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콘서트 공간 꾸미는 게 또 다른 꿈”
“인문학콘서트 공간 꾸미는 게 또 다른 꿈”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6.02.0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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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기 울산서점협동조합 이사장

“전국 최초로 울산에서 만들어지는 울산서점협동조합은 다음과 같은 주요 사업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조합 서점들의 도서 공동구매를 통한 원가 절감 ▲새로운 유통서비스업의 전개 ▲대량의 도서 유통을 위한 총판사업의 전개 ▲공공기관을 포함한 대량 도서 납품업의 전개….”

2012년 12월 5일 발기인대회 당시의 설립취지문에도 나와 있듯이 울산서점협동조합은 5개월 뒤에 출범한(2013년 5월 14일) 전국서점협동조합연합회의 든든한 주춧돌이 된다. 그 주춧돌의 중심에는 울산지역 19개 동네서점의 버팀목을 자임하고 있는 박세기(59) 현 울산서점협동조합 이사장이 서 있었다.
 

 

동네서점의 버팀목 ‘울산서점협동조합’

‘동네서점’은 박 이사장에게 처음부터 매력 포인트는 아니었다. 인하대에서 경영학과 교육학을 전공한 그는 젊은 시절 LG그룹 서울본사의 촉망받는 사원 중 한사람이었다. 울산과의 인연은 1982년, 근무 발령이 떨어지면서 시작됐고 이는 그의 인생행로를 통째 바꾸는 계기가 됐다. 울산서 만난 김기옥 씨(56)를 아내로 맞이하고 1녀1남까지 두게 된 뒤로는 숫제 울산에 눌러앉기로 마음을 굳혔다. 울산 생활은 올해로 34년째다.

온라인서점 등장… 동네서점 쇄락 재촉

LG그룹을 떠난 뒤 주리원백화점에서 일하기도 했던 그는 IMF사태가 터진 1997년, 남구 삼산동에서 동네서점 ‘문우당(文友堂)’을 차렸다. 그러나 2013년 조합 설립과 동시에 책방 일은 접었다. 서점 경영 경력이 햇수로 17년. 그러다 보니 업계 부침의 역사는 누구보다 또렷하다.

“1990년대 초부터 2003년까지는 그런대로 할 만한 사업이었죠. IMF 때만 해도 비교적 괜찮은 편이었고….”

상황을 180도로 바꿔 놓은 시기를 그는 2003년도로 기억한다. 그 무렵 정부가 의욕적으로 펼치기 시작한 ‘IT산업 육성 시책’이 전국 동네서점 업계에 찬바람을 몰고 왔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박 이사장은 지금도 가슴이 아려 온다.

“그때만 해도 울산의 동네서점은 100군데가 넘었어요. 중구 원도심에만 예닐곱 군데는 됐는데 지금은 흔적조차 없지요. 남구 신정동, 야음동 역시 마찬가지고.”

2013년에는 동구 남목사거리의 ‘남산서점’마저 문을 닫았다. 박 이사장은 그런저런 이유를 담담하게 정리한다. 인터넷으로 주문·배송까지 감당하는 ‘온라인서점’들이 저가 할인을 무기삼아 ‘오프라인서점(동네서점)’들의 고유 영역을 야금야금 잠식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도서 정가제’를 곧이곧대로 지켜야만 했던 오프라인서점들과는 달리 온라인서점들은 그 당시 아무런 법적 제재도 받지 않았다는 것.

당시 맹위를 떨치던 온라인서점 ‘알라딘’과 ‘YES 24’, ‘인터파크’는 지금도 위세를 과시하는 ‘IT산업 육성 시책’의 총아들이다. 특히 인터파크는 책으로 시작해서 다른 분야로까지 촉수를 뻗친 미국 ‘아마존’의 경영 방식을 착실히 흉내 낸다며 박 이사장은 애써 분을 삭이는 모습이었다. 여행, 의류, 쇼핑에 이르기까지 사업영역을 넓혀나가는 것이 동네서점들을 희생양으로 삼았기에 더더욱 안타까운 듯했다.

울산 동네서점 25곳 중 조합원 19곳

현재 울산지역의 동네서점 (박 이사장은 이따금 ‘향토서점’ ‘골목서점’이라고도 부른다)은 25개 남짓. 이들 가운데 19개가 협동조합에 가입한 이른바 ‘향토서점’들이다.

“향토서점이라 해야 ‘평수 개념’으로 따져 50평 넘는 게 하나도 없어요. 대부분은 골목서점 형태로 운영되고 있지요.”

대로변은 임차료가 비싸 골목으로 찾아들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는 것. 게다가 예전처럼 책을 자주 사서 보는 풍조도 아니다 보니 대부분의 서점들은 베스트셀러나 참고서에 매달리는 경향이 짙다. 박 이사장은 학교 앞 문구점에서도 볼 수 있는 참고서의 비중이 동네서점마다 80% 정도는 된다며 씁쓸한 표정을 짓는다.

그의 말처럼 동네서점 대부분은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정도로 영세하다. 그만큼 매출실적도 볼품이 없다. 바로 그런 점이 협동조합 설립의 동기를 부여했을 법하다. 조합에 가입하지 못한 동네서점은 처지가 조합원서점보다 못하거나 어느 정도 자립기반을 갖춘 서점들이라 했다.

또한 ‘대형서점’이라면 ‘평수 개념’으로 300평 이상의 매장을 갖춘 서점을 가리킨다고 한다. 울산에도 진출해 있는 시청 앞 교보문고와 현대백화점 내 영풍문고, 롯데백화점 지하의 서울문고(‘반디 앤 루이스’)가 바로 그들이다. 동네서점들로서는 그저 부러움의 대상일 뿐이다.

도서운반차량 3대, 부산서 매일 날라

협동조합의 사전적 풀이는 “공동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일정한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조직한 단체”다. 울산서점협동조합의 19개 구성원들은 앞서 언급한 4가지 ‘주요 사업이 ‘공동의 목적’이라는 점에 동의하고 2012년 12월 설립취지문에 함께 서명했다. 만 3년이 지난 지금, 그들은 서명한 사실에 후회하고 있지는 않을까.

박세기 이사장은 힘주어 부정한다. 그의 자신감은 조합원서점들이, 비록 충분치는 않다 해도, ‘규모의 경제’가 가져다주는 실익을 조합원서점들이 저마다 누리고 있다는 판단에 근거한다. ‘도서 공동구매’에 따른 실익만 해도 당장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조합에는 보유하고 있는 도서운반차량이 3대나 된다. 이들 운반차량은 매일 아침 부산시 사상구에 있는 도서유통회사 ‘한성도매’로 출동한다. 한성도매라면 전문서적, 아동서적, 잡지 할 것 없이 ‘대한민국에서 나오는 책은 모조리 다 취급하는’ 곳이다. 조합은 학생용 참고서만 제외하고 온갖 종류의 책을 매일같이 실어 나른다.

울산으로 가져온 책들은 주문한 조합원서점으로 일일이 운반된다. 나머지는 조합 사무실 직원들의 손길을 거친다. 도서 분류, 바코드 부여, 납품 준비는 조합 사무실 여직원 8명의 차지다. 이들 가운데 4명은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뒤 구립(區立)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에서 10∼20년 근무한 경력이 있는 40∼50대의 재원들이다. 이들의 손길을 거치는 도서들은 지자체나 교육청, 혁신도시 내 공공기관, 시립·구립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 작은도서관에서 주문받은 것들이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취급하는 도서를 우리 조합에서도 똑같이 취급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참고서만 빼고 말이죠.” 박 이사장의 말이다.

 

▲ 남구 번영로 조합사무실에서 여직원들을 독려하는 박세기 이사장(왼쪽).

도떼기시장 흡사한 도서납품 입찰 현장

전국적인 현상이기도 하지만, 울산지역 도서 유통시장은 한마디로 무질서하기 짝이 없다. ‘도떼기시장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나라장터’든 ‘학교장터’든 1천만원 이상 도서의 공개입찰이 개시되면 무자격 업자가 판을 친다. 서점과는 무관한 편의점, 주유소 업자까지 마구잡이로 얼굴을 내민다.

사업자등록증 상의 업태가 ‘도서 취급’이면 모조리 무사통과이기 때문이다. 입찰이 벌어졌다 하면 80∼70개 업체가 몰려드는 게 보통이다. ‘우량’ ‘불량’을 안 따지고 납품업체를 제비뽑기로 선정하다 보니 ‘재수 좋은 놈이 임자’란 식으로 덤벼든다.

“그래서 나온 말이 ‘서적 경매시장은 로또시장’이라는 유행어입니다. 수수료 몇 푼 챙기겠다고 ‘무조건 당첨이나 되고 보자’ 하는 식이니 자격증 갖춘 사서가 없어도, 평소 취급 품목에 ‘책’이 없어도 너도나도 불나비처럼 몰려드는 겁니다.”

수의계약이 통하는 ‘1천만원 미만’ 도서의 납품 시장은 ‘엉터리’가 설치기로 유명하다. 예를 들어, 일부 주민센터의 경우, 진열할 도서명을 따로 정하지 않고 그냥 ‘아동도서’라며 주문하면 내용이 어떻든 재고떨이용이든 말든 안 가리고 액수만 맞춰 납품하는 일이 예사라는 것이다.

그래서 서울시교육청과 경기도교육청이 취한 조치가 있다. ‘작은 서점 살리기’ 계획에 따라 조례를 만들어 2014년 12월부터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1천 만원 미만의 도서를 구입할 때는 반드시 동네 중소 서점을 이용해야 한다”는, 입찰 자격을 제한하는 내용의 조례라고 한다. 이러한 제도가 다른 지역으로도 점차 확산되는 조짐이 엿보인다고 박 이사장은 귀띔한다.

“문화사업 추진 위해 ‘몽돌 관장’ 영입”

박세기 이사장은 조합 설립 이후 ‘울산서점협동조합 4대 목표’에만 매달리지는 않았다. 조합 차원에서 접근 가능한 문화사업에도 심혈을 기울여 왔다. 문화사업이 동네서점의 부흥에도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본보기가 ‘인문학 콘서트’ 개최였다. 지난해에만 네댓 차례는 거뜬히 해냈다. 문화를 사랑하는 많은 이들의 협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북구 강동의 ‘인문학 서재 몽돌’을 비롯해 동구 주전의 ‘봄날’ 카페, 중구 원도심 문화거리의 ‘애령’ 카페가 흔쾌히 인문학 콘서트의 무대를 마련해 주었다. 남구문화원의 ‘배꼽마당’, 울주군의 ‘오영수문학관’ 뜨락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 과정에서 인문학 서재 몽돌을 책임지던 이기철 시인을 만났고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박 이사장은 지난해 말 관장 직을 그만둔 이 시인에게 1월 1일자로 조합의 기획·홍보이사 자리를 선뜻 제공했다. 각종 문화 사업을 맡기기 위한 계획된 영입이었다.

박 이사장의 새로운 꿈은 ‘인문학 콘서트’도 마음 놓고 진행할 수 있는 문화 공간을 조합 이름으로 꾸미는 일이다. 예비사회적기업(2013.11∼2015.10)으로 있다가 ‘예비’ 딱지를 떼고 지난해 11월부터 사회적기업으로 재출발 한 것도 실은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디딤돌이었다.

“그러자면 열심히 벌어서 재정자립부터 이루는 게 급선무이겠지요. 물론 독지가의 도움이 있다면 더 없이 반가운 일이지만.”

인천에서 중학교 다닐 때 김수영 프로 9단의 기원에서 배웠다는 바둑은 ‘아마 4단’ 실력. 프로 기사와는 ‘석 점 바둑’을 둔다고 했다. 골프도 즐기는 애주가이지만 조합 사업을 위해 절제하는 습관이 몸에 배어가는 중이라고 했다.

글·사진=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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