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떼까마귀’의 색다른 표현들
‘떼까마귀’의 색다른 표현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1.2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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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병이 빨리 낫게 해주세요, 부자가 되게 해주세요, 요리사가 되게 해주세요, 키 160cm 넘게 해주세요, 용돈 많이 받게 해주세요, 통일되게 해주세요, 남자 친구 생기게 해주세요, 내 소원은 우주 비행사, 안 아프게 해주세요, 공군사관학교 가지, 엑소를 가까이 보게 해주세요, 노래 잘 부르게 좋은 목소리, 비행기 타고 미국에 가고 싶다, 방탄 앨범 살 수 있게 해주세요, 학원 없애기, 시험 안치기, 살 빼게 해주세요…… 초등학교 2학년생들이 ‘떼까마귀’에게 ‘소망’을 담아 보낸 글들이다. 이 밖에도 수백 장의 소망지가 있었으나 지면 사정으로 다 소개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15년 전부터 매년 10월 중순이면 떼까마귀가 울산을 찾는다. 11월 말 현재 약 5만5천 마리가 삼호대숲을 잠자리로 정했다. 때맞추어 떼까마귀를 대상으로 한 미술 회원전도 열렸다. 지난달 18일 울산문화예술회관 전시장 4곳에서 열린 울산현대미술작가회(이하 현작회·회장 양희숙) 회원전 ‘오비미락(烏飛美樂)’이었다.

오래전부터 준비한 회원전의 개막식에 동참할 기회가 필자에게도 주어졌다. 지난 9월 12일 ‘자연이 주는 선물-울산 떼까마귀’라는 주제의 워크숍에 참여해 ‘떼까마귀의 생태학적, 인문학적 접근’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것이 인연이었다. 초점을 떼까마귀에 맞춘 데는 현작회 회원전의 주제 ‘오비미락(烏飛美樂)’의 완성도 높이기에 일조하려는 뜻이 숨어있었다.

현작회가 계절에 때맞추어 울산을 찾아오는 떼까마귀의 생태를 테마로 삼아 회원전을 기획한 것은 참 신선한 발상이었다고 본다. 사실 떼까마귀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정서는 긍정과 부정의 두 가지로 나뉜다. 그 상반된 정서를 현대미술 작가들이 특유의 개성으로 화폭에 담아 작품으로 승화시켜 회원전을 연 것이다. 수준 높고 앞서가는 모임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차제에 이번 회원전을 관람하고 느낀 점을 보탠다.

첫째, 울산의 옛 어른들은 ‘떼까마귀’보다 ‘갈까마구’라고 부르기를 즐겼다. 예나 지금이나 떼까마귀와 갈까마귀는, 관심이 있고 없고의 차이일 뿐, 늘 우리의 생활주변에 있었다.

60년대에는 재래식 분뇨를 겨울 보리밭에 웃거름으로 뿌렸다. 뿌린 뒤에 보리밭은 어김없이 ‘갈까마구’들의 차지였다. 뿌린 분뇨 속에 먹이가 지천으로 널려있었던 까닭이다. 갈까마구는 상여 소리, 논매기 소리, 나무꾼의 소리 등에 단골로 등장한다. 그만큼 역사적으로 사람과 친한 동물이었기 때문이다.

현재는 ‘갈까마귀’라고 부른다. 까마귀과에서 체구가 제일 작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까마귀는 몸집의 크기에 따라 큰부리까마귀, 까마귀, 어치, 까치, 떼까마귀, 갈까마귀 등 여섯 가지로 나눈다. 텃새와 철새로 분류하면 앞의 4종은 텃새고 뒤의 2종은 겨울철새다. 큰부리까마귀는 민가의 음식물찌꺼기(=잔반, 殘飯)를 먹을 때나 제사 혹은 성묘 뒤의 헌식물(獻食物)을 두는 헌식대에서 쉽게 관찰된다. 자동차 전용도로에서 깃이 검은 새가 발견된다면 십중팔구 자동차사고로 죽은 동물의 사체를 처리하고 있는 큰부리까마귀로 보면 된다. 큰부리까마귀는 먹이가 잔반, 헌식물, 동물사체 등인 점으로 미루어 잡식성임을 알 수 있다.

둘째, ‘오비이락(烏飛梨落)’에서 ‘오비미락(烏飛美樂)’으로 발전했다. 올해 찾아온 떼까마귀는 지난달 21일 처음으로 관찰됐다. 일주일 정도 늦은 셈이다. 10월의 따뜻한 기온이 원인인 것으로 보인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는 뜻으로 쓰이는 오비이락(烏飛梨落)은 어쩌다 한 일이 공교롭게도 때가 같아 억울하게 의심을 받거나 난처한 처지에 서게 됨을 이르는 말이다. 까마귀가 부정적인 새로 낙인이 찍혔다면 이 말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연과학적으로 접근하면 틀린 말도 아니다. 까마귀는 감나무밭, 배나무밭 찾기를 좋아하고, 감과 배는 까마귀의 먹이가 되곤 한다. 과수원 주인이라면 부정적인 새로 인식할 수밖에 없다.

이제 긍정적인 새로 인식이 바뀌는 말이 울산에서 생겼다. ‘까마귀 나는 곳에 아름다움과 즐거움이 있다’라는 의미의 오비미락(烏飛美樂)으로, 울산의 떼까마귀를 딱 사랑하기 좋은 말이다. 긍정과 부정의 인식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말을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겠다.

셋째, ‘만파식적(萬波息笛)’의 의미가 ‘만파식오(萬波息烏)’로 확장됐다. 만파식적(萬波息笛)은 피리를 불면 만 가지 근심걱정이 사라진다는 의미의 말로, 삼국사기·삼국유사에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다. ‘적(笛)’은 ‘저’ 혹은 ‘젓대’라 부르는 대나무를 재료로 한 악기로 소리가 크다. 기차의 출발, 경고 등 알림소리도 ‘증기로 내는 피리소리’라는 의미로 ‘기적(汽笛)’이라 표현한다. 신라에 만파식적이 있어 왜적을 물리쳤다면 울산에는 까마귀가 날아올라 만사형통을 이룬다. 오해가 이해로, 불통이 소통으로, 경쟁이 화합으로, 분리가 통합으로 변화한다면 만파식오(萬波息烏)가 되는 것이다.

일본 다도 정신에서 ‘특별함은 평범의 젖을 먹고 자란다’ ‘속된 것에서 가장 큰 것이 나온다’ ‘아주 작은 것에서 가장 큰 것이 나온다’라는 말이 있다. 이번 현작회의 회원전은 울산을 찾는 떼까마귀의 생태를 미술로 승화시키면서 ‘검은 부정의 새’를 ‘지혜로운 긍정의 새’로 바꾸었다. ‘작은 것이 모여 큰 것을 이룬다’ ‘전국의 일반성보다 울산의 독특성을 부각시켰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현작회만이 할 수 있는 파이오니어(pioneer) 정신이다. 눈을 크게 뜨고 관심을 갖고 실천하는 자에게만 보이는 결과다.

<김성수 조류생태학 박사·울산학춤보존회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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