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 사찰을 찾은 사람들
늦가을, 사찰을 찾은 사람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5.11.22 21: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날을 참 잘 받았어. 덥지도 춥지도 않고, 비까지 그쳤으니….” 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낸 내·외빈, 불자 어느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았다. 늦가을은 간선도로변 가로수에도, 창건 27주년을 하루 앞둔 사찰 뒷산에도 곱게 물든 단풍들을 앞세우고 어김없이 찾아와 있었다.

지난 20일 오전 남구 옥동 대한불교조계종 정토사 대웅전 앞뜰. 서동욱 남구청장이 모처럼 환한 얼굴로 내빈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말씨에는 상기된 표정이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전통음식 장인 60명이 오늘 새로 태어났습니다. 두고 보십시오. 이분들이 우리 울산의 음식문화, 확 바꾸어 놓을 겁니다.” 본 행사의 식전행사로 열린 전통·약선(藥膳)음식 요리교실 수료생을 두고 한 말이었다. ‘전통·약선음식 요리교실’은 남구청이 정토사에 맡겨 올 들어 처음 추진한 사업이다. 이날 8주 과정을 무난히 마친 1,2,3기 수료생 60명(일반주부 36+식당업주 24) 전원에게 수료증이 건네졌다. 통도사 전통음식연구소장 원상 스님과 약선음식 전문가 조선지씨가 강의를 맡았다고 했다. (‘약선음식’이란 ‘약이 되는 음식’이란 뜻이다.)

국회 일로 바쁜 정갑윤 부의장 대신 행사장ㅇ르 찾은 박외숙 여사더러 이춘수 정토사 신도회장(정토사 전통음식보존연구회 회장)이 인사치레 삼아 농을 건넨다. ‘벤치마킹해서 중구에서도 한 번 해 보시지요.” 안수일 남구의장, 그리고 남편 몰래 수료과정을 마친 안 의장 부인 최정임 여사가 시야에 잡힌다. 곧이어 아침 차로 급히 내려왔다는 이채익 국회의원도 객석을 바쁘게 누빈다.

오전 11시, 여신도 10명이 혼을 빼놓은 ‘난타’의 여흥이 채 가시기도 전에 ‘제4회 전통·약선움식문화 한마당 행사의 막이 올랐다. 내빈 소개에 이어 주인과 객이 순서에 따라 한 말씀씩 베풀었다. 환영사는 정토사 주지 덕진 스님, 개회사는 주최 측인 (사)울산불교종단연합회장 만초 스님(해남사 주지), 축사는 김기현 시장과 이채익 의원과 서동욱 남구청장의 몫이었다. 내빈석에는 종단이 다른 천태종, 진각종 스님, 그리고 박순환 전 시의회 의장과 박기준 변호사도 눈에 띄었다. 남구선관위 관계자는 거리를 두고 행사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덕진 스님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채식(菜食) 위주의 불교사찰 전통음식은 몸과 마음을 맑게 해주는 약입니다. 색(色)과 향(香)과 맛으로 즐기십시오.…우리 전통음식은 지나친 식욕과 소유욕, 이기심을 멀리해서 지혜롭고 편안한 삶으로 인도해주는 행복의 길잡이입니다.” 만초 스님은 이채익 의원더러 “어디서나 발 빠르게 움직이는 울산의 며느리 같은 분”이라고 소개해 웃음을 자아냈다. 김기현 시장은 “늦가을이 마치 봄날 같다”며 ‘덕진 큰스님의 공덕 덕분’이라고 덕담을 건넸다. 축사 도중 가까이 있는 공원묘원의 관리인이 큰 마이크 소리로 ‘승용차 3대의 주차 이동’을 요구하자 시장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다시 “안내 잘 해주셔서 감사하다”며는 말로 박수와 웃음을 이끌어내는 여유를 과시했다. 김 시장은 다음날(21일)이 정토사 창건 27주년 기념일이란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듯 행사 관련 조크를 이렇게 남겼다. “내일 차릴 잔칫상을 미리 선보인 것 아닙니까?”

다문화가족 작품 10점을 비롯해 수료생 작품 110점이 선을 보인 전통·약선음식 전시회는 설법전에서 오후 5시까지 진행됐다. 남구청은 관람객 약 1천명이 다녀간 것으로 추산했다. 설법전 입구 귀퉁이에선 꽃차 시음의 기회가, 대웅전 언저리에선 황차 시음과 인절미 시식의 기회가 제각기 주어졌다. 남쪽 언덕배기 관음보살상 공간에선 정토사 불자회원들이 손수 빚은 민화(民畵) 수십 점이 따로 전시돼 눈길을 끌었다. 27년 전 남구 옥동 허허벌판의 터에 정토사를 세운 덕진 스님은 사찰 입구까지 나와 동자승한테서나 볼 수 있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손을 배웅하고 있었다. 그의 낡은 도포 소맷자락 사이로 늦가을 낙엽 몇 닢이 소리 없이 지고 있었다. 

<김정주 논설실장 >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