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교육을 교육혁신의 중심에 둬야겠지요”
“직업교육을 교육혁신의 중심에 둬야겠지요”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5.12.08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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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석 울산과학대학교 총장
▲ 허정석 울산과학대학교 총장.

“제 나이요? 호적이 잘못 된 거지요”

허정석(許政錫) 울산과학대학교 총장을 그의 접견실에서 만난 것은 지난 4일 오후. 총장실 있는 곳이 남구 울산대학교 옆 서부캠퍼스이겠지 하는 지레짐작은 큰 오산이었다. 동시에 대단한 결례였다. 방향을 동구 쪽으로 틀어 초고속으로 달린 덕분인지 많이 늦지는 않았다. 그래도 미안한 마음은 쉬 가시지 않는다. 한데도 총장의 표정은 의외로 밝다. ‘손님에 대한 예우이겠지…’. 하지만 1시간 가까운 대화시간 내내 표정은 밝은 그대로다. ‘천성인지도 모르지…’

미리 건네받은 자료를 잠시 살피다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4월 8일’이란 날짜다. ‘울산과학대학교 연혁’에 적힌 1969년 4월 8일은 ‘학교법인 울산공업학원’이 설립인가를 받은 날이다. 그렇다면 ‘총장 프로필’의 1955년 4월 8일은? 바로 허 총장의 생년월일이다. “올해, 만으로 예순이란 이야기인지?” “아닙니다, 허허. 호적이 잘못 된 거지요.”

실제 생년월일은 음력으로 1953년 10월 10일이라 했다. 하긴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1950년대만 해도 유아사망률이 아주 높았던 시기다. 그러다보니 시골에서는 출생신고를 1년 혹은 2년 후에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또 닷새장 서는 날을 골라 면사무소에서 무더기 신고하는 일이 많다 보니 비슷한 또래의 생일이 ‘같은 장날’인 경우도 적지 않았다. 허 총장의 안태고향(출생지) 경남 김해시 삼계동은 그때만 해도 농촌지역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만도 했을 법하다.

“우리 학생들, 공부 너무 잘해요”

허정석 총장이 ‘울산대학교 산학협력부총장’에서 ‘울산과학대학교 총장’으로 명함을 바꾼 시점은 2013년 3월이다. 울산대 교수 직함을 받은 시점이 1986년 3월이었으니 만 27년을 울산대에서 봉직한 ‘정통 울산대 맨’인 셈이다. 그 사이 학교법인 이사장을 두 분 모셨다. 제4대 이사장 정몽준 박사(전 국회의원)와 제5대 이사장 정정길 박사(전 울산대 총장)다.

물론 전임 총장 시절부터 쌓아온 업적이 비옥한 밑거름으로 작용했겠지만 허 총장이 취임 이후 남긴 업적은 실로 괄목할 만하다. 교육부와 중소기업청이 지원하는 ‘기술사관 육성사업’에서 올해를 합쳐 6년 내리 ‘우수사업단’에 선정된 것이 대표적인 본보기다. 지난 10월 30일자 울산제일일보 릴레이기고 <기술에는 정년이 없다>에서 허 총장은 ‘기술사관 육성사업’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 사업은 울산공고에 재학 중인 학생들을 선발하여 울산과학대에 진학시켜 교육을 받게 한 후 중소기업 취업을 전제로 전부가 교육비를 제공하는 산·학·관 협력사업의 대표적 모델이다.”

울산과학대는 이 사업을 뒷받침하기 위해 울산공고 화공과에서 인큐베이터 과정을 거친 30명씩을 해마다 환경화학공학과에 받아들이고 있다. 허 총장은 최근 울산의 중견기업 D유화에서 신규로 채용한 30명 가운데 17명이 울산과학대 기술사관 양성 과정을 거쳤다는 사실을 몹시 대견스러워 했다. “우리 학생들, 공부 너무 잘해요.” 제자 자랑이니 ‘팔불출’은 아닐 터이다.

인터뷰 내내 그의 소신은 분명했다. “대기업은 구직자로 넘쳐나고 중소기업은 구인난으로 애를 먹고 있지 않습니까? 균형 잡힌 인력양성 정책을 펼쳐야 합니다. 현장맞춤형 직업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한마디로 ‘직업교육을 교육혁신의 중심에 두어야 한다’는 신념을 그는 한시도 놓고 싶지가 않다.

“로이드 인증, ‘교육내용 국제수준’ 의미”

울산과학대 가족들에게 ‘WCC’란 표현은 남다른 자부심의 상징이다. ‘세계적 수준의 전문대학(World Class College)’이란 의미를 지닌 까닭이다.

교육부가 ‘글로벌 역량을 갖춘 한국 최고의 전문대학을 육성한다’는 취지로 2011년 8월에 처음 시작한 WCC 선정 사업은 시행 첫 해부터 울산과학대에 자부심을 가져다준다. 전국 146개 전문대학 가운데서 당당하게 1위로 선정된 것이다. 지난해 11월엔 교육부의 WCC 재지정 평가에서도 무난히 ‘합격’ 통보를 받는다.

이밖에도 자랑스레 내보일 만한 훈장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2013년 6월의 간호교육 평가 인증 획득(교육부 및 한국간호교육평가원 주관), ▲같은 해 7월의 전문대학 교육역량 강화사업 6년 연속 선정(교육부 주관), ▲같은 해 8월의 교원양성기관 평가인증 획득(교육부 및 한국교육개발원 주관) ▲지난해 6월의 특성화 전문대학 육성사업 선정(교육부 주관) ▲지난해 11월의 ‘2014 전문대학 지속지수’ 평가 전국 1위(CSR리서치센터 주관) 등등 이루 다 소개할 수는 없다.

특히 올해는 굵다랗게 밑줄 그을 만한 경사도 맞이했다. 영국의 로이드선급협회(Lloyd’s Register)로부터 국제인증을 받아내고 지난 9월 협약식과 현판식을 동시에 가진 일이다. 허 총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말한다. “우리나라 제조업, 이미 세계적 수준입니다. 하지만 직업교육은 안 그렇거든요. 세계적 권위의 로이드선급협회가 용접 분야의 국제인증을 선뜻 내주었다는 것은 우리 학교의 직업교육 내용이 세계적 수준에 올라와 있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교육내용의 세계화’! 분야별로 모조리 이루어내고 싶은 이 구호가 허 총장에게는 ‘꺼지지 않는 불꽃’ 같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울산과학대 유지취업률 77.1% ‘전국 1위’

울산과학대는 취업률은 물론 ‘유지취업률’에서도 전국 상위권이다. 취업률이 일반대학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전문대학 중에서도 상위권이라는 말은 곧 전국 대학 중에서 상위권이라는 뜻이다. 이 학교 졸업생의 2014학년도 취업률은 76.9%로 구미대학에 이어 전국 2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유지취업률로 따지면 77.1%로 당당하게 ‘전국 1위’다.

시사상식사전(박문각)은 ‘유지취업률’을 ‘대학 졸업자가 일정기간이 지난 후에도 취업한 직장에서 계속 근무하고 있는지 조사한 취업률 지표’로 정의한다. 대학들이 졸업생들을 단기간 취직시켜 놓고 이를 취업률에 반영시키는 편법을 막기 위해 교육부가 2012년부터 도입한 지표다. 매년 6월 직장건강보험 자료(DB)를 근거로 대학졸업자의 취업률을 조사한 뒤 9월, 12월에도 건강보험을 계속 유지하고 있는지 조사해서 산출하는 것이 흥미롭다.

‘유지취업률 전국 1위’라는 고무적인 사실이 허 총장으로서는 도무지 싫지가 않다.”유지취업률이 높다는 건 졸업생들이 그만큼 안정적인 직장에서 일하고 있다는 얘기 아니겠습니까? 청년실업률이 고공행진을 하는 마당에 우리 대학 졸업생들이 전국에서 제일 안정적인 일자리를 보장받고 월급도 남부럽지 않다는 것은 아무 대학이나 흉내 낼 수 없는 일이지요.”

 

▲ 지난달 우즈베키스탄 IT College를 방문한 허정석 울산과학대 총장(앞줄 한가운데)이 ‘신 아그리파노교장을 비롯한 학교 관계자들과 함께 기념촬영에 임하고 있다. 사진제공=울산과학대 기획팀

“우즈베키스탄 유학생 계속 받을 것”

허정석 총장의 또 다른 목표는, ‘로이드 국제인증’ 건에서도 잠시 말이 있었듯이, 울산과학대 가족들이 세계적 안목을 갖추는 일 즉 ‘세계화’에도 있다. 지난달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시켄트의 ‘IT College’를 찾아간 배경에는 그런 목적의식이 깔려 있다.

“IT College는 우즈베키스탄에서 굉장히 뛰어난 수재들만 입학하는 고등학교지요. 등록금을 다른 학교는 안 받는데 유독 이 학교만 받을 정도로 학생이나 교직원들의 자부심이 보통이 아닙디다. 또 이 학교의 지정 외국어는 2개 국어뿐인데 바로 영어와 한국어랍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했다. 교육열 대단하기로 유명한 이 학교 교장 ‘신 아그리파노’씨(상원의원 겸직)가 고려인(카레이스키)이기 때문이다.

울산과학대와 IT College의 인연은 이수동 전임 총장 재임기로 거슬러 오른다. 울산과학대는 허정석 총장 취임 이전인 4년 전부터 매년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학생 8∼9명을 유학생으로 받아들였다.

다만 올해는 받지 못했다. 유학생들의 필수무기인 ‘한국어 연수’ 문제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허 총장이 타시켄트 현지에 ‘UCU(University College of Ulsan) 우즈베키스탄센터’를 세우고 돌아온 것도 그곳 유학생들을 장기적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사전 포석이었다.

“앞으로 교량 역할을 해낼 겁니다. 재능 있는 아이들을 우리 학교에서 가르친 다음 UNIST나 KAIST, 울산대 같은 상급학교로 진학시킬 생각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 유학생들이 본국에 돌아가더라도 결국은 한국과 울산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믿음을 허 총장은 갖고 있다.

앞으로는 향학열이 강하다면 고려인 아닌 현지인도 끌어안을 참이다.

“학력중심 아닌 능력중심 사회가 바람직”

인터뷰가 끝날 무렵 그의 육영(育英)철학에 한 번 더 귀를 기울이기로 했다. 그의 철학은 단호한 데가 있었다. “기존 대학은 아카데믹한 분위기에만 안주하려는 경향이 있어요. 산학 협력을 통한 현장직무교육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바꾸어 말해, 우리나라 대학교육은 지나치게 학문 위주, 엘리트 위주의 교육이라는 것이다. 세계를 혁신한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현장직무교육을 디딤돌 삼아 딛고 일어난 사람들이라는 게 그의 지론이다. 또 바로 그런 사람들의 생활철학은 ‘아산(峨山)정신’과도 맥을 같이한다는 게 그의 굽힐 수 없는 신념이다. “우리는 아직도 학력 중심의 사고에서 못 벗어나고 있어요. 보세요. 미국 여판사들의 남편 중에는 배관공 같은 현장직업인이 의외로 많다고 하지 않습니까?”

조선조 성리학의 영향 탓일까. 우리나라에는 아직도 직업의 귀천을 따져 노동을 경시하는 풍조가 많이 남아있다. 허 총장은 그런 점이 못내 안타깝다. ‘학력 중심’이 아니라 ‘능력 중심’의 사회로 가야 한다고 굳게 믿는다. 전문대학을 ‘4년제 대학 못 가는 학생들이 가는 곳’이란 사회적 통념도 확 바꾸어야 한다는 게 그의 변치 않는 신념이다.

“우리 공학도들, 논문 작성에만 매달릴 게 아니라 직접 물건을 만들어 승부하는, 승부사 기질을 저마다 지닐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4년전 ‘사진’에 취미… 바빠서 뒷전

김해 출신인 허정석 총장은 개성중, 부산고를 거쳐 서울공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이어 서울대대학원 전자계산기학과를 나온 뒤 다시 부산대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대학원 진학에 앞서 그는 해군에서 복무하고 해병중위로 제대했다. 해군 기수로 치면 ‘해간 59기’에, 해병대 기수로 치면 ‘OCS 65차’에 해당된다.

4년 전부터 사진에 취미를 붙였지만 워낙 바쁘다 보니 카메라와 동떨어져 있을 때가 더 많다. 이따금 동구 ‘한마음 선원’(대한불교 조계종)에서 대행 스님의 설법을 들으면 마음에 평화를 느낄 수 있다. 6년 손아래 손은경 여사와의 사이에 2녀 1남을 두고 있다. 글= 김정주 논설실장·사진= 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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