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KTX를 타고
마음의 KTX를 타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2.02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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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부터 민족 최대의 명절인 설날 연휴가 시작된다. 설날은 한해가 시작되는 음력 정월 초하룻날로 원단(元鍛)·세수(歲首)·원일(元日)·신원(新元)·정초(正初)라고도 부른다. 설이라는 말은 ‘사린다’, ‘사간다’에서 온 말로 ‘조심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또 ‘섧다’는 말로 ‘슬프다’는 뜻이라고도 한다. 설이란 그저 기쁜 날이라기보다 한 해가 시작된다는 뜻에서 모든 일에 조심스럽게 첫발을 내딛는 매우 뜻 깊은 명절로 여겨져 왔다.

이번 설에도 수많은 귀성객들이 저마다 자신의 고향을 찾아 가족, 친지들과 뜨거운 혈육의 정을 나누고, 죽마고우와의 끈끈한 우정을 새삼 확인하는 행복한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물질문명에 젖어 갈수록 각박해져만 가는 현대생활에서 그나마 일 년에 두 차례라도 큰 명절이 있어, 그리웠던 사람과 만나 돈독한 정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도 선친이 생존해 계셨던 2000년 이전엔 귀성(歸省)을 앞둔 설렘에 들뜨곤 했다. 명절은, 삭막하고 외로운 서울생활을 잠시 벗어나 가족과 친지의 따뜻한 품에 안길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다. 그 무렵엔 명절 때마다 필자도 귀성객의 대열에 합류하는 행복감을 누릴 수 있었다.

도로와 교통수단이 미비했던 그 무렵, 비록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교통정체에 시달리기는 했어도 고향으로 향하는 그 설렘과 기쁨은 인생의 어떤 즐거움에도 견줄 수 없는 뜨거운 희열, 그 자체였다. 그러나 18년 전 선친이 돌아가시고 장손인 필자가 제사를 서울로 모셔 오면서부터 ‘귀성의 희열’은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으니 객지에서의 외로움은 갈수록 그 깊이를 더해만 가고 있다.

필자가 울산을 떠나 서울에서 둥지를 튼 지도 30여 년의 세월이 강물처럼 흘렀다. 그동안 강산이 세 번이나 바뀌었으니 ‘세상은 또 얼마나 많은 변화를 겪어 왔을까’ 쉽게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필자는 그 많은 변화 중에서도 특히 교통수단의 획기적 변화를 가장 먼저 꼽고 싶다.

사실 필자가 학창시절이던 6, 70년대에 서울과 울산을 잇는 대중 교통수단은 중앙선 열차와 고속버스였다. 그것도 고속도로가 개통되기 전에 서울을 가려면 저녁 7시경 울산역에서 중앙선 완행열차에 몸을 실어야 했다.

약 10시간 정도의 고행(?)을 각오한 채 불편한 수면과의 씨름이 거의 끝나갈 무렵, 종착역인 청량리역은 늘 싸늘한 새벽공기에 덮인 채 침묵하고 있었다. 피할 수 없는 고된 나들이였다.

따라서 이러한 와중에 개통된 고속도로는 울산 시민들에게 엄청난 기쁨으로 다가왔다. 오랜 가뭄 끝에 찾아온 시원한 빗줄기나 다름없었다. 불과 5시간 만에 서울 땅을 밟을 수 있다는 사실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기쁨도 잠시. 마이카 시대가 열리고 70년대 후반부터 급격히 늘어난 차량으로 고속도로는 주말이나 명절이면 극심한 교통체증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필자도 80년대부터는 귀성객 대열에 늘 끼어 있었는데 서울-울산 간 소요시간이 많게는 22시간까지 걸린 적도 있었으니 그것은 ‘대중교통’이 아닌 바로 ‘대중고통’이었다.

그 뒤로도 오랫동안 값비싼 항공편을 제외하고, 대중교통편은 늘 불만족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2010년 말, 엄청난 충격의 교통 혁명(?)이 일어났다. KTX 울산역이 신설된 것이다. 필자의 표현이 다소 과장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실제 불편했던 교통상황을 몸소 겪어 보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동안 ‘중앙선 완행열차’에서 ‘KTX’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오랜 시간의 인내가 요구되었다. 하지만 이제 내 고향이 더욱더 가깝게 다가왔다는 가슴 벅찬 희열 앞에서, 가끔 특별한 행복감에 젖어 들곤 한다. 지금 필자는 마음의 KTX를 타고, 그리운 고향 울산으로 힘차게 달려가고 있다.

<김부조 시인·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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