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 긴 싸움에 장사 없다
저유가, 긴 싸움에 장사 없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1.14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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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 초 저유가 시대, 저유가 공포라는 말까지 나돌면서 국제유가는 끝도 없이 추락하고 있다. 2004년 이후 12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한 국제유가는 세계 경제의 둔화와 경제위기라는 역풍까지 맞으면서 산유국과 비산유국 모두를 불황이라는 늪으로 몰아넣고 있다.

2016년 새해를 맞이했음에도, 유가 폭락으로 인한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글로벌 유수 석유 기업들은 너도나도 인원 감축과 투자 축소에 나서고 있고, 미국의 석유 및 가스 생산업체 중 3분의 1이 내년 중반까지 도산하거나 구조조정 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세계 시장에서 전망하는 올해 국제유가도 확실한 맥을 짚을 수가 없는데, 유가의 범위도 무척 넓고 다양하거니와, 현재 작용하고 있는 유가의 약세 요인들이 쉽사리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주요 석유 소비국인 인도, 일본, 중국 등의 아시아 국영 석유기업들은 이때를 기회로 삼아 공격적인 투자에 나서고 있다. 거의 전량을 수입하는 한국과 같은 소비국에게는 안정적인 석유 공급이 항상 절실하기 때문에, 지금을 호기로 생각해 저유가로 저평가된 자산을 매입하고 있다.

해외 석유개발 사업에 대한 오해로, 또 다양한 정책적 논리로 시의적절한 때에 한국의 에너지 정책이 펼쳐지고 있지 못한 점은 심히 안타깝게 생각한다.

또 필자가 몸담고 있는 공사와 같이 해외 개발 사업을 통해 석유를 ‘생산’하는 기업에는, 저유가가 장기화될수록 부정적인 타격을 심하게 받게 된다. 막대한 역량을 투입해 탐사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저유가 시기에는 석유의 채산성이 악화되면서 신규 프로젝트와 투자의 연기, 자본지출 축소 등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자, 이제 저유가라는 상황을 자세히 한번 들여다보자. 단순한 논리로 ‘저유가’라는 키워드만 놓고 본다면, 기름 값이 떨어지는데 좋은 거 아닌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상 유가가 10% 하락 시 GDP 대비 0.41% 수준의 실질소득이 증대하는 효과가 있고 가구당 소비여력은 연간 17만원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유가가 떨어진 만큼은 아니어도, 일반 소비자가 주유소에서 체감하는 휘발유의 가격도 현저히 떨어졌으니 말이다.

저유가의 위기에서도 수혜를 입은 업종은 항공, 해운업, 운송업을 들 수가 있다. 국내 굴지의 항공사가 원가 절감 효과를 톡톡히 얻어 누적 영업이익이 97%나 늘었다고 하는데, 해운업과 운송업은 저유가 초반의 혜택도 잠시, 현재는 공급과잉이 심한 탓에 마진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여기서 더 중요한 점은, 우리나라의 4대 핵심 산업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이다. 석유제품, 석유화학, 조선, 플랜트 등 강세 산업이 미국과 중남미를 제외한 대부분에서 수출액이 감소했다고 한다. 2014년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석유제품 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40%가 넘었는데, 작년 말에는 감소 추세가 35%를 넘으며 좀처럼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효자 수출품을 담당하는 이 산업들이 저유가에 발목을 잡혀, 휘청거리고 있다는 것은 저유가가 계속될 경우 한국 경제의 중요한 성장 동력을 잃게 될 수도 있다는 의미가 된다. 우리가 저유가를 바라볼 때, 더 이상 가격 경쟁력이 아닌 한국 산업 전반을 지탱하는 핵심 경쟁력이 흔들리고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이처럼 저유가는 장기적으로 바라봤을 때, 결코 한국 경제에 긍정적인 결과만을 안겨줄 수 없다. 당장 ‘싼 기름 값’이 주는 혜택에 집중할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고려한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초 저유가 시대, 긴 싸움에는 장사가 없다.

<서문규 한국석유공사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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