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선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지혜 터득했죠”
“혼자선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는 지혜 터득했죠”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6.01.05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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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자 삼동민속손두부 대표
▲ 북구 진장동 울산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 내 농협 하나로마트 로컬푸드 매장에서 다정하게 손을 잡고 있는 ‘삼동민속손두부 김원자 대표(왼쪽)와 박순환 총무.두 사람은 부부사이다.

새벽잠을 잊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 금곡길 49-10에서 ‘(주)삼동민속손두부’를 지탱해 나가는 시골 일꾼들이다.

작업은 새벽 4시에 시작해서 아침 7시면 대충 끝난다. 주문량이 많은 날은 새벽잠을 더 설쳐야 한다. 그런 날들이 추우나 더우나 1년 내내 되풀이된다. 휴일이래야 설과 추석 때 이틀 남짓 쉬는 것이 고작이다.

내비게이션은 아직도 옛날 지번 ‘금곡리 28’을 눌러야 행선지를 보여준다. 4일 새벽녘. 택시 운전기사도 한참 동안의 실랑이 끝에 두부공장을 찾아낸다. 대암댐의 주술로 피어난 듯 새벽안개가 언덕배기에 자리한 두부공장까지 포근히 감싸고 있었다. 이날따라 추위는 잠시 자리에서 물러나 있었다.

-공장 일꾼, 여성 다섯+청일점 하나

스무 평 남짓한 두부공장 내부도 찜통에서 스미어 나온 김이란 점만 다를 뿐 온통 안개에 젖어 있기는 바깥이나 마찬가지다. 공장 직원이라 해야 제각기 위생모를 눌러쓰고 제 할 일에 여념이 없는 아낙 넷이 전부다.

“새댁 한 명은 오늘 쉬는 날이라서 안 나왔어요. 전부 다섯 명인데 매일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쉬지요.”

‘삼동민속손부두’의 대명사나 다름없는 공장 대표 김원자씨의 귀띔이다. 46년생이면 올해로 70줄 초입에 막 들어서는 연세인데도 겉보기에는 아직도 정정한 여장부다. 이틀 전에는 ‘삼삼산악회’ 회원들과 함께 소백산 산행을 다녀왔다.

산악회 이름이 ‘삼삼’인 것은 이 산행모임의 후원자가 삼남·삼동농협인 탓이다. 매월 첫째 토요일이면 어김없이 전국의 산하를 찾아 나선다. 새해 첫 산행에는 관광버스 2대에 약 80명이 몸을 실었다.

그러나 김원자 대표는 1년에 한두 달 빼고는 대부분 빠질 수밖에 없다. 하는 일이 너무도 많고 그만큼 바삐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회비 12만원과 월참가비 5천원만 내는 일이 일상처럼 굳어 버렸다. ‘닭띠 여인’의 타고난 숙명 같은 것일까.

말머리는 다시 두부공장으로 돌아간다. 공장 식구는 여인 다섯에 남정네 하나다. 창사(創社) 동기인 성영자(71), 김원자(70), 김도임(68)씨, 그리고 그 아래로 문소현(40)씨와 ‘새댁’으로 불리는 이현희(35)씨가 여성일꾼의 전부다. 이날 소현씨는 순번휴일로 하루를 쉬었다.

청일점이자 김원자 대표의 부군인 박순환(76)씨는 직함이 이 공장 총무. 마무리 포장과 배송 책임을 맡고 있지만 그의 존재감은 ‘든든한 버팀목’으로 통한다.

월급은 똑같이 110만원씩 가져간다. 고참, 신참이 따로 없다. 그래야 공동체 의식으로 사업을 지탱해 나갈 수 있다.

나머지 수익은 꼬박꼬박 적립해 둔다. 연간 4천만원이나 되는 농협 융자금이며 재료 구입비도 이 적립금으로 해결해 나간다. 재작년까지는 500만원씩 나눠 보태기도 했지만 작년부턴 눈길을 농협 쪽에만 주기로 의견을 모았다. 
 

▲ 민속 손두부를 만드는 여전사들. 왼쪽부터 문소현, 성영자,김도임씨와 김원자 대표.이날 ‘새댁' 이현희씨는 쉬는 날이어서 단체사진 촬영 때 빠졌다.

-비닐 가열 없앤 콩비지 ‘지금 실험 중’

김원자 대표는 지난달 30일부터 팔자에도 없는 새로운 연구에 푹 빠져 있다. 콩비지의 저장기간을 늘리는 일종의 생태실험이다. 생비지에 간물을 넣어서 지켜보기로 했다. 그랬을 때 얼마나 오래 변질되지 않겠는지를 입맛으로 간을 보는 실험이다. 김 대표가 실험 중인 콩비지 한 조각을 떼어내 김도임씨에게 건넨다. 맛 한 번 보아달라는 주문이다. 괜찮다는 반응이 이내 돌아온다.

“지금까지는 비닐 포장지에 넣은 콩비지를 80도 온도 물에 40분 남짓 끓이면 열흘 이상도 괜찮거든요. 그런데 그런 ‘열탕’ 방식이 몸에 안 좋을지 모른다고 이의가 들어왔어요.”

이야기인즉슨 ‘삼동민속손두부’를 부산과 울산에서 다량 주문하고 있는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에서 ‘비닐 포장 후 가열’ 방식에 대한 개선을 요구해 왔다는 것. 이 눈높이에 맞추자면 믿을만한 기관의 ‘인증’이 반드시 필요했다. 울주군청에 자문을 구했다. 군청은 수소문 끝에 어렵사리 한 곳을 알아냈다. 경기도 위생과 소관 실험기관이었고 ‘전국 유일’이라고 했다.

“실험 중인 콩비지를 내일모레쯤 그리로 보낼 참입니다. 그동안 울주군에서 정말 많이 도와주셨지요.” 김 대표의 말이다. 고마움의 표시로 지난달엔 많지는 않아도 이웃돕기 성금이라며 100만원을 기부했다. 신장열 군수와 사진 같이 찍었다며 희색이 얼굴에 하나가득이다.

알고 보니 콩비지는 손두부 못지않은 이 공장의 효자상품이다. 가스보일러 연료비 정도는 거뜬히 나온다. 하지만 매달리는 기간이 11월부터 이듬해 3월 중순까지이니 아직은 ‘겨울 한철 상품’이다. 야채가 쏟아져 나오는 여름철엔 잘 안 팔리는 탓도 있다.

그런데 콩비지 상품은 한 가지만이 아니다. 누런 색깔도 있다. 하루(24시간) 내내 띄운(발효시킨)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공장에 골방이 하나 따로 있다. 콩비지 발효용 골방이다.

“참 맛있고 몸에 좋아요. 청국장 맛이어서 냄새가 싫은 분은 별로 안 좋아할지 모르지만.” 바로 그런 매력이 ‘자연’과 ‘생명’에 집착하는 한살림의 요구를 낳았는지 모른다. 한살림은 공휴일과 토·일요일만 빼고 매일 금곡마을을 찾는다.

-아이들 늘어나는 ‘쇳골’마을 금곡리

금곡리(金谷)의 옛 이름은 순우리말로 ‘쇳골’이다. 이 대목의 설명은 이 마을이 안태고향인 공장 총무 박순환씨의 몫이다. 박씨는 울산농고(현 울산공고) 19회 졸업생이니 이병우 전 북구문화원장과 동기동창이다. 동기생들은 지금도 ‘구일회(19회)’ 이름으로 다달이 한 번씩 만나고 있다.

“지금도 상금곡(上쇳골)에 가면 예전에 파냈다가 그대로 내버려둔 쇠(鐵) 원석을 지금도 볼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쇠 성분이 들어있는 길쭉한 돌덩이로 보시면 됩니다.” 누군가가 광산 사업을 꿈꾸었으나 경제성이 떨어지다 보니 손을 놓았다는 이야기였다.

약 70호 정도가 생활터전을 이룬 금곡리는 세 곳의 자연마을이 합쳐 하나의 동네를 이루고 있다. 상금곡, 중금곡, 하금곡이 자연마을이 그것이다. 하지만 세태의 변화에 따라 참 많이도 변하고 있다. 상금곡에는 10년 전쯤부터 들어서기 시작한 전원주택이 지금은 스물을 헤아린다. 대부분 외지인이 주인인지라 주말이나 휴일이 돼야 사람 냄새라도 맡을 수 있다.

중금곡은 또 다른 색깔을 지니고 있다. 바로 왁자지껄한 어린아이들의 웃음소리다. 두부공장의 ‘새댁’도 중금곡이 보금자리다. 근처에 골프장(보라CC)이 들어서고 난 뒤의 변화다.

“삼동초등학교 재학생 절반이 이 마을 아이들이라고 보시면 될 겁니다.” 김원자 대표가 남편 박 총무의 말을 거든다.

아이들이 많아지다 보니 새로운 고민이 하나 생겼다. 중금곡에 있는 동네 어르신들의 쉼터 금곡경로당 2층을 아이들의 방과후수업 장소로 양보해주다 보니 전에 없던 전기료 문제가 새로 생긴 것. 이 문제는 김원자 대표가 넌지시 귀띔해 준다.

“이런 말을 해도 될는지 모르지만, 어제 그 마을 새댁 한 분이 의논하러 찾아왔어요. 아이들 수업 땜에 전기세가 한 30만 원 나와 신경 쓰이는데 어찌하면 좋겠느냐는 상담이었지요.”

김 대표는 행정당국 같은 데서 이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남긴다. 그 이유를 소신 있게 말한다. “애들을 잘 키워야 나라가 제대로 될 것 아닙니까?”

-메르스·멧돼지로 망친 ‘밭농사 체험’

김원자 대표의 ‘일복’은 12년 전쯤 시작한 ‘체험농장 사업’에서도 찾아낼 수 있다. 벼논과 감자밭, 옥수수밭 이 세 가지가 ‘체험, 삶의 현장’이다. 꾸역꾸역 쉼 없이 매달린 덕분인지 울산은 물론 부산에서도 학생들이 단체로 몰려든다.

모심기 철에는 줄잡아 1천500명이 다녀간다. 또 감자 농사는 600∼700명, 옥수수 농사는 1천 명이 다녀간다. 하지만 지난해에는 두 가지 밭농사 체험을 모두 망쳐야만 했다. 감자 캐기는 메르스 사태 때문에, 옥수수 거두기는 멧돼지의 습격 때문에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그래도 짭짤한 소득은 따로 있었다. 바로 박순환 총무의 책임에 속하는 한우 사육이다. 한동안 폭락세이던 한우 값이 지지난해부터 폭등세로 돌아서서 성우 한 마리 값이 1천만원을 웃돌 정도로 값이 나간 덕분이다.

그렇지만 걱정도 있다. 6∼7개월 된 수송아지 한 마리가 465만원에 거래되니 만만찮은 가격대다. 한때 20마리나 키우던 소가 지금은 3마리밖에 안 남았지만 여건이 허락하면 좀 더 늘린다는 것이 박 총무의 새해 구상이다.

 

-20년전, 학비라도 벌자고 시작한 두부공장
 

울주군 웅촌으로 넘어가는 길목의 산현마을이 고향인 김원자 대표는 금곡마을에 시집 와서 한동안은 논농사에만 매달렸다. 그러다가 마음 맞은 동네사람들끼리 탈출구를 찾기로 했다. 그것이 ‘민속 손두부 공장’ 설립으로 이어졌다.

간판을 내건 때는 20년 전인 1996년도였다. 박순환 총무는 자신 소유의 밭 70평을 두부공장 용지로 대가 없이 내주었다. 울산시농업가술센터에서 지원해준 1천 400만원을 종자돈으로 삼았다.

“사실, 자식들 학비라도 보태자 해서 시작했던 거지요. 물론 사라져가는 우리 것을 지켜내자는 뜻도 있었지만….

하긴 그랬다. 농촌의 아낙네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어깨 너머로 배웠고 늘 접해 왔던 두부 만들기가 아니던가.

그러나 판로 개척이 문제였다. 학비는커녕 제 품삯도 챙기기 힘들었다. 처음 일곱 명이던 일꾼들이 하나둘씩 자연스레 떨어져 나갔다. 그 대열에 젊은 주부들이 앞장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차츰 이름이 알려지면서 이문이 붙기 시작한 것은 5년을 넘긴 해부터였다. 그 험난한 와중에도 성영자, 김도임씨는 20년 내리 꿋꿋이 두부공장을 지켜주었다.

김원자 대표에게는 나름대로 터득한 생활철학이 하나 있다. “혼자서는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는 삶의 지혜다. 그러기에 지금까지 ‘내 몫’을 고집하지 않았고 많은 것을 양보해 왔다.

-마을기업 뒷바라지… 다음 승부처는 ‘로컬푸드’

공장 바로 아래 자택에서 아침식사 대접 한 상 잘 받고 다음 발길을 재촉할 무렵, 금곡마을을 새하얗게 뒤덮었던 안개는 더 이상 자태를 뽐내려 하지 않았다. 남편 박순환 총무가 모는 반트럭(짐차) 뒷좌석에 앉아있던 김원자 대표가 갑자기 가리키는 곳이 있었다. 마을 진입로 건너편 국도변에 설치된 가건물, 바로 손두부 매장이었다.

“자가용 주인들이 오며가며 자주 이용해주는 편이지요.” 여성일꾼 5명이 번갈아가며 매장을 지키는 덕분에 월 300만원 수입은 거뜬하다고 했다. 이 수입도 공동기금으로 적립되기는 마찬가지. 적립된 기금은 국산 콩 사들이는 데도 유용하게 쓰인다.

요즘은 양산시 상북면 삼상마을 10여 개 농가에서 계약재배로 키운 국산 콩을 손두부 재료로 납품받지만 4년 전만 해도 공급처는 전혀 딴 곳이었다. 2일과 7일이 든 날에 열리는 경북 영천 닷새장과 밀양 얼음골 과수원이 그곳. (얼음골에서는 사과나무 사이에 콩을 재배한다고 했다.)

“등잔 밑이 어두웠나 봅니다. 이웃도시 양산에서 콩을 기른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으니까요.”

반트럭이 도착한 곳은 북구 진장동 울산농수산물종합유통센터. 박순환-김원자 부부는 따끈따끈한 손두부 여러 상자를 카트에 옮겨 담은 뒤 농협 하나로마트 로컬푸드 매장으로 향했다.

이 매장은 지난해 6월 초 입점한 뒤 김 대표가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지키고 보살펴 왔던 자식 같은 곳이라 했다. 국산 콩이라는 신뢰감, 그리고 비길 데 없는 순수한 맛이 확실한 고객을 확보한 곳도 이곳이었다. 다음 승부처 역시 또 다른 로컬푸드라고 했다.

“저희들의 오늘이 있기까지는 마을기업지원단과 박가령 팀장의 뒷바라지가 엄청나게 컸지요. 지난해 지원받은 3천만원으로는 저온창고를 지어 국산 콩을 잘 보관하고 있고요.” 삼동민속손두부는 지난 2013년 마을기업으로 선정돼 지난해까지 3년간 홍보와 유통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도움을 받았다.

글·사진=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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