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구리를 왜‘경칩’과 연결지을까
개구리를 왜‘경칩’과 연결지을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2.24 22: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4절기에서 입춘부터 우수, 경칩, 곡우, 청명까지는 봄에 해당된다. 다음은 여름으로 넘어간다.

지지난 토요일(13일) 오전 울산시소방본부가 “북구 양정동 심천골 체육공원 근처 미나리꽝 앞에 개구리 수만 마리가 나와 있어 너무 기이하다며 이를 언론사에 전해 달라는 민원을 접수했다”며 그 사실을 지역 언론사 취재진에게 급히 알렸다.

‘경칩이 3주나 남았는데…개구리 수백 마리 겨울잠에서 깨어나’/ ‘경칩 한 달 앞두고 벌써 나온 개구리떼’/ ‘경칩 한참 멀었는데…동면 깬 개구리 어쩌나’…. 다음날 지역 언론사가 뽑은 개구리 관련 헤드라인이다. 공통적인 주제어는 ‘경칩’이었고, 제각기 개구리가 경칩이 3주나 남았는데 일찍 나왔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개굴개굴 개구리 노래를 한다/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서/ 밤새도록 하여도 듣는 이 없네’(동요), ‘개구리도 움츠려야 뛴다’, ‘개구리 올챙잇적 생각 못한다’, ‘우물 속의 개구리(井中之蛙)’, ‘으스름달밤에 개구리 우는 소리 시집 못간 노처녀가 안달이 났구나’(뱃노래)에서 보듯 개구리는 우리의 삶과 친숙하다. ‘개굴개굴’ 하는 울음소리는 정겹기도 하다.

개구리 울음소리를 시끄러움으로 표현하는 이도 있다. ‘삼국유사’는 선덕여왕의 ‘지기삼사(知幾三事=미리 예측한 세 가지 일)’를 기록하고 있다. 그 중의 하나가 겨울철에 영묘사 옥문지(玉門池)에서 많은 개구리가 모여 3∼4일 동안 울었다는 설화다. 설화에 등장하는 겨울철 개구리의 시끄러운 울음은 신라에 몰래 들어와 여근곡(女根谷)에 숨어 기회를 엿보던 백제 군사를 미리 알려준 셈이다. 김삿갓은 어른의 책 읽는 소리를 조롱하는 시에서 ‘황혼에 개구리가 시끄럽게 못에서 운다(黃昏蛙子亂鳴池’(嘲年長冠者)’고 표현했다. 또 어떤 이는 맹자가 제나라 왕에게 음악 즐기는 방법을 이야기한 ‘독악락 여인악락(獨樂樂 與人樂樂)’을 개구리 울음소리에 비유했다.

음훈(音訓)의 조어 ‘와이로(蛙利鷺)’는 ‘회뢰(賄賂)’의 일본어 ‘와이로(わいろ)’와 소리가 비슷하다. 까마귀가 백로에게 건네준 의미 있는 개구리 이야기가 함축되어 있다. 까마귀는 백로에게 개구리 한 마리를, 따오기는 백로에게 개구리 두 마리를 건네주어 부엉이와 꾀꼬리를 제치고 노래자랑에서 장원을 했다는 이야기에 나오는 말이다. 이규보(李奎報)는 앞의 이야기를 인용해 ‘오직 나는 개구리가 없는 게 인생의 한이다(唯我無蛙人生之恨)’ 혹은 ‘오직 한스러운 바는 개구리 두 마리가 없음이로다(唯恨當年無二蛙)’라 했다는 말이 있다. 요즘 많이 회자되는 ‘금수저’의 있고 없음을 생각나게 한다. 이 이야기에서 분명한 점은 백로의 먹이가 개구리라는 사실이다. 이번에 화제가 된 미나리꽝의 개구리는 산개구리였다.

‘산개구리’는 산림지대의 산사면, 계곡 주변, 산지와 인접한 경작지 등에 서식하며 ‘논개구리’보다 일찍 겨울잠에서 깨어난다. 이처럼 빠른 개구리의 활동은 강수량의 영향이 크다. 겨울잠에서 깨어난 산개구리가 제일 먼저 찾는 곳은 물이 고여 있는 습지다. 습지는 암수가 만나는 최적의 광장 겸 산란장소이기 때문이다. 개구리 떼가 한겨울인데도 봄기운을 느끼자마자 밖으로 나와 잽싸게 교미하고 산란하는 것은 천적을 피해 많은 개체를 살아남게 하려는 생존전략이다.

개구리는 습지생물이지만 폐호흡과 피부호흡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게 진화됐다. 물과 뭍을 옮겨 다니는 양서류(兩棲類인 것이다. 개구리는 풍부한 마릿수로 종족 보존을 이어간다. 성경에서는 이런 현상을 ‘개구리의 재앙’으로 기록한 바 있다.(출애굽기 8:1-15)

개구리가 무리지어 우는 것은 번식기에 나타나는 자연현상이다. 개구리는 인문학적으로도 긍정, 부정을 가리지 않고 자주 등장한다. ‘우물 속 개구리’ 즉 정중지와(井中之蛙)는 아는 것이 좁다는 의미로 쓰인다. ‘무논은 개구리 운동장’이란 말은 개구리가 물이 있는 논을 즐겨 찾는다는 의미다. 퇴계 선생은 ‘무논에 개구리’를 한자음으로 ‘물논개구리(勿論改求利)’라고 적었다. ‘무논에 개구리 날뛰듯’이란 말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사람을 조롱하는 표현이다.

‘경칩’의 사전적 의미는 ‘이십사절기의 하나. 우수와 춘분 사이에 있는 절기’다. 경칩은 놀랄 ‘경(驚)’과 ‘겨울 잠자는 벌레’ 혹은 ‘숨다’는 뜻의 ‘칩(蟄)’이 합쳐진 단어다. 정리하면 ‘겨울잠 자던 벌레가 놀라 꿈틀거리는’이란 말의 한자식 표현이 바로 ‘경칩(驚蟄)’이다. 다른 예로 ‘칩복(蟄伏)’이란 ‘벌레 같은 것이 땅 속에서 겨울을 나는 것’을 말한다. ‘칩거(蟄居)’는 ‘사람이 두문불출하며 집 안에 가만히 틀어박혀 있는 것’을 말한다.

살펴보면 ‘경칩’이란 단어에서는 ‘개구리’와 연관된 어떤 것도 찾을 수 없다. 그런데도 왜 모두 경칩을 ‘개구리가 겨울잠(冬眠)에서 깨어난다’는 쪽으로 해석하며 집착할까? ‘벌레’가 ‘개구리’로 와전된 탓이라고 생각한다. 바꾸어 말해, 개구리의 이른 활동과 산란은 경칩과는 무관하다. 다만 이른 봄비의 양(강수량)에 영향을 받을 뿐이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박사>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