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등(吾等)은 자(玆)에,
오등(吾等)은 자(玆)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9.07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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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이를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吾等은 ‘우리들’로, 玆에는 가리키는 ‘이’로 번역한다.

‘우리 조선은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하노라.’ 이 독립선언문을 1919년 3월 1일에 서울의 태화관에서 민족 대표 33인이 서명하고 선포하였다. 민족대표 33인 가운데에는 한용운 같은 훌륭한 분도 있었으나 전대미문의 제자를 성추행한 중앙보육학교 박희도 교장도 있었다.

울산은 전국의 국민들이 국민대표(여기서는 민족대표가 아니다)가 되어 여러 첨단 장비를 갖고 일하는 곳이다. 그러다보니까 한용운 같은 사람도 있고, 박희도 같은 사람도 있다. 외솔 최현배 선생 같은 분이 나왔고, 울산 교육감을 두 번이나 불법으로 선거하여, 어른 없는 교육이 상당기간 시행되기도 하였다. 더불어 언론사까지 연루되고 대학의 교수까지 물증은 잠적하고 심증이 가는 문제만 남겨 하마터면 세 번의 교육감 공백 기간을 맞을 뻔 했다.

엊그제 이명박, 국민을 섬기겠다는 대통령이 울산을 공식 방문하였다. 국민을 섬기기 때문에 울산발전전략 보고도 받았다. 우연한 일치이었겠지만 대통령이 울산을 방문한 날, 현대자동차 노사협상이 잠정적 합의에 이르렀고, 울산의 언론들은 잠정적합의 자체를 무척 반기며 대서특필하였다. 그리고 다음 날, 노·사간의 잠정적 합의안이 반대 61%로 거부당했다. 현대차노조 집행부 장악을 위한 반집행부(反執行部) 5대조직의 ‘현장실천단’이라는 연합조직이 부결운동을 열심히(?) 한 승리이었다.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가 되어 직접, 간접의 착취와 억압을 36년 동안 받았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식민지의 학생들에게 일본학생과 똑같이 유도도 가르치고 학교에 수영장을 만들어 수영도 가르쳤다. 부모들이 헤엄 잘 하는 놈, 물에 빠져 죽는다고 반대했어도 그랬다. 박태환을 보고 일본 사람들 후회할 것이다. 받을 것 조금 받았어도 인격모독과 엄청난 시달림 속에서도 우리 조상들은 3·1 독립만세를 불렀다. 울산은 지난 십 수 년 동안 현대자동차의 노사협상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울산이 현대로부터 많이 받아왔다. 그러나 시달릴 만큼 시달렸다. 그래서 ‘오등(吾等)은 자(玆)에, 我(아) 울산(蔚山)은 대한민국(大韓民國)의 광역시(廣域市)임과 울산시민(蔚山市民)은 자주민(自主民)임을 宣言(선언)하노라.’고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원들에게 각성하기를 촉구한다. 울산시민들이 참을 만큼 참아왔다.

한 때 나라의 군부지도자들이 권력만을 차지하기 위해 부당한 행동을 저질렀다. 이렇게 부당한 짓을 하여도 힘없고, 많이 배운 것도 없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지식인들조차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반대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정당성이 없어서 물리적 힘을 과용했었다. 이때 반체제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의 ‘이상성(理想性)’이 목숨 걸고(전태일 분신) 한 자리를 차지하여 투쟁 일변도의 오늘에 이르렀다. 작금의 현대자동차의 노동운동은 울산시민들에게는 귀족운동으로 비쳐지고 있음을 ‘현장실천단’은 감지해야 한다. 울산광역시민 33인 대표가 결성되어 ‘울산광역시민, 현대자동차로부터 자주 독립선언’을 하기 전에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무노동, 무임금 기본원칙 하나만 시행하면 다 해결된다.

/ 박문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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