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님과 동생
형님과 동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1.12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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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주지 영배) 김구하(金九河.1872-1965) 스님과 김설암(金雪岩.1885-1970) 스님은 성해(聖海.1854-1927) 스님의 제자이면서 사형사제지간이었다.

어느 날 사형과 사제가 해운대 해수탕을 찾았다. 형은 도착했으나 동생은 오지 않았다. 현재같이 전화라도 있었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겠지만, 형은 동생의 소식을 몰라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음 시에서는 몇번이나 목욕을 해도 오지 않는 동생을 기다리는 형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해운대 해안에는 풀들이 향기를 풍기지만 (雲臺海岸草菲菲)

해 지도록 사람 없어 문을 반쯤 닫았네 (盡日無人半掩扉)

적막하고 한가한데 차는 빵빵거리며 지나가고 (寂寞閑中車笛動)

저녁노을 그윽하고 새소리도 드물구나 (煙霞渺裡鳥聲稀)

온천에 발 씻으니 세속 인연은 벗게 하는데 (靈泉治足塵緣脫)

친한 벗이 오지 않으니 즐거움도 작도다 (親友不來樂意微)

온천 거듭 해도 그대 생각 지우기 어려우니 (每浴難消君一念)

어떤 연유 있기에 그대 오지 않는 건가 (因何不得錫?飛)

-海雲臺與雪岩和尙相約不到故吟

설암 스님은 갑오생으로 1945년에 수연(壽宴=오래 산 것을 축하하는 잔치. 보통 환갑잔치를 말한다)을 맞았다. 사형인 구하 스님이 사제의 수연을 축하하며 시를 지었다.

누구인들 예순 한 살 봄이 있지 않을까만 (誰不在乎六一春)

어언간 오늘이니 꿈인가 생시인가 의심스럽네 (於焉到此假疑眞)

바람과 구름이 눈을 치니 이 무슨 일인고 (風雲擊目今何事)

달같이 맑은 마음 문득 새로 얻었도다 (水月淸心更得新)

설법하면 능히 알고 꽃비가 내리고 (說法能知花雨動)

등단하면 넓은 학문 부처로 화하도다 (登壇博學化金身)

몇 제자가 스승 위해 수연을 준비하니 (二三徒足爲師?)

향긋한 곡차에 벗들 모두 취했다네 (釀出香?醉友人)

-雪岩和尙?宴詩次韻

사제가 주지에 취임했다. 사형으로서 매우 기쁜 모양이었다. 연거푸 시를 지어 축하했다.

설암 스님은 세납 44세 때인 1929년 10월에 3년 임기의 통도사 주지가 된다. 3년 소임을 마치고 다시 선임되어 3년의 임기를 마친다. 다음 시는 통도사 주지로 선임된 후 축하하는 사형인 구하 스님이 사제인 설암 스님을 위해 지은 시다.

대지에 봄이 오니 꽃비가 촉촉하다 (大地春生花雨陰)

설산에서 내려오니 꽃동산이 펼쳐졌네 (雪山下野布園金)

사자 울음에 깊은 골짜기 여우가 두려워 떨고 (獅聲吼壑驚狐威)

석장 짚고 도량에 임하여 악한 마음들을 풀었네 (法錫臨場解虎心)

달이 어느 때는 흰색이 아니었더냐 (水月何時非白色)

옥류는 오늘도 맑은 소리로 흐르네 (玉流今日又淸音)

의견을 소통함에 더 더욱 믿음 가고 (論交衆望尤尤大)

주지의 직인 지니고서 덕림에 보답하리라 (帶篆行裝報德林)

-金雪巖住持晋山式吟

특별한 이 땅에 봄이 온 것을 깨달았도다 (覺地春生特地陰)

어진 말로 덕을 펴니 어찌 금과 바꾸리오 (仁聲布德換何金)

하늘의 해와 달이 뭇 사물과 조화를 이루듯 (臨天日月和群品)

석장을 높이 들고 이 강산에 불심을 떨치네 (卓錫江山振佛心)

물의 기운과 산의 자태가 활안을 열어주니 (水氣山容開活眼)

솔 거문고 계곡 물 비파 환희 음을 연주하네 (松琴澗瑟奏歡音)

인장을 지님이 청향의 복임을 마땅히 알면 (應知帶篆淸香福)

이제부터 도의 숲은 반드시 성해지리라 (而後必然盛道林)-又

이제는 승가에도 사형사제의 애틋한 정을 찾을 수가 없다. ‘자식 생기면 형님도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동생인 사제보다 자식인 제자에게 관심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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