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만남
첫 만남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2.16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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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뜩 한번 잘 빌어 봐래이. 훌륭한 애기 점지해 주실 거다.”

재작년 봄, 수필협회 문학기행으로 찾아간 조지훈 시인의 생가 앞에서, 동행한 선생님들이 우리 부부에게 권한 말이다. 생가 맞은편 문필봉을 향해 빌어 보라는 것이었다. 4월 초인데도 그 날은 바람이 차고 무지 추웠다.

집사람이야 워낙 뭐든지 정성을 잘 드리는 사람인지라 추운데도 덜덜 떨며 문필봉 쪽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손이 닳도록 빌고 또 빌었다. 하긴, 내색은 안했어도 지난 7년간 그렇게 바라 왔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해 왔다. 그런 정성 덕분인지 여행을 갔다 와서 일주일 만에, 정말 거짓말처럼, 애가 들어섰다.

그 후 열 달이 지나고 또 보름이 지나서, 만두처럼 잘 빚은 듯이 밤처럼 잘 깍은 듯이 똘망똘망하게 생긴 사내 아기가 태어났다. 바로 우리의 선우다.

선우가 태어나던 날. 그날은 입춘일이었고, 산부인과 분만실 복도 유리창 너머의 하늘빛도 너무 보기 좋은 정말 파~아란 색깔이었다. 그토록 좋은 날, 하늘이 곱고 이쁜 줄은 알면서도 막상 곧 아빠가 된다는 실감은 전혀 나지 않았다. 그냥 복도에서 서성이며 아무 생각 없이 기다리기만 할 뿐이었다.

“누구누구 어머니~!”

멍~해 있던 장모님과 나는 간호사의 부름에 놀란 토끼마냥 얼른 달려갔다. 그리고 덮개가 있는 신생아용 이동침대에 누워있는 아기, 선우를 처음 만났다.

첫 만남의 선우는 그리 얌전하지가 않았다. 양 팔과 양 다리에 온 힘을 주며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울고 또 우는 것이었다. 따뜻하고 편안한 엄마의 뱃속에서 탯줄을 잡고 편안하게 놀고 있다가 갑자기 쑥 끄집어져 나오니 자기 딴에도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그래서 마구 울어대는데도 내가 어떻게 해줄지, 머리가 텅 비어 버렸는지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동안 재미있게 봐 왔던 TV 드라마에서는 아빠들이 첫 대면하는 아기를 보며 여유로우면서도 무척 감동스러워 하던데, 나는 그저 무덤덤하기만 했다. 내가 이상한가? 정리되지 않은 감정의 당혹감을 솔직히 표현하지도 못하고, 장모님 앞에서 짐짓 웃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얼굴은 어설프게나마 웃고 있었지만 현실감은 좀처럼 느껴지지가 않았다. 내가 나이만 먹었지 아빠 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당황스러웠다. 뭐라고 멋있는 첫 만남의 인사도 제대로 못한 사이, 아기는 신생아 보호실로 옮겨지고 있었다. 선우와의 민망한 첫 만남은 그렇게 지나가 버렸다.

두 시간이 지나 두 번째 면회를 갔다. 장모님도 뒤늦게 도착하신 어머니도 무척이나 신나 하셨지만 나는 면회실로 그냥 따라가기만 했을 뿐이었다.

신생아 면회실 유리창 너머로 신생아들이 쭉~ 누워있는 것이 보였고, 우리 아기도 한쪽 침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아기보에 싸여 얼굴만 쏙 내밀고 있는 선우는, 계속 울어대서인지, 얼굴이 시뻘건 찰토마토를 닮아 있었다. 신생아는 원래 울어도 눈물이 안 난다지만 선우의 눈물은 위로 솟구칠 정도로 줄줄 흘러내렸다. 또 우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옆에 있는 다른 아기들은 선우의 울음소리에 놀라 멍해 있거나 같이 울고 있었다.

두 번째 만남의 느낌은 ‘이 애가 진짜 우리 아들인가?’였다. 어찌된 셈인지 이뻐 보인다든가 정이 간다든가 하는 느낌은 도무지 들지 않았다. 그리고 이제는 슬슬 걱정까지 되었다. 과연 내가 이 애를 잘 키울 수나 있을까 하고 말이다.

나의 감정은 이제 당황스러움에서 걱정스러움으로 바뀌었지만, 그래도 애기는 살갑게 느껴지거나 이뻐 보이지가 않았다. 그냥 머리가 유별나게 크고 머리숱이 없구나 하는 정도의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선우와의 두 번째 만남은 그렇게 밋밋하게 지나갔다.

그리고 저녁 무렵 세 번째 면회를 갔다. 면회실로 향하는 복도를 걸어가는데 머리가 복잡하면서도 텅 빈 것처럼 중심을 잡을 수 없었다. 이번에는 또 무슨 감정이 들까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면회실 안으로 들어서니 이번엔 선우가 혼자 누워있었고, 더 이상 울지 않고 쌔근쌔근 잘도 자고 있었다. 또 울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그래도 울지 않고 자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그제서야 선우를 찬찬히 볼 수 있었다. 볼이 빵빵한데 복숭아처럼 하얗고 불그스름한 게 제법 이뻐 보였다. 귓볼도 어느새 도톰하니 복스러워 보였다. 부드러운 살결의 목살이 접혀있는 모습도 귀엽기만 했다. 그냥 스윽 하고 정이 갔다. 면회실을 나오는 순간 나도 모르게 살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그렇게 첫날이 저물어갔다. 산후조리원에는 장모님이 주무시기에 나는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둘이 사는 집이었지만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텅 빈 느낌이었다. 하루 사이에 너무도 큰 일을 겪어서인지 피곤이 몰려와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가만히 한숨을 쉬며 천정을 쳐다보는 사이 갑자기 선우가 보고 싶어졌다. 그 빵빵한 볼살이, 도톰한 귓볼이, 귀엽게 접힌 목살이 계속 눈앞에 어른거렸다. 눈물을 쏟아가며 울던 선우의 모습도 같이 떠올랐다.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에 얼마나 놀랐을까 안쓰러워졌다. 선우가 기억하지는 못하겠지만 그냥 환하게 웃어 주지를 못해 정말 미안했다. 선우가 걸어준 기분 좋은 마법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를 꼼짝도 못하게 꽁꽁 묶고 있었다.

<강윤석 울산지방경찰청 아동청소년 계장·울산수필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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