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년을 돌아보며
지난 1년을 돌아보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2.13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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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산 김덕명 선생 추모제가 지난 13일 오후 3시 진주시 전통예술회관에서 개최됐다. 이날 추모제는 지난달 24일 91세의 나이로 유명을 달리한 학산 김덕명 선생의 뒤늦은 사망 소식을 접한 20여명의 제자들이 슬픔을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을 모아 마련된 행사이다. (중략) 특히 이날 추모제에서는 경남도문화재 제3호 한량무 생존 보유자 4명 중 정행금. 김연이 보유자가 촛불 점촉에 이어 첫 잔을 올리고 나서면서 참석한 제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201 5.11.15./뉴스경남)

인용 기사에서 스승의 사망 소식을 뒤늦게 접한 것으로 보아 생전에 스승과 제자들의 불통을 짐작할 수 있다. 특히 그는(정행금을 지칭-필자 임의) “진주 한량무가 1979년도에 단체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도록이 몇 차례 뒤바뀌는 우여곡절을 겪었다”면서 “한량무가 진주 한량무로서 정립되는 등 정상화돼야 눈을 감을 텐데. 요즘 들어 마음이 조급하다”고 말했다.(뉴스경남/2015.09.13.)

기사 내용을 정리하면, 김덕명으로부터 한량무 색시 역을 전수한 정행금은 추모제를 지내면서 스승으로부터 전수한 한량무를 진주 한량무로 명칭을 변경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한 차례 ‘한량무’를 ‘진주 한량무’로 명칭을 변경했다가 원상 복귀한 것을 김덕명 사망이후 또다시 진행되는 듯한 느낌이다. 차제에 도대체 왜 명칭을 변경하려는지 그 의도를 살펴보고 무리함을 지적하고자 한다.

첫째, 양산 출신 김덕명이 남긴 진주의 흔적 지우기다.

“이 민속춤(한량무를 말함-필자 임의)이 진주에 본격적으로 뿌리를 내리게 된 시기는 76년 고 김자진(당시 진주팔검무 예능보유자)씨와 고 박세제(당시 진주민속예술보전협의회 이사장)씨에 의해 학산 김덕명(68)씨가 추대되어 오면서 부터이다.”(주간 진주신문, 1992.3.2.) “김덕명씨가 17세 때부터 10여년간 고수 길원장과 평양명기 김농주로부터 사사받아 진주에서 정필순, 김연이, 서정남, 정행금, 성계옥, 최금순, 김정애 등 문하생 7명에게 한량무 각 배역별 춤 총체를 지도·전수시켜 79년 5월 2일 경상남도로부터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받았다.”(부산매일신문, 1991.3.13.)

인용한 보도를 종합하면, 한량무 전 과정을 숙지한 김덕명을 진주로 초청해 각각 배역을 전수한 끝에 무형문화재로 지정받았다는 내용이다.

둘째, 강귀례(1906~1978. 진주검무 보유자)의 부각은 무리다.

‘정행금 보유자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그러하듯 어려서부터 어머니에게서 배운 바느질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전통 춤에 대한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남다른 열정을 삭이지 못한 정 보유자는 35세 때에 춤을 잘 추는 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강귀례 선생의 학원을 찾아가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진주검무에 대한 매력을 더욱 느끼는 계기가 됐다.’ 진주 권번에서 한량무를 익힌 강귀례(1906~1978. 진주검무 보유자) 선생이 1969년 한량무를 재연해 1970년부터 진주검무 회원들에게 전수시킨 바 있었으므로 그 명맥을 이어 1979년 경남문화재로 지정받을 당시 보유자 8명 중 한 명이 색시 역을 분담하고 있는 정행금 선생이다.(뉴스경남/2015.09.13.)

정행금(鄭幸今, 1936∼)이 35세부터 강귀례의 지도를 받았다면, 1971년도가 된다. 1976년 이후 김덕명으로부터 색시 역을 전수받을 필요가 없지 않을까.

셋째,〈교방가요〉승무(僧舞, 이하 승무)를 전거로 내세운다.

『교방가요(敎坊歌謠)』는 박원(璞園) 정현석(鄭顯奭:1817∼1899)이 1872년에 편찬한 일종의 ‘교방문화기록서’라 할 수 있다. 교방가요는 진주목사 때 보고들은 것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된다. 박원은 1870년 6월 진주목사에서 곧바로 김해부사로 부임하는데 편찬한 곳은 김해부사의 거처로 추정되는 미금당(美錦堂)이다.

승무의 등장인물은 소기(少妓)·풍류랑(風流郞)·노승(老僧)·상좌(上座)·일소기(一少妓) 등 5명이다. 젊은 기생 역에 2명이 등장하는 것이 이채롭다. 현행 한량무의 등장인물은 마당쇠·주모·한량·색시·노승·상좌·별감 등 7명이다.

승무에 등장하는 풍류랑은 쾌자를 입는다. 색상은 미상이다. 풍류랑은 소기에게 금혜(錦鞋=비단신)를 신겨주며, 노승은 색혜(色鞋=꽃신)를 신겨준다. 한량무에 등장하는 한량은 푸른 도포를 입는다. 왼손에는 긴 담뱃대를, 오른 손에는 부채를 든다. 명칭을 변경해야 할 정당성을 구태여 교방가요에서 찾는다면 ‘승무’ 혹은 ‘진주승무’로 재현하는 것이 타당하고, 기존의 ‘한량무’는 김덕명의 고향 양산으로 돌려보내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예인(藝人)의 고향과 지역성을 따지는 예술계의 관행을 혁신하는 참신한 바람이 진주에서부터 불어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성수 울산학춤보존회 고문·조류생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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