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용학과 폐지’에 대한 생각
'무용학과 폐지’에 대한 생각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2.10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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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들어 무용계에 안타까운 소식이 전해졌다. 무당춤에 이어 태평무가 대표적 춤으로 알려진 원로 강선영(姜善泳, 1925~2016) 선생이 지난달 21일 작고하신 것이다. 울산 무용인도 모두 예외 없이 마음속 깊이 우러나온 애도의 물결에 동참했다. 필자와는 학춤 연구로 몇 번 전화한 인연이 있어 부음을 접하는 순간 착잡한 마음이 더했다. ‘원로 무용인의 타계는 무용도서관 1개가 사라지는 손실’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원로 무용인은 그만큼 무용사의 산 증인이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연초부터 신라대학교 무용학과 학생들이 학과 폐지를 반대하는 성명서를 내고 학과 존속을 호소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져 무용인들을 슬프게 하고 있다. 설 연휴 내내 안타까운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는 전국 200여 대학들이 산업연계 교육활성화 선도사업으로 올해 2012억원이 투입되는 프라임사업 선정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이 사업에 선정되려면 이공계 정원을 늘리는 만큼 인문·예술계 정원을 줄여야 하고, 학과의 대규모 통폐합 또한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정부 지침에 따라 프라임 사업을 만들었고, 대학은 살아남기 위해 학과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었다”, “그 표적은 결국 예술대학·인문대학이 되어 대한민국 기초학문의 근간이 흔들리고 있다”, “교육부는 취업률이라는 잣대로 기초학문과 문화예술의 근간인 인문학·예술 분야를 폐지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폐과로 직접적인 피해를 보게 되는 학생들의 설득력 있는 항변이다.

하지만 구조조정으로 살아남으려는 대학 나름의 고민에는 이해가 간다. 정부 또한 고민이 클 것이다. 대통령이 직접 전국 20개 사립대 총장을 청와대로 초청해서 가진 간담회 자리에서 “대학은 시대의 흐름을 읽고 과감히 혁신해야 한다”고 당부한 사실은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대학을 혁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이러한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은 저출산으로 인한 학생 수의 감소에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배 무용인을 비롯한 전체 무용인들도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어찌 보면 무용인의 자업자득이라 해서 지나친 말이 아니다. 특히 무형문화재 제도의 취지에 벗어난 운영의 문제, 각 대학의 사회교육원 무용 과정의 교수 참여 문제, 무용단 선발 기준의 획일화 문제 등에서 폐과의 징조는 이미 예견된 일인지도 모른다.

첫째, 무형문화재 제도의 취지에서 벗어난 운영의 문제를 짚어보자. 무형문화재 인증 제도는 전승이 끊길 여지가 있는 춤 종목을 국가가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제도이다. 그러나 이 제도 시행의 결과는 편중된 전승과 무용인의 쏠림 현상으로 나타났다. 입시전형에서도 ‘OO류’의 ‘O풀이’ 등으로 한정함으로써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지 못한 춤은 차츰 관심의 대상에서 멀어져 결국 무용 종목에서 도태되는 결과를 가져 왔다. 이에 따라 살풀이와 승무는 현재 2대 무형문화재 전승자 인증 예고조차 보류된 상태이다.

둘째, 각 대학 사회교육원 무용 과정의 교수 참여 문제를 짚어보자. 정부는 사회교육원이 개설되면 각 대학의 재정에 도움이 되고, 국민교육도 매우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처음의 목적과는 달리 각 지역 무용학원들이 문을 닫는 결과로 이어졌다. 교수가 직접 지도를 하다 보니 지역의 무용학원은 인지도가 낮아서 자연히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무용학원에서 대학입시로, 다시 무용학원의 개원으로 이루어지던 전문 무용인 생산 체계가 중간 단계에서 인지도 높은 교수의 몫으로 둔갑하고 만 것이다. 사회교육원에서 양산된 자칭 타칭 늦깎이 무용인들은 무용의 숙련도와 선후배의 위계질서에도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다.

셋째, 무용단 선발 기준의 획일화 문제를 짚어보자. 각 시·도에 무용단 및 전문무용단이 생기면서 단원의 선발 전형에는 획일적인 기준이 적용되었다. 즉 일정한 수준의 신장, 마른 몸매 등 비주얼 위주의 선발 기준이 적용된 나머지 신장의 대·소와 관계없이 다양성과 풍부성이 담보되는 무용의 재능은 점차 도태의 길을 걷고 만 것이다. 결국 ‘무용학과의 폐과’ 운운하는 소리마저 나오게 된 것은 그동안 무형문화재 제도의 근본취지가 살려지지 못했고, 무용인구가 사회교육으로 인해 단기간에 양산되었으며, 무용 엘리트 교육이 획일화되어 왔기 때문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엄동설한에도 꽃이 피듯이 무용학과 폐지라는 어두운 구름 속에서도 한 줄기 찬란한 무용의 빛을 찾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지난 토요일 남구 근로복지회관에서 열린 ‘차소민무용학원(원장 차소민)’ 주최 제2회 정기발표회 ‘사랑을 주세요’가 바로 그런 기회였다. 고3 졸업생 중심의 발표회는 안무·의상·음악 모두를 공연자 스스로 선택하게 하게 해서 마련한 것이었다. 그 노력은 공연이 시작되자마자 시청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은 빵 없이는 살 수 없다. 동시에 빵 만으로도 살 수 없다. 대학당국이 무용학과의 폐지를 재고해야 하는 분명한 이유일 것이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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