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비론(兩非論)의 맹점(盲點)
양비론(兩非論)의 맹점(盲點)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9.09 2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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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초기의 유명한 황희 정승은 하인이 어떤 일에 대해 비판했을 때, ‘그래, 네 말이 맞다’ 했고, 같은 일을 놓고 다른 식구가 그 하인과 반대되는 의견을 내어도 ‘그래, 네 말이 맞다’ 했다. 이런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안방마님이 ‘도대체 누구 말이 맞는 것입니까?’라고 채근했을 때, 황희 정승은, ‘그래 임자말도 맞습니다’라고 했다. 이것을 일컬어 양시론(兩是論)이라고 한다.

열 대 여섯 살 된 아들이 게으르고 동네에서 나쁜 짓만 골라서 하니까 참다못한 아버지가 하루는 장설의 훈계를 한 뒤, 마지막 다짐을 하였다. ‘또 다시 이런 짓을 하였다가는 부자지간의 의를 끊겠다. 알았느냐?’ 아들은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용서를 빈 후, 머리를 숙였다. 그러고서 얼마 뒤에 더 큰 사고를 저질렀다. 70이나 된 동네 어른한테 자기 요청대로 들어주지 않으면 ‘패 주겠다’고 하였다. 이 말을 전해들은 아버지가 지난번 다짐을 환기시키며 아주 크게 벌을 주었다. 그랬더니 그 아들이 가출해버렸다. 이 말을 전해들은 동네의 어른들이 ‘동네 노인에게 후레자식의 행동을 한 자식도 나쁘지만, 그렇다고 그렇게 혼을 내어 가출까지 하게 한 아버지도 옳은 일을 한 것은 아니다’고 수군거렸다. 일컬어 양비론이다.

양시론이야 그렇다 치고, 양비론은 상당히 위선적인 사람들이 하는 말짓거리이다. 어느 대학에 아주 위선적인 특정 종교의 맹신도 교수가 있다. 물론 그 주위에는 유유상종(類類相從)하는 교수들도 있는데 이들의 가장 두드러지는 공통점은 양비론을 즐겨 쓰는 데에 있다. 운동장에 잔디를 심고 일정 기간 잔디가 뿌리를 내릴 때까지 들어가지 말라고 여러 곳에 큼지막하게 써 붙였는데 남학생 둘과 여학생 둘이 대낮에 잔디밭에서 막걸리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어느 열정어린 교수가 그들더러 운동장에서 나가라고 소리치는데, 흘끗 한번 쳐다보고 계속 술판을 벌이고 있었다. 세 번을 외쳐도 나가지 않자, 그 교수는 잔디밭으로 들어가 그들한테 가서 남학생 엉덩이를 구둣발로 찼다. 그러면서 ‘사람 말을 못 알아듣고, 글씨도 모르면 사람새끼가 아니고 짐승새끼니까 발로 차서 가르치는 것이다.’ 이 말을 들은 그 위선자들은 ‘잔디밭에 들어간 학생도 나쁘지만, 그렇다고 다 큰 대학생을 발로 차는 것도 나쁘다’의 양비론을 꺼낸다. 자신들은 학생이 수업시간에 전화가 와서 잠시 밖에 나가 전화를 받고 왔는데 ‘F’학점을 주어 골탕을 먹이고, 이를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위선자이다. 남의 행동은 모두 나쁘다고 한다.

교육은 양비론으로 할 수 없다. 국민교육의 기준점, 신상필벌(信賞必罰)의 출발점이 없기 때문이다. 이 기준점이 없는 것이 양비론의 맹점이다. 자칫하면 볼 수 없는 부분이다. 우리나라 교직의 특정 단체는 양비론을 잘 펼친다. 평등사회, 균형발전을 들이대며 경쟁사회와 시장경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들의 주장에 맞지 않는 것들은 모두 그릇된 것이라고 한다. 양비론이다. 양비론에 맞설 수 있는 것은 정론(正論) 밖에 없다. 울산광역시 김상만 교육감은 양비론을 분명하게 지적하며 정론을 따르겠다고 한다. 기대가 된다.

/ 박문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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