게 쌓아서 둥지를 만든다. 왜가리가 무리지어 삼호대숲을 번식지로 선택하는 것은 천적의 접근을 차단하기 위한 군거산란(群居産卵) 본능의 진화된 사례다.

왜가리는 한 해 3∼5개의 알을 낳는다. 암수가 함께 25∼28일간 포란하고, 태풍 같은 자연재해가 없다면 50∼55일간 새끼를 기른 다음 둥지를 떠난다. 번식기에 나타나는 왜가리 수컷끼리의 경쟁은 짝짓기 대상을 독차지하려는 본능적 행동이다. 왜가리는 살기 위한 군집산란의 협동(cooperation)과 암컷을 먼저 차지하려는 경쟁(competition)을 반복하면서 종족의 대를 이어간다. 비혼(非婚)이 늘고 있는 인간세상의 현실이 안타깝다. 오호 통재라!

<김성수 조류생태학박사·울산학춤보존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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