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출신 육상스타 故 서말구 교수를 그리며
울산출신 육상스타 故 서말구 교수를 그리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1.30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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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출신의 육상 단거리 스타 서말구 교수가 30일 61세의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났다.

그는 1955년 5월 25일 태어났다.

동구 방어진중학교를 졸업했다. 울산고등학교를 육상 명문으로 전국에 각인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동아대학교 재학 시절 한국 최고 스프린터로 이름을 날렸다. 1979년 멕시코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 대회에서 10초34의 100m 한국기록을 세웠다. 이 기록은 2010년 6월 김국영이 10초31로 당기기 전까지 무려 31년 동안 최고 기록으로 남아 있었다.

2005년 10월 15일. 당시 서말구 해군사관학교 체육학과 교수는 모처럼 고향 울산을 찾았다. 전국체전이 열리고 있는 울산종합운동장을 찾은 것이다. 82년 은퇴 이후 한 번도 전국체전을 찾지 않았다가 고향에서 열린다는 소식에 울산을 왔다는 서 교수는 26년이나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는데 대해 “지도자들의 책임이 크다”고 꼬집기도 했다.

그는 1984년부터 1987년까지 롯데 자이언츠의 코치이기도 했다. 코치 생활 중 몇 번 간간히 선수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실제로는 한 경기에도 나서지 못했다. 구단에서는 그의 빠른 발을 이용하고자 했으나 투수의 움직임에서 빈틈을 찾아내거나 야수를 기만하는 등의 주루기술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서 교수는 2009년 한국 육상 대표팀 총감독으로 부임해 단거리 선수들을 집중 육성하기도 했다. 서 교수는 2010년 말 뇌경색으로 앓았지만 최근 회복해 다시 후진 양성에 힘써오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서 교수의 부모는 마흔을 넘어 아들을 얻었고 한다. 이름을 ‘말구’라고 지었다. 울산고 1학년 때 육상에 본격적으로 입문한 그는 고3 때 전국대회 남자 100m에서 우승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동아대학교 1학년이던 1975년 국가대표 상비군으로 꼽혀 처음 태극마크를 단 그는 1979년 아시아선수권 최종 선발전에서 10초3을 기록했으나 당시는 수동 계시를 해 공식 기록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해 멕시코에서 10초34로 결승선을 통과했고 ‘전자 계시’를 한 이 기록이 한국기록으로 인정됐다.

한국 육상의 전설 서말구 교수가 별세하자 각계에서 애도를 표시하고 있는 가운데 과거 각 매체를 통해 한국 육상계의 현실을 지적했던 얘기가 다시 회자되고 있다. 당시 그는 1979년 멕시코에서 열린 유니버시아드대회 남자 100m에서 10초34로 한국 신기록을 세운 이후로 31년 동안 자신의 기록이 깨지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체계적인 훈련이 부족했고 선수들도 노력을 안 했기 때문이다”라며 “책상 앞에 오래 앉아 있다고 성적이 오르는 게 아닌 것처럼 육상도 무조건 달리기보다는 효과적인 훈련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울산고 육상부 출신 후배들도 서 교수의 별세 소식을 접하고 아쉬움을 표했다. 울산시체육회 김종도 사무차장은 서 교수의 후배다. 김 차장은 서 교수가 국가대표 시절 가끔씩 시간을 쪼개 모교인 울산고를 찾았다고 회상했다. “후배들과 같이 운동하며 회식도 자주 시켜주고 한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김 차장은 “선배님의 애향심과 남다른 후배 사랑은 언제나 잊지 않겠다”며 아쉬워했다.

이제 울산의 자랑스런 인물 서말구 교수는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그의 고향 사랑과 한국 육상의 부흥을 간절히 바라는 마음은 오래토록 기억될 것이다. 그가 31년간 육상 100m 한국기록을 보유했다는 점도 육상인들은 가슴 깊이 새겨 한국 육상을 도약시키는 자양분으로 삼았으면 한다.

<최인식 편집국 부국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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