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장무검(項莊舞劍)’
‘항장무검(項莊舞劍)’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2.18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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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항장(項莊)이 칼춤을 추다’는 뜻으로 중국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記)에 전하는 이야기이다.

진(秦) 제국이 사실상 멸망에 접어들고 있을 즈음 대륙은 항우와 유방(劉邦)의 세력으로 양분되어 다툼이 이어지고 있었다. 항우의 모사 범증(范增)은 점차 커져가는 유방의 세력이 두려워 하루빨리 유방을 제거하여 화근을 없애자는 건의를 하였으나 항우는 매번 이를 거절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유방이 항우와의 약속을 어기고 진의 수도 함양을 먼저 점령하고 진왕의 항복을 받아냈다. 이 일로 인해 항우는 노발대발하여 범증에게 유방을 죽일 것을 명하였다. 이에 범증은 진중에 연회장을 마련하고 주변에다 자객을 매복시켜 항우가 술잔을 던지는 것을 신호로 하여 유방을 살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마침내 연회가 시작되자 유방은 장량(張良)과 번쾌(樊?)만을 대동하고 연회장에 들어가 항우에게 깍듯이 인사를 올리고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자, 항우는 그만 마음이 누그러져 유방을 죽일 마음이 없어졌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범증은 일이 실패하였음을 직감하고 즉시 군막 밖으로 나가 항우의 사촌인 항장을 불러놓고 “이미 패공(沛公)이 유방의 달콤한 말에 빠져 죽일 뜻이 없어진 듯하오. 오늘 저들을 죽이지 않으면 필시 후환이 있을 것이니 장군이 연회에서 흥을 돋우는 척 검무를 추다가 기회를 봐서 그를 단칼에 죽이도록 하시오”라고 지령을 내렸다.

이에 항장이 막사 안으로 들어가 칼춤을 추는데 예리한 항장의 칼끝이 점점 유방을 향하여 다가가자 곁에서 이를 지켜보던 장량이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직감하고 급히 군막 밖에 있던 번쾌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번쾌는 군막으로 뛰어들어 함께 춤을 거들었다. 항장은 번쾌의 기개에 눌려 그만 춤을 거두게 되면서 유방은 겨우 죽음을 면할 수가 있었다.

‘항장무검(項莊舞劍)’은 바로 이 이야기에서 유래한 말이다. 항장이 칼춤을 추는 것은 연회의 흥을 돋우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유방을 죽이려는 데 목적이 있었던 것처럼 겉으로 드러난 상황과는 달리 실제 내면으로는 다른 속셈이 숨겨져 있는, 이른바 겉과 속이 다름을 비유할 때 자주 인용되는 말이다.

지금 북한 당국의 연이은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우리의 안보가 위협받고 있는 상태에서 정부는 적의 핵과 미사일로부터 우리의 국토를 지키기 위한 절실한 방어수단으로 이 땅에 미사일 방어용 ‘사드’를 배치하기 위하여 미국과 논의 중이다. 바로 이러한 시점에 중국의 외교 수장인 외교부장이 “한국과 미국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빌미로 한국에 ‘사드’를 배치하기 위하여 항장무검(項莊舞劍)을 벌이고 있다”는 비유를 했는데 이는 너무나 사리에 맞지 않은 억지주장으로밖에 볼 수 없다.

우리 속담에 ‘내 할 말을 사돈이 한다’는 말이 있다. 오늘날 북한의 이 같은 막무가내식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의 도발에 대하여 그동안 충분히 이를 억제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중국이 매번 북한과의 혈맹관계를 내세워 겉으로는 반대니, 제재니 명분 있는 말을 골라 운운하였다. 그러면서도 실제로는 북한에 대한 제재는 고사하고 국제적 합의에 이르러서는 북한의 이해를 대변하여 흐지부지하면서 넘어왔다. 중국의 이러한 이중적 잣대야말로 오늘날 일을 이 지경으로 키워온 근본적 원인이 아닐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잠시 중국인의 의식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저들은 친구를 사귐에 있어서 두 가지로 구분한다. 첫째, ‘일반적인 필요에 의한 친우(朋友)’와 둘째, 자신과 함께 피를 나눌 ‘혈연의 친우(老朋友)’로 구분하는 것이다.

근자에 와서 저들이 우리에게 보낸 깍듯한 친선과 우호의 손짓은 우리가 저들의 ‘노붕우(老朋友)’여서가 아니라, 저들이 일시적으로 필요로 하는 ‘붕우(朋友)의 존재’로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저들은 ‘빨치산 세대’들이 지닌 ‘노붕우(老朋友)의 향수’를 쉽게 떨칠 수가 없는 듯하다. 아마 이것이 중국인의 한계가 아닌가 생각된다.

노동휘 성균관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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