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의 꿈이여, 영원하라
고래의 꿈이여, 영원하라
  • 주성미 기자
  • 승인 2016.01.03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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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관광에 인문을 더하다-中
산업화, 역사와 아픔의 공간 ‘장생포’
▲ 고래잡이가 한창이던 시절, 잡은 고래를 삶던 곳으로 그 시절 모습이 벽화로 그려져 있다.

‘산업관광’을 기업체가 아닌 지자체가 주도할 수도 있다. 다만 산업관광의 대상을 2차 산업 현장으로 제한하지 않고 넓은 시각이 필요하다. 1차 산업과 옛 산업 현장, 그리고 산업화의 이면에 가려진 이야기도 산업관광의 콘텐츠가 될 수 있다.

울산에는 1차 산업으로 최고의 부를 누렸던 곳이자, 대한민국 산업화의 심장이 된 곳이 있다. 남구 장생포, 지금의 남구 고래문화마을이다.

▲ 장생포의 모습과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마을 뒤편 전망대.

◇ 포경(捕鯨)에서 공업단지 그리고 다시 ‘고래’

남구 장생포(長生浦). 바닷가를 따라 길게 늘어선 이곳은 1차 산업인 ‘고래잡이’로 먹고 살던 어촌이었다. 고래를 잡는 선원부터 해체된 고래고기를 장터에 내다파는 아낙네까지, ‘고래’는 장생포 사람들의 삶이었다. 그 영광은 1986년 상업 포경이 금지되면서 사그라들었다.

고래가 사라진 장생포는 대한민국의 성장 동력인 공장들로 채워졌다. 삼양사 등 몇몇 식료품 공장들만 있었던 장생포의 변화는 50여년 전 매암동 납도마을에서 본격화 됐다. 1962년 2월 3일 오후 1시 지금의 한국엔지니어링플라스틱(주)(KEP) 공장 부지에서는 울산공업센터 기공식이 열렸다. “4천년 빈곤의 역사를 씻고 민족 숙원의 부귀를 마련하기 위한”(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치사문 중) 발파음이 울려퍼졌다. 첫해 2억2천만원에 불과하던 울산시의 총 생산액은 1차 경제개발계획이 마무리된 1966년 287억7천만원으로 증가했다. 수출실적도 26만달러에서 765만4천달러로 30배가량 껑충 뛰어올랐다. 울산은 2014년 기준 국내 제조업 생산액의 14.5%, 수출액의 16%를 차지한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은 5만5천달러로 전국 1위다. 바닷가의 작은 어촌이었던 울산은 명실상부한 공업도시로 성장했다.

그러나 그 성장이 화려한 것만은 아니었다. 장생포 앞바다는 뭍이 됐고 공장이 세워졌다. 하루가 멀다하고 악취는 진동했고 모기떼가 들끓었다. 뱃고동 소리보다 공장의 중장비 소리가 커졌다. 거대한 밍크고래에 올라탔던 뱃사람과 이를 구경하다 고래고기 한점을 얻어가던 아이들은 추억이 됐다.

장생포에 ‘고래’가 돌아온 것은 1990년대 후반이다. 옛 명성을 그리며 ‘고래’를 중심으로 마을 축제가 생겼다. 장생포 고래박물관과 생태체험관이 들어서더니 배를 타고 고래를 구경하는 고래바다여행선도 운항됐다. 장생포 사람들의 삶이었던 ‘고래’는 관광 자원으로 되돌아왔다.

▲ 고래 포토존 설치작업이 진행중인 골목길

◇ 떠나간 ‘인어같은 소녀’를 그리는 장생포

뭍이 된 바다는 온갖 폐기물로 그나마도 고향을 지키던 주민들에게 고통이었다. 악취를 참아도 눈 앞을 가득 채운 모기떼는 참기 힘들었다. 주민들은 못살겠다며 봉투 한가득 잡아온 모기를 당시 동사무소에 집어던지기도 했다. 일대 최고의 부자 동네 영광은 사라진지 오래였고 주민들의 불만은 높아졌다. 주민들을 달래고 화합할 처방이 필요했다.

1995년 9월 19일 장생포 바다를 무대로 열린 ‘고래대축제’가 그 중 하나다. 울산고래축제는 장생포 1통 공영지라고 불렸던 작은 공터에서 출발했다. 지금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장생포복지문화센터와 청과물 가게가 들어선 곳이다. 교회 뒤편으로 공터에 천막 하나를 펼친 것이 무대였다. 사람들을 천막 앞으로 불러모아 다함께 노래 부르던 마을 잔치. 그때 무대에 선 이가 장생포에서 나고 자란 가수 ‘윤수일’이다.

당시 장생포동사무소에서 근무했던 김태연 남구 도시창조과장은 천막 아래 기타 하나 들고 노래부르던 윤수일의 모습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소박한 잔치였다. 장생포 앞바다를 배경으로 부르던 ‘환상의 섬’의 기타 선율과 노랫말, 그 모습이 생생하다.”

장생포발전협의회 김병관(62) 회장에게 윤수일은 절친한 고향 친구이자 지금은 볼 수 없는 장생포의 추억을 나누는 낡은 앨범같은 존재다.

“수일은 자기 이야기를 노래로 많이 불렀다. 그 중에서도 ‘환상의 섬’은 죽도 이야기다. 지금은 뭍이 돼버렸지만 그때는 섬이었다. 기타만 있으면 몇시간이고 노래를 부르던 놀이터였다. 물이 빠지고 들어차기를 반복해서 걸어갔다가도 되돌아나올 때면 옷이 홀딱 젖어버렸다.”

사라진 것들에는 환상의 섬인 ‘죽도’와 같은 아이들의 공간이 많았다. 들어치는 파도에 하얀 염분이 얼룩져 ‘백두산’이라 불렸던 벼랑 끝 암벽은 마을 한가운데 언덕이 됐다. 장생포 최고의 전망으로 청춘남녀의 데이트 장소였다는 ‘천지먼당’에는 드넓은 잔디 대신 높다란 억새가 가득하다. 고래가, 장생포의 영광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 묻히듯 잃어버렸다.

최근 장생포의 추억을 되짚는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이제는 죽도의 등허리에 기대 기타를 퉁기던 윤수일이 그리도 잊지 못한다고 말하던 ‘인어같은 소녀’가 돌아올 차례다.

▲ 울산고래축제의 첫 시작인 ‘고래대축제’가 열렸던 장생포교회 뒤편. 김미선 기자

◇ 울산대교 개통 등 ‘산업관광의 중심지’가능성↑

고래잡이의 중심지이자 대한민국 산업화의 시작지라는 점에서 산업관광지로서 장생포가 갖는 의미는 적지 않다. 산업관광의 중심지가 될 이유는 충분하다. 특히 울산대교가 개통하면서 현대중공업과 현대자동차 등 기존 산업관광 대상지와의 물리적 거리도 가까워졌다.

고래관광을 성공적으로 시작한 장생포 일대에서는 옛 흔적들과 이야기를 중심으로 관광자원화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장생포 마을 안길을 정비하는 ‘마을이야기길 조성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가칭 ‘고래 꿈의 길’, ‘장생포 이야기길’, ‘추억의 골목길’ 등의 콘셉트로 꾸며진 벽화, 우물 등 옛 모습을 살린 포토존, ‘백두산’으로 불렸던 구릉지를 전망대로 조성하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관광안내소와 마을카페 등이 포함된 장생포마을 문화지원센터도 순조롭게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새뜰마을 생활여건 개선 사업도 오는 2018년까지 추진된다. 빈집을 게스트하우스로 활용하고 일대 환경을 정비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여름 준공한 고래문화마을을 비롯해 장생포 고래박물관과 생태체험관, 고래바다여행 크루즈 등의 기존 관광인프라도 상당 부분 확충된다. 고래문화마을의 5D영상관이 준공되고 생태체험관을 출발해 고래문화마을을 둘러보는 모노레일 설치도 추진 중이다. 최초로 순수 국산 기술로 만들어진 ‘울산함’은 출항 36년만에 전시시설로 고래문화마을에 돌아온다.

옛 장생포를 추억하는 관광 계획도 있다. 남구는 뭍이 된 ‘환상의 섬’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 울산시교육청과 울산지방해양수산청 등과 협의도 진행하고 있다. 가건물이 들어서 있는 가수 윤수일의 옛집도 복원할 계획이다.

장생포에 숨은 이야기를 발굴도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남구는 올 상반기부터 6개월 동안 3천만원을 들여 고래문화특구 곳곳에 담긴 이야기를 찾는 용역을 실시할 예정이다.

고래문화특구의 관광 계획에는 울산공업센터 기공식 기념 공원 공개를 비롯해 당시 발파를 체험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등 대한민국 산업화의 출발지를 활용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남구 관계자는 “장생포(고래문화특구) 일대에 추진 중이거나 논의 중인 계획들이 2020년께는 마무리돼 관광인프라와 콘텐츠 등을 어느정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장생포는 고래는 물론 산업 등 분야를 아우르는 울산 관광 중심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주성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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