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운수
신년운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1.12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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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럿이 술자리를 하게 되면 으레 한 명 정도는 사주나 명리를 공부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세상살이 중년을 넘다보면 여러 삶의 부침도 겪는지라 자신의 운명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은, 호기심이든 재미든 자기 생년일시를 말하곤 한다. 이럴 때 그 점쟁이(?)가 다 짚어보다가 잠시 침묵을 지키면 생시를 대었던 사람은 안절부절 못한다.

“아무래도 영 안 좋게 나오지?”

그냥 재미로 본다지만 그 점쳐진 운수는 한동안 신경이 쓰이면서 뇌리에 남는다.

세상은 신(神) 중심의 중세시대를 지나 과학과 합리가 지배하는 시대로 왔지만 현재 사주, 명리, 주역을 공부하는 이들은 늘고, 신문 한 귀퉁이를 차지하던 ‘오늘의 운세’는 이제 최첨단 IT기술에 힘입어 그 시장이 더욱 넓어지고 있다. 타로나 수비학, 점성술 같은 서양기법까지 속속 수입되어 나날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2000년 초반쯤 우리나라 점술 시장 규모가 이미 연간 4조원 정도였고, 지금은 6~7조에 이를 정도로 그 시장 규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자기 운명을 알고자 하는 욕망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현대사회도 마찬가지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 할수록 인간 삶의 불확정성은 역시 같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과거 농촌공동체를 이루던 시대에는 같은 때에 같은 작물을 파종하고 사람이 사는 일상의 범위도 장날 나가는 거리가 가장 먼 거리였고 계절 절기에 맞춰 사는 삶은 누구나 비슷하였다. 그런 삶들은 다음 세대가 사는 삶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예측 가능한 삶이었고, 그렇지 않으면 위험한 삶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했는가?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물질적인 성패가 우리 삶의 질을 극단으로 끌고 가고 있다. 사회적 불안정성이 높아질수록 개인이 느끼는 불안지수는 높아져 취업이 어려운 젊은이들은 ‘헬(지옥)조선’ 이라는 말까지 만들었다.

비정규직 비율이 높아지고 완전고용, 평생고용은 전설 같은 이야기가 되었고, 국가 자격증을 따기 위해 목줄을 매는 이들이 많아졌고, 이를 바탕으로 안정적 직장을 선호하는 추세는 더욱 강해졌다. 불안을 느끼는 연령층은 더욱 내려가 이제 초등학생들도 경쟁적 등쌀에 힘들어 하고 있다.

과학적 이성에 기반을 둔 합리주의가 우리 삶을 지배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더 많은 심리적인 위로나 위안을 필요로 한다. 페이스북을 보면 개인 프로필을 기반으로 새해 운수를 봐주는 내용도 주로 기분 좋을 것만 결과치로 나온다. 점집을 찾아다니는 중독도 자신이 듣고 싶은 점괘가 나올 때까지 점쟁이를 찾아다니기 때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으니 말이다.

이판사판(理判事判)이라는 말이 있다. 막다른 데에 이르러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쓰이는데 원래 뜻은 다음과 같다. 스님 중에는 불교 교리를 공부하는 ‘이판’이 있고, 절 살림을 맡은 ‘사판’이라는 보임이 있다. 둘 중에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절이 유지되기가 어렵다. 하지만 어려울 때는 이판과 사판을 가리지 않고 같이 맡아서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점쟁이는 점을 보는 이론을 위주로 공부하는 사람(이판)이고 점을 보러온 사람은 살아온 이야기(사판)를 늘어놓는다. 살림살이, 사람관계, 가족관계, 사랑, 인연 등등 숨겨온 이런 이야기를 내놓을 사람을 만났다는 것 자체가 본인에겐 힐링이 된다. 하지만 이런 약발은 한 달을 못 넘기고 다시금 찾아가는 것이다. 크게 보면 이도 심리적 위로나 위안을 찾는 방편인 것이다.

각자 살아온 이야기는 누구나 절절할 것이고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이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사판(살림살이)으로 겪는 일은 너무도 풍부하다. 어찌 보면 이 시대에는 너무도 비슷하여 공감대가 많이도 일어날 여건들이 충분하다. 학생이면 공부가 걱정이고, 젊을 때는 취업이 걱정이고, 취업이 되면 결혼이 걱정이고, 결혼하면 아이 낳아 키우는 일에 ‘바람끼’도 걱정이고, 아이가 커 나가면 또 다시 반복된다. 이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내가 어찌 살아야 하고 세상이 어찌 변해야 하는지를 바로 보고 고민하는 분위기는 드물다.

“자기 자신에 대한 냉정한 인식은 비정한 것이기는 하지만 빈약한 추수(秋收)에도 아랑곳없이 스스로를 간추려 보게 하는 용기의 원천이기도 합니다. 아픈 기억을 잊는 것은 지혜입니다. 아픈 기억을 대면하는 것은 용기입니다.” 쇠귀 신영복 선생의 글귀다. 보잘 것 없더라도 자기 자신을 응시하고 새해 새 출발을 하면 좋을 때다. 겨울 산을 혼자 오르는 것도 좋다.

<이동고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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