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峨山’을 ‘巨海’라 한다면
‘峨山’을 ‘巨海’라 한다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1.29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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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두 가지 화두가 거의 동시에 회자되는 모양입니다. 하나는 돌아가신 분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태어나신 분 이야기지요. 한 분은 아호가 ‘거산(巨山)’이시고 또 한 분은 ‘아산(峨山)’이신데, 큰일 하려면 아무래도 ‘山’자가 붙어야 되는 것 같습니다. (웃음)”

아산 정주영 전 현대그룹 회장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지난 25일 오전, 울산박물관 1층 로비가 모처럼 사람들로 가득 찼다. 울산박물관이 특별기획전으로 마련한 ‘불굴의 의지와 도전’ 개막식에서 김기현 울산시장이 축사의 테이프를 끊었다. 말머리에서 이번 전시회를 ‘가장 특별한 전시회’라고 점찍은 시장은 아호(雅號) 이야기 대목에서 스피치가 다소 길어졌다. 김 시장은 전날 저녁 서울서 열린 ‘아산 탄신 100주년 기념식’에 다녀온 탓인지 거산, 아산 두 분 중에서 ‘아산’ 쪽에 더 밑줄을 긋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정주영 회장은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큰 그림을 그리신 분이니까 ‘거해(巨海)’라고 불러드리는 게 맞지 않을까요?”

강길부, 이채익 의원과 박영철 시의회의장, 김복만 교육감도 내빈축사 대열에 합류했다. 축사에서 인용된 아산의 어록 중에는 “이봐, 해봤어?”가 단연 으뜸을 차지했다. 1970년 7월 7일, 경부고속도로 준공식에 직접 참석했다는 강길부 의원은 “아산이 2년6개월 만에 429km를 완공한 것은 ‘창의적 도전’의 상징”이라며 존경의 예를 올렸다. 이채익 의원은 “아산이 설립한 울산대 출신이어서 흠모의 정이 더욱 깊다”면서 ‘불세출의 거인’이라고 아산을 치켜세웠다.

이날 가장 이목을 집중시킨 내빈은 누구랄 것도 없이 현대가(現代家)의 사람들. 현대그룹 계열사 CEO를 대표해서 윤갑한 현대자동차 사장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으로부터 꼭 1세기 전, 이 땅에 태어나신 故 정주영 회장님은 한국경제의 근·현대사에서 가장 주목받고 존경받는 분으로… 타고난 혜안과 근면, 성실을 바탕으로 일생을 기업보국(起業報國)의 길을 걸으신 분입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자동차산업이 세계 5대 생산국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것도 그분의 탁월한 식견과 과감한 추진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다음 대목 역시 정곡을 찌르는 데가 있었다. “‘기적’이라는 수식어가 없이는 오늘의 한국을 설명할 수 없다’는 세계 석학들의 말처럼 한국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산 증거이고, 그 증거의 산 증인이 바로 아산 정주영 회장입니다.”

현대미포조선 강환구 대표이사가 윤 사장의 마이크를 이어받았다. “아산께서는 無에서 有를 창조하며 우리나라의 경제개발을 이끌었고, 그 성공의 무대는 대부분 대한민국의 산업수도 울산이었습니다.… 특히 저희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1972년 창업 초기부터 각별한 애정을 쏟으신 특별한 회사입니다. 미포만을 촬영한 항공사진 한 장으로 차관을 빌리러 전 세계를 누비고, 500원짜리 지폐로 선박을 수주하는 등 온갖 시련을 다 겪고 현대중공업그룹을 세계 1위로 성장시키셨습니다.… 저는 그분께서 손수 창업하신 기업에 평생 몸담아 왔지만 오늘 이렇게 그분의 일대기와 사회적 공헌을 조명한 전시회를 접하고 보니 새삼 뜨거운 감동이 밀려옵니다.” 내빈들은 개회식이 끝나자 곧바로 전시실로 향했다. 해설사 역할을 직접 맡은 신광섭 울산박물관장이 대형 ‘소몰이 방북’ 사진 앞에서 잠시 발길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흥미로운 사실을 하나 공개한다. “정주영 회장께서 몰고 가신 소가 1천 마리라지만 사실은 한 마리가 더 있었다고 합니다. 고향을 떠나오실 때 몰고 나온 소 한 마리를 기억하고 계셨다는 얘기지요.” 내빈 일행이 관람을 모두 끝내고 전시실을 빠져나올 무렵 김 시장이 웃음을 머금으며 신 관장에게 덕담 한 마디를 건넨다. “공부 참 많이 하셨네요.”

<김정주 논설실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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