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表紙)갈이
표지(表紙)갈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2.29 2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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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달력갈이’가 시작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달력을 바꾸면서 여러 감회를 갖게 된다. 요즈음의 정치판에서는 긴장하며 허탈감에 빠지기도 하겠지만 어떤 사람(?)은 지긋지긋한 2015년이 간다면서 묵은 달력을 홱 던져버리고, 이것도 행여 누가 훔쳐보는지 훑어보고, 또 다른 어떤 사람은 부푼 가슴을 안고 2016년을 맞이하면서 결기를 보이겠다고 첫 장을 넘길 것이다. 이런 달력갈이와 다르게 표지갈이를 한 교수, 敎授가 아니라 絞首될 사람들은 ‘이럴 줄 알면서 왜 그랬을까?’하면서 취직할 자리를 알아보려면 누구, 누구를 새해 인사드리러 가야 할지 궁리할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그 사람의 가족들이다. 교수(敎授)의 자녀들이 주위로부터 표지갈이 교수의 자녀라고 손가락질 당할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런 손가락질마저 없어진 이 시대의 정의감 상실이 더 개탄스럽다. 배우자가 있으면, 교수의 형사처벌은 퇴직금, 연금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특히 자영업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닌데 어쩌나의 근심, 걱정에 빠져들 것이다.

표지는 책의 겉장, 껍데기이다. 유명한 책 쳐놓고 껍데기를 예술가의 작품처럼 만들어 놓은 경우는 거의 없다. 반대로 유명 서점의 출입구의 좌대에 놓여있는 책 중에서 눈길을 끄는 표지의 책을 펼쳐보면 목차부터 외래어 투성으로 아주 엉성하다. 아마도 왜놈들이 포장을 잘 해서 물건을 많이 팔았던 일화적(逸話的)인 이야기에 디자인 세계가 관심을 갖고 책표지의 디자인을 많이 변화 시킨 것 같다. 화장발 잘 받는 미인의 머릿속에는 참고할 내용이 별로 없는 것과 비슷하다. 서점의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들, 표지가 보이지 않는 책들은 대부분이 내용을 알고 찾는 사람들을 위한 저장의 기능이지 진열의 기능은 아니니 여기서는 논의하지 않는다. 이 말의 초점은 책의 내용과 표지의 예술성은 관계가 없음을 말해준다. 논어 풀이, 반야심경, 신약성경, 코란해설(?)서 들은 특별한 사람들의 디자인으로 표지를 제작하지 않는다.

‘갈이’의 어원은 밭갈이에서 보이듯이 낡고 못 쓰게 된 풀 더미들과 함께 해묵은 땅을 뒤집어엎어 새롭게 하고 다음 농사를 준비하는 일이다. 비슷하게 털갈이도 겨울을 난, 해묵은 털을 새 해에 털어내는 것이다. 그러니까 표지갈이는 너무 자주 들춰봐 낡고 헤어진 표지를 새것으로 단장하는 본래의 모습이 있었다. 옛날 필사본 심청전, 춘향전, 홍길동전 등은 여러 사람들이 돌려가며 빌려 읽어 겉장이 헤어져서 제일 늦게 보는 사람이 고마운 마음으로 표지를 새로 만들어 주인에게 돌려주는 경우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소설가 고 최인호의 한글 사전은 표지가 많이 헤어져 있었다. 필자의 이희승 편 국어 대사전도 표지가 엉망이다. 그러나 두 사람 다 표지갈이를 하지 않고 자랑으로 여긴다. 그런데, 그런데 못 된 교수들 178명이 대학생들이 표지갈이를 해야 할 만큼 읽어 피와 살이 되게 해야 할 전공분야의 교과서를, 그것도 다른 사람의 교과서를 자존심도 없이 표지만 바꿔 출판을 하였다. 특수한 일로 필자의 선택 교양과목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짜깁기해서 제출하는 리포트보다 대학생이면 이 정도의 한자는 알아야 한다는 한자쓰기 연습장을 한 학기 동안 써서 제출하라고 했을 때, 약 3%의 학생들이 치산(癡事)한 짓, 지난 학기에 수강한 친구의 한자쓰기 책을 얻어서 새로 산 한자 책의 표지를 제본하여 제출하였다가 권총을 찬(F학점을 받았을 때 쓰는 속어) 일이 있었다. 이런 일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표지갈이를 하면 공평하게 벌을 받아야 한다. 여기서 공평하게 해야 하는 행정적 처리는 일은 표지갈이를 저질은 교수뿐만 아니라 원저자(原著者)도 법에 따른 벌을 받아야 하는 데에 있다. 비열한 짓을 저질은 교수가 원저자의 양해도 받지 않고 출판사와 밀약하여 출판하였으면 출판사도 표지갈이 공범으로 처벌 받아야 한다. 한편 표지갈이가 이렇게 들추어진 것도 영화 ‘내부자들’에서처럼 출판사의 제보가 있었는지 궁금해진다.

<박해룡 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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