易地思之=처지를 바꾸어 생각하기
易地思之=처지를 바꾸어 생각하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6.01.11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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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라고 말한 판소리 명창 고(故) 박동진(1916-2003) 선생님이 64세 때 필자의 아버지, 필자와 함께하신 국악 공연의 포스터를 필자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37년 전의 이 공연에는 안비취(1926-1997), 묵계월(1921-2014) 선생님도 함께하셨고, 만담은 장소팔(1922∼2002), 고춘자(1922-1995) 두 분이 맡으셨다.

“지체부자유아 돕기 국악의 향연(자선공연)이 28·29 이틀간 하오 2시·6시 구덕실내체육관에서 열린다. 부산지체부자유아 복지사업후원회 주최, 부산여성불교회 보리수클럽 주관으로 베풀어지는 이번 국악의 향연에는 박동진·묵계월·안비취·김덕명·장소팔·고춘자 제씨가 출연한다.” 당시 신문보도 기사(부산일보.1980.11.27)다.

공연에는 김덕명·정혜자·박계순·최춘자·박상희·김성수·박계현 등 7명이 출연했다. 반주단은 김경옥(장고), 이성진(피리), 김동표(대금), 김경환(아쟁), 이호용(징)이 맡았고 사회는 배뱅이굿 전수자인 국악인 윤평화가 진행했다. 이 공연은 필자의 선친 김덕명이 기획한 행사였고, 부자(父子)가 함께 출연한 의미 있는 공연인지라 그 포스터를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김덕명은 아들이 보기에도 인물 좋고, 키 크고, 남성다움을 두루 갖춘 타고난 춤꾼이었다. 호걸양반춤, 지성승무, 한량무, 교방타령 등 수십 가지 춤의 예능자였지만 그 중에서 하나를 꼽으라면 단연 ‘양산학춤을 내세우지 않을 수 없다.

“같은 복식이지만 양산학춤은 그(동래학춤의 김동원-필자의 임의 지칭)보다 훨씬 열정적으로 학의 세계를 표현하고 훨씬 인간적으로 학의 마음을 표현했다. 한 발 들고 한 발 뒤로 뻗는 기지개 켜는 사위나 한 무릎 끊고 동료에게 위엄을 주는 사위, 혹은 한 발 들고 양 팔을 활짝 펼쳤다가 재빠르게 몸을 굽혀 내리찍는 사위 같은 것들은 김덕명의 양산학춤만이 보여줄 수 있는 뛰어난 춤사위다. 창으로 치면 절창의 대목이다.”(‘양산학춤’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243호. 1996. 김옥진·구희서) 김덕명이 추는 양산학춤을 보고 문화예술평론가구희서가 표현한 글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니 수제자, 아끼는 제자, 심지어 유언장을 써 준 제자 등 자의적 호칭으로 자신을 부각시키는 일들이 꼬리를 물었다. 이러한 행동은 스승의 명예에 도움이 되지 않기에 모두 자제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버지는 사후의 이러한 일들을 미리 염두에 두고 ‘양산학춤’ 가계보(家系譜)의 정통성의 중요성을 기회 있을 때마다 말씀하셨다.

“현재는 김씨(김덕명-필자가 임의로 지칭)의 아들로 출가한 백성 스님이 양산통도사학춤을 전수하고 있다.”(중도일보. 1990. 5. 26)

“김씨는 이 학춤을 둘째아들 성수씨에게 전수하면서 ‘네가 나처럼 학춤을 추고 싶으면 나에게 바로 배우려고 하지 말고 통도사 옆 여의주봉 옆에 가봐라. 거기서 몇 시간 며칠이 걸리더라도 학의 참모습과 노는 모습을 정확히 관찰하고 난 뒤 학춤을 배우라’고 가르치고 있다.”(국제신문. 1991. 7. 12)

“지금도 김옹은 양산학춤의 발전을 위해 칠순의 나이에도 삽량문화제를 비롯한 군내 대소 행사 때마다 시연을 하고 있으며 전통의 맥을 잇기 위해 둘째아들 성수씨(39)에게 전수시키고 있다.”(경상일보. 1992. 9. 2)

“배운 사람은 많지만 배워서 익히는 과정이 힘든 춤이라서 내세울 수 있는 제자가 많지 않다. 그는 자신의 둘째아들 김성수를 다음 세대 전승자로 기대하고 있다. 아들에게 제자 될 것을 다짐받아 놓았다는 것이다. 김성수는 영축총림 방장 스님인 윤월하 스님의 제자로, 법명은 백성이며 통도사 교무국장을 지낸 스님이다.”(김덕명-양산사찰학춤. 열화당. 1992)

“진주와 부산을 오가며 후진을 양성하고 있는 학산 김덕명 선생은 우리 민족 고유의 춤인 양산사찰학춤과 진주한량무(한량무임-필자임의) 등을 둘째아들인 김성수씨(41)에게 틈틈이 전수, 명맥을 잇고 있다. 스님인 김성수씨는 부친의 대다수 춤이 절에서 전래된 것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춤 세계를 이해하고 배우고 있다.”(경남신문. 1993. 07. 31)

“김씨(김덕명-필자가 임의로 지칭)는 2남 3녀를 두었다. 그 중 백성(白性, 본명 김성수, 통도사 교무국장) 스님은 윤월하(영축총림 방장) 스님이 아끼는 제자로 김씨의 둘째아들로서 자신의 양산사찰학춤의 맥을 이어내도록 다짐을 받아놓고 있다고 한다.”(우리전통 예인 백 사람-김덕명, 현암사, 1995)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통도사 비전의 사찰학춤을 스님이 전수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친아들 백성 스님(전 통도사 교무국장)이 아버지 학산 선생의 대표 춤들을 온전히 전수받아 무용가 겸 교육자의 길을 걷고 있다.”(법보신문. 1999. 6. 23)

현재 양산학춤은 할아버지 김두식(1843∼1930)에서 손자 김덕명(1924∼2015)으로, 다시 증손자 김성수에 의해 체계적으로 건강하게 전승되고 있다. 아버지는 생전에 특정을, 비록 아들이라 할지라도, 수제자라고 말한 적이 결코 없다. 선친과 인연이 있는 분들은 이제부터라도 오직 전수받은 춤을 올바르게 전승하는 데 모든 마음을 집중시켜야 할 것이다. “길한 것은 족한 것을 앎보다 길한 것이 없고, 괴로운 것은 원하는 것이 많은 만큼 괴로운 것이 없다(吉莫吉於知足 苦莫苦於多願)”는 서산대사의 ‘도가귀감(道家龜鑑)’의 한 구절이 문득 생각난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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