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꽃핀 ‘방어진회’
일본에서 꽃핀 ‘방어진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2.03 2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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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방어진회’의 초청으로 일본 오카야마 현(縣) 비젠 시(市)에 속한 히나세(日生町) 촌을 다녀왔다.

일본의 ‘방어진 회(會)’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 서부지역 어민들이 방어진에 몰려와서 이룬 ‘이주어촌’과 인연이 있는 모임이다. 그 무렵 방어진에서 태어났거나 ‘방어진심상학교’를 다녔던 사람들과 2~3세 자녀들의 모임이 바로 ‘방어진회’다.

종전(終戰)으로 선조의 고향으로 돌아간 아이들은 지금은 팔순의 노인들이 되었다. 그들에게는 모두 ‘귀환자’라는 꼬리표가 붙어서 여러 가지 불편을 겪으면서 살아왔다고 한다. 우리의 역사 속에도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끌려갔던 아낙들이 돌아오자 사대부들이 유교정신 운운하며 ‘환향녀’라고 손가락질을 했던 것처럼….

방어진에서 살다가 일본으로 돌아간 사람들로서는 사실 방어진이 고향인 셈이다. 그러기에 그들은 고향 이름을 따서 ‘방어진회’를 만들었고, 그때의 이야기꺼리가 담겨있는 옛날 사진과 자료들을 모았고, 그들이 살던 마을과 시장, 골목길, 초원과 냇가, 추억에 남아있는 모든 것들을 그림 속에 담아놓았다. 철 지난 달력 뒷면 여러 장을 아래위로 이어 붙여 몇날 며칠 밤을 지새우며 만들었다는 ‘방어진 약도’에는 그들이 뛰놀던 곳의 이름과 서정적인 느낌마저도 빼곡히 채워져 있다.

이 방어진 약도는 2011년도에 일본 히나세 촌의 소학교 학생교류 팀을 인솔하고 방어진을 방문했던 ‘니시자키 기미오’씨가 가져온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어머니의 동창생인 ‘이시모토 가츠에’씨가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한 필자는 지금까지 니시자키씨의 어머니가 그린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녀가 살았던 방어진의 집과 주변의 경관을 사진으로라도 보여주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그림에 그려진 대로 방어진의 상진마을 언덕에 데려다 주었더니 ‘기미오’씨는 사진만 열심히 찍어대는 것이었다. 그때 건네받았던 방어진 약도는 최근까지도 동구문화원에 보관되어 있었으니 근 5년 가까이 방치되어 온 셈이다.

최근 ‘도시재생 프로젝트’니 ‘이야기길 조성사업’이니 ‘방어진 스토리텔링’이니 하는 바람에 이 약도를 꺼내 일본어를 잘 아는 분에게 번역해서 한국어로 토를 달아달라고 부탁한 일이 있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보았더니 이 약도 속에는 옛날 방어진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이야기들이 담겨져 있었다.

다만 지금의 언어와는 좀 다른 옛말로 된 것이 간혹 있었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사실관계가 다른 기록도 더러 있었다. 지명의 경우, 한국인들과 이웃해서 살았는지 모르지만 한국인의 성씨로 된 택호도 적혀 있는 것이 궁금했다.

그리고 7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일본인들의 성씨나 이름을 어찌 그렇게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는지도 궁금했다. 그래서 그분이 아직 살아계시는지 건강하신지 안부를 물었더니 올해 88세로 살아계시다고 했다. 또한 사람의 일은 알 수 없으니 건강할 때 한번 찾아주면 방어진의 다른 이야기도 들려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 지난달 25일 다녀오게 된 것이 이번의 일본 방문이었다. 칸사이 공항에 도착하니 우리 동구와 교류하고 있는 히나세 촌의 ‘이소모토’씨와 ‘타하라’씨가 4시간 반이나 걸리는 열차를 타고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나 감사했고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이분들은 이튿날(1월 26일) 타하라씨의 집에서 ‘가와사키 지츠오’(84세)씨를 미리 만날 수 있도록 배려해두고 있었다. 지츠오씨에게 당시 방어진에서 살 때 겪었던 일들과 궁금했던 일들을 물어보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니시자키씨가 방어진 약도를 직접 그렸다는 ‘이시모토 가츠에’씨를 가가와에서 모셔왔다. 가츠에씨는 필자를 ‘고향에서 온 후배’라며 반갑게 맞아주었다.

미리 복사해서 가져간 약도를 꺼내놓고 하나하나 짚어가며 약도와 방어진 이야기를 묻고 또 물었다. 향수를 자극해서인지 방어진의 해묵은 이야기는 그칠 줄을 몰랐다. 그렇게 해서 궁금증은 사라졌는데, 또 다른 옛날 이야기가 꼬리를 물었다.

‘방어진 약도 속에 숨은 이야기’와 ‘가츠에씨의 추억 속의 방어진 이야기’는 지면관계상 다음 기회에 몇 차례 나누어서 쓰려고 한다.

<장세동 울산동구문화원 지역사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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