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 사람은 여전히 불편하다
길 위 사람은 여전히 불편하다
  • 주성미 기자
  • 승인 2015.11.12 2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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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길 사람이 먼저다-(중) 도로위 여전히 위험천만

길에서 사람의 가치를 높이는 정책은 단순히 육교를 없애고 보행 공간을 확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한 곳과 다른 곳을 잇는 길은 늘 이동의 과정이다. 사람이 모든 길을 걸어다닐 수는 없기 때문에 일정 거리 이상은 교통 수단이 필요하다. 승용차가 넘쳐나는 도심이나 대중교통이 다니지 않는 외곽의 ‘길’에서 ‘사람’ 중심의 정책은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 해답 없는 출퇴근 길 도심 교통지옥

남구 신정동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A(43·울주군 범서읍 구영리)씨는 늘 오전 7시 40분이면 집에서 나온다. 승용차로 15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지만 집에서 몇분이라도 지체하면 지옥같은 출근길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남산로를 따라 삼호교남교차로 입구에서부터 정체가 시작되면 출근 시간은 짧게는 30여분에서 길게는 1시간 가까이 늘어난다. A씨는 러시아워(rush hour)에 차 안에 오랜 시간 있는 것보다 일찍 출근하는 것을 택했다.

울주군 온산읍에 거주하는 B(31)씨는 평소 통근버스를 타고 온산국가산업단지의 회사로 출근한다. 전날 과음으로 통근버스를 놓치는 날이면 B씨의 출근길은 막막하기만 하다. 승용차를 몰고 나오거나 술을 덜 깬 날은 택시를 찾을 수밖에 없다. B씨는 이곳에서 단 한번도 시내버스를 이용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울산교통관리센터 정기교통량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9월 30일 기준 울산지역 자동차 등록대수는 49만9천550대(승용차 41만1천672대)로 전년도(48만2천846대)에 비해 3.5%(1만6천704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울산지역에 등록된 차량은 가구당 1.14대(지난해 10월 기준)로 집계됐다.

차종별 교통량은 승용차 73.9%로 가장 높았으며 화물차 15.9%, 택시 6.1%, 버스 4.1% 순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승용차는 2.4%p(2만1천596대), 택시는 3.8%p(2천740대), 화물차 0.7%p(1천450대) 각각 증가했지만 버스는 2.3%p(1천208대) 감소했다.

◇ “차 없으면 불편해서 어떻게 해?”

A씨와 같이 출근길 교통정체에 몸서리치면서도 대중교통이 아닌 승용차 이용을 고집하는 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B씨와 같이 대중교통을 아예 이용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업무 특성상 이동이 잦은 경우 등이 있다. 하지만 이들 이유의 공통점은 ‘불편’이다.

3년여 전 울산에 정착한 C(27·여)씨는 “울산에서는 왕복 4차로 이상 큰 도로인데도 버스가 얼마 없고 기본 30분씩 기다려야 한다”며 “외곽에 간절곶, 신불산 등 볼거리가 있다고 해도 막상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가려면 막막하기만 하다”고 토로했다.

울산시에 따르면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울산지역에는 총 148개 노선(시내버스 105개·지선버스 28대·마을버스 15대), 854대(시내버스 748대·지선버스 65대·마을버스 41대)가 운행하고 있다.

지하철이나 경전철 등 여러 대중교통 수단이 있는 다른 대도시와 달리 울산지역의 대중교통 수단은 버스가 유일하다. 하지만 이 버스를 이용하는 비율은 20%도 채 되지 않는다.

2010년 기준 수단분담률은 승용차 37.9%, 도보 26.9%, 버스 17.1%, 택시 12.5%, 자전거 1.8%, 기타 3.8%였다. 수단분담률이란 사람들이 일정 거리를 이동하는 데 각 수단이 차지하는 비율을 분석한 것이다. 울산시는 내년에도 버스의 분담률은 17.1%로 제자리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승용차의 비중은 40.7%로 늘어날 것이라 내다봤다.

◇ 면적 넓고, 인구 적어… 대중교통 한계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는 것은 모든 지자체의 과제다. 극심한 교통 정체 문제는 물론 번화가 일대의 주차난 등 승용차가 늘어나면서 발생하는 각종 문제를 풀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울산은 대중교통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상당한 악조건을 갖고 있다. 땅은 크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울산의 면적은 1천60.46㎢로 서울(606㎢)의 1.75배, 부산(769.82㎢)의 1.33배에 달한다. 반면 인구는 119만2천262명(지난해 말 기준)으로 서울의 12%, 부산의 33.5%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다른 지역보다도 훨씬 넓은 땅에 대중교통을 구축해야하는데도 그 수요는 다른 지역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내버스 업계는 만성 적자를 호소하고 울산시는 환승운임 보전이나 운영 손실보상, 재정지원 등으로 매년 200억대를 지출하고 있다. 지난해 252억원, 2013년 250억원, 2012년 224억원, 2011년 208억원으로 매년 그 규모도 늘어나고 있다.

버스 노선 확충과 만성 적자 사이에서 고민하던 울산시가 최근 내놓은 대안이 있다. 대중교통 소외지역에서 ‘택시’를 버스로 이용하는 ‘마실택시’다. 지역의 개인택시와 협의해 하루 4차례 운행, 이용자가 1천원만 부담하면 차액은 울산시와 울주군이 부담하는 것이다. 울주군 옹태·선필·수정내마을 등 3곳에서 올 초부터 시작한 ‘마실택시’는 지난 9월 말 기준 2천610명(하루 평균 9.6명)이 이용한 것으로 집계됐다.

울산시 관계자는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격으로 버스 업계에 지원되는 예산이 매년 200억대에 달하는데 대중교통 인프라 확충을 위해 무작정 버스 노선을 늘릴 수는 상황”이라며 “마실택시 등과 같이 대안 수단을 확대 적용해 공백을 채울 것”이라고 말했다.

주성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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