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신문기자’와의 대화
'전직 신문기자’와의 대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2.06 2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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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사이트라도 ‘인명사전’에 오른다는 건 행운이다. 그런 선배가 울산에 한 분 있다. 한데 인명사전의 설명은 의외로 짧다.

“출생=1941년, 부산. 직업=소설가, 전직 신문기자. 학력=울산대학교 교육대학원.” 이분을 ‘선배’로 모시는 이유가 있다. 신군부의 언론통폐합 이전까지 부산의 신문사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인연 때문이다. (신문기자 조갑제도 그를 ‘선배’로 예우한다.)

C 선배가 사진 마니아들과 취미동아리를 만든 건 4년 전이다. 울산대 평생교육원 ‘사진창작반’ 동기생들을 불러 모았고, 이름을 ‘율리시스(Ulysses)’라 지었다. 그러고는 이렇게 의미를 갖다 붙인다. “율리시스란 열기로 이글거리는 태양 주변을 돌며 태양을 촬영하던 관측선이었다. 율리시스는 고대 서사시 오디세이(Odyssey)의 주인공, 바다를 누비던 탐험가였다. 율리시스는 카메라 작가들에게 필수 덕목인 정열, 집념, 탐색, 모험 정신의 상징이다.” 네 가지 덕목은 어쩌면 자신의 인생을 압축하기 위한 단어들인지도 모른다.

율리시스의 ‘세 번째 창작사진전’이 지난 2일부터 엿새간 울산문예회관 4전시실에서 열렸다. 회원 16명의 작품 46점이 선보인 사진전의 주제는 ‘철도…우리 삶의 또 하나의 길’. 출품작들은 하나같이 제목도 작가이름도 달지 않았다. 덕하역, 호계역… 사진 속 몇 낱의 글자만이 어느 역인지를 간신히 짐작케 할 뿐이었다. 보이는 대로 감상하라는 뜻이었을까. 하지만 작품 사이의 글 몇 줄이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철길은 사람과 사람, 여기와 저기를 이어주는 하나의 따뜻한 핏줄이다.” “철길은 끝없는 수평선이지만 버팀목이 수평의 고독을 달래준다.” “철길은 두 가닥으로 매정하게 길게 뻗어있지만, 길고 긴 먼 훗날 어디쯤에서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심어준다.” 팸플릿 서문에서는 이런 말도 남겼다. “철도는 우리의 삶과 밀착된 또 하나의 동반자이다. 삶의 기쁨, 이별, 고통, 낭만, 슬픔이 같이 묻어있기에…. 그 철길에 자갈돌처럼 깔려있는 숱한 기다림. 그 기다림이 너무 길고 외로워 철도는 두 갈래 길이 된 것인지도 모른다. 철길이 있는 한 우리에겐 길고 긴, 그리고 끈덕진 희망이 있다.”

선배와의 인연은 꽤나 질기다. 1980년, 신군부가 ‘언론통폐합’의 칼을 빼들었을 때 둘은 맥없이 쫓겨나야만 했던 아픈 기억이 있다. 그래서일까, 선배는 ‘전직 신문기자’보다 ‘해직 언론인’이라 불러주기를 더 바란다. 쫓겨난 후 그는 ‘풀칠’을 위해 자장면 장사에 손을 댔고, 그 경험은 동아일보 논픽션 당선작 ‘C반점의 데카메론’을 낳는다. KBS 드라마 ‘해뜰날’(1992.3∼9)과 MBC 베스트극장의 ‘C반점 이야기’는 둘 다 이 작품이 모태였다. 선배를 다시 만난 것은 6월 민주항쟁이 일어난 1987년 여름 서울에서였다. 둘은 ‘테헤란로’에서 주간지 창간 준비로 같이 땀을 흘렸다. 조갑제 기자 부인이 근무하던 경향신문 조사부에서 듣던 서울시청 광장의 함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 듯하다. ‘재재회’의 감격은 그로부터 10년이 더 지난 울산에서 나누게 된다. 6월 항쟁 무렵 그는 12·12 군사쿠데타군에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김오랑 소령(1990년 중령에 추서) 이야기에 한동안 빠져든다. 신군부에 대한 사무친 반감 때문이었을까. 그러나 그 팩션(faction)은 미완의 장으로 끝나고, 대신 다른 작품이 빛을 본다. 김 중령의 부인 백영옥 씨의 처절한 삶을 다룬 ‘눈먼 이의 수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 작품은 상복 많은 선배에게 ‘제3회 소설21세기문학상’도 안겨주게 된다. 1989년, ‘울산 최초의 일간지’ 창간멤버로 참여했다가 본격적인 소설가의 길로 접어든 선배는 이후 방송 쪽에서도 열정을 불태운다. (그는 울산KBS 라디오 ‘딱따구리 아지매’의 12년째 집필자다.) 그러한 선배를 지난해엔 하마터면 다시 못 볼 뻔했다. 암 투병 때문에. 건강을 되찾아가는 선배의 이름은 ‘해직 언론인 조돈만’이다. 오래 건강하기를 간절히 빈다.

<김정주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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