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까마귀야, 내 소원 들어다오”
“떼까마귀야, 내 소원 들어다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2.28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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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악까악 까마귀야 내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니’, ‘까만 까마귀야 내 소원을 들어줘’, ‘까까까 까마귀야 내 소원을 들어주세요’

겨울철이면 떼까마귀의 군무를 원도 한도 없이 볼 수 있는 곳이 울산이다. 다만 부지런해야 한다. 올해도 작년과 비슷하게 5만여 마리가 울산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다. 필자는 떼까마귀에 대한 관심과 노력이 남다르다. 엊저녁에 실컷 안아보았다가 다음날 아침에 다시 보아도 좋은 손자녀석처럼 매일 여명에 만나는 떼까마귀의 첫 비상은 언제 보아도 반갑다.

지난달 18~23일, 울산현대미술작가회(회장 양희숙. 이하 ‘작가회’)가 울산문화예술회관에서 떼까마귀를 주제로 한 ‘오비미락(烏飛美樂)’전을 열었다. 여명에 먹이 터로 날아갔다가 노을이 깔려야 잠자리로 돌아오는, 떼까마귀에 포커스를 맞췄다. 작품들은 흥(興-신바람·비상), 한(恨-맺힘·쌓임·깊음), 신화(神話) 등 3가지 부제 아래 작가 개개인의 개성적 표현을 담았다. 4전시실 ‘신화(神話)’ 파트에서는 떼까마귀에게 바라는 다량의 소원지(소원종이)를 이용해서 만든 대형 까마귀 작품이 벽에 설치됐다.

소원·장래희망 등을 적은 소원종이는 울산초등학교 등 지역 19개 학교 학생들이 작성한 것들이다. 전시회 작품을 철거하는 날, 필자는 양해를 얻어 소원종이를 곱게 거두어 챙길 수 있었다. 며칠이 걸려 모두 1천810장의 소원지를 데이터로 정리해 보았다.

소원종이의 내용은 일반적인 것부터 특별한 것까지 참 다양했다. ‘엄마·아빠 제발 싸우지 않게 해주세요’ ‘부모님, 연필깎이 좀 사주세요. 요즈음 연필깎이가 말을 안 들어 힘들어요. 부모님은 계속 더 쓰라고 하지만 무리예요’ ‘까마귀야, 내가 똑똑해지게 해줘’ ‘제발 엄마가 상냥해지게 해주세요. 제발 부탁합니다’ ‘아빠보다 키가 컸으면 제발 좋겠다.

180까지’ ‘웬만하면 6학년 되기 전에 폰 생기게 해주세요’ ‘지혜롭게 해주세요’ ‘오랫동안 시험 치기 싫다’ 등등…. 특히 ‘다른 거 필요 없고 오늘 빼빼로 받고 싶다’라는 소원을 읽는 순간 필자는 몇 번이고 웃었다. 소원종이 작성에 앞서 아마도 장래희망, 갖고 싶은 것, 꿈과 소원을 적으라고 했었나 보다.

그 중의 한 학생은 ‘우리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해주세요’ ‘스마트폰을 갖게 해주세요’ ‘학원 숙제가 없게 해주세요 ‘큐브를 갖게 해주세요’ ‘강아지를 갖고 싶어요’ ‘컴퓨터게임을 시켜 주세요’ ‘공부 잘하게 해주세요’ ‘형들이 수능 잘 보게 해주세요’ 등 무려 8가지 소원을 빌었다. 마지막엔 ‘이 소원들 꼭 이뤄지게 해주세요. 제발’이라는 글자를 크게 써놓기도 했다. 또 ‘엄마·아빠가 날 포기해 줬으면 좋겠다’라는 소원종이를 접했을 땐 한참이나 상상해보아야 했다. 한 여학생은 ‘결혼해서 아기 많이 낳게 해주세요’라고 소원해 ‘이런 아이가 애국자’란 생각이 들어 웃어도 보았다.

이번 자료정리를 통해 초등학생들이 떼까마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게 되고, 초등학생들이 떼까마귀가 소원도 들어준다고 믿는, 때 묻지 않은 동심의 소유자라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알게 돼 흐뭇했다. 이 또한 매년 겨울 노쇼(No-show·예약부도) 없이 울산을 찾아오는 떼까마귀가 있기에 가능한 일이고, 울산만의 독창적이고 귀중한 자료일 것이다.

데이터에서 40개 이상 집계되는 내용을 따로 모아보았더니 가족, 시험, 공부 등 크게 9개로 정리할 수 있었다. 할아버지·할머니, 아빠·엄마 등 가들의 건강과 행복, 장수를 비는 소원이 337건, 18.6%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 다음 ‘시험 잘 치게 해주세요’ ‘올백 받게 해주세요’ ‘기말고사 잘 치게 해주세요’ ‘시험 칠 때마다 올백하게 해주세요’ 등 시험점수를 잘 받게 해달라거나 공부를 잘하게 해달라는 소원은 248건, 13.7%로 2위를 차지했다. 기말시험을 앞둔 시점이었기 때문일까. ‘시험점수가 잘 나와야 한다’는 이유로는 부모로부터 선물 받기 위해서, 꾸중 안 듣기 위해서라는 답이 비교적 많았다.

얼마 전 중국에서 시험성적이 나쁘다는 이유로 아이를 강물에 밀어 넣었다는 기사가 문득 생각나 씁쓸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도 아이들의 타고난 소질을 개발해 심화시켜주는 교육에 관심을 갖는 것이 어떨까. 창의력 발휘는 뒷전이고 필기해 둔 정답을 달달 외우게 하는 교육이 과연 바람직한지, 곰곰이 생각해볼 때가 됐다. 직업·직책보다 가치관을 더 중요시하는, 인식 변화가 있어야겠다.

그 뒤로는 ‘키 크게 해주세요’(71건·3.9%), ‘친구와 더 친해지게 해주세요’(58건·3.2%), ‘부자 되게 해주세요’(58건·3.2%), ‘휴대폰을 갖게 해주세요’(48건·2.7%), ‘통일 되게 해주세요’(42건·2.3%), ‘애완동물(개·고양이) 키우게 해주세요’(40건·2.2%) 순으로 나타났다.

자료 분석 결과, 어린 학생들은 가족 건강과 공부 잘하게 해달라는 소원을 울산의 떼까마귀에게 빌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어찌보면 새로운 문화의 발견이 아닐까.

울산의 문화예술인들은 그동안 자연생태자원을 바탕에 둔 작품 ‘흑백 깃의 사랑이여’(울산시립무용단 제32회 정기공연. 2013.11.14), ‘내·춤·빛’(울산시립무용단 제35회 정기공연. 2015.04.03.), ‘오비미락’(자연이 주는 선물-울산 떼까마귀. 2015.11.18. 울산현대미술작가회)을 잇따라 선보였다.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울산만의 독창적인 문화와 예술을 꽃피운 것이다. 이번 소원종이 분석 결과를 태화강 생태관광 활성화 자료로 활용해도 좋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다.

<김성수 조류생태학박사·울산학춤보존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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