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곳간 오일허브 사업, 잿빛일까? 장밋빛일까?
미래곳간 오일허브 사업, 잿빛일까? 장밋빛일까?
  • 강은정 기자
  • 승인 2015.11.1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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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수출국 자급자족 형태로 변모
中 저장시설 많아 ‘오일허브’ 위협요인
해외 곳곳에서 부정적인 시각 많고
석유시장 판도 변화도 악재로 작용
전문가 “오일허브 사업 재검토해야”
▲ 동북아 오일허브(1단계)가 들어설 울산신항 북항지구.

울산의 미래 오일허브.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은 2020년까지 1조6천466억원을 들여 울산신항 매립지에 대형 유조선이 접안할 수 있는 부두와 2천840만 배럴의 원유저장시설을 구축하는 프로젝트다.

북항사업(990만 배럴)의 경우 9월 말 현재 부지 매립공사가 45.4%의 공정률로 진행 중이고, 2018년 하반기부터 본격적인 상업 운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국책사업이기도 한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은 2020년까지 저장시설과 거래소를 만들어 세계 4대 오일허브로 우뚝서겠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009년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타당성 조사에서 생산유발효과 4조4천647억원, 임금유발효과 6천59억원, 고용 2만2천여명이라고 밝혔다. 이 수치는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됐을 경우를 가정해서 낸 결과물이다.

하지만 석유시장의 최근 흐름은 저성장 기조를 보이고 있다. 우리나라의 주요 수출국인 중국, 인도 등이 자체 저장시설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오일허브’ 자리를 위협하고 있다.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2조원대가 투입되는 이 사업이 골칫덩어리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 해외 주요 수출국 자립형으로 돌아서 

아시아 오일허브 기능을 하고 있는 싱가포르의 동북아 수출물량 비중이 해마다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2006년 18.4%에서 2011년 9.1%로 절반가량 뚝 떨어진 후 지난해까지 계속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주요 원인으로는 수출국이었던 중국, 인도 등이 자체 정제시설을 만들면서 수출이 뚝 끊겼다는 것이다. 또한 인근의 말레이시아,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에서도 하나둘씩 석유 저장 시설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싱가포르의 오일허브 기능이 점차 축소되고 있다.

중국은 석유를 생산하면서 중국석유시장은 자급형으로 돌아서고 있다.중국은 대규모 증설로 인해 석유 및 석유화학제품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 중국의 프로필렌 과잉 공급으로 한국 회사들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중국은 우리나라에 위협적인 나라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중국은 현재 2억 배럴을 비축한데 이어 올해 2천만 배럴을 추가하는 등 2020년까지 비축유를 5억 배럴로 늘릴 계획이다.

◇ 해외 부정적 시각 많아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을 해외에서 바라보는 시각도 부정적이다.

석유 가격 결정기관인 플래츠(PLATTS) 데이브 에른스버거 석유글로벌 편집이사는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이 진정한 오일허브로 자리매김하려면 10~20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앞으로 세금혜택 제공, 트레이더 유치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유가 변동에 불확실성이 큰 실정에 전세계적으로 정유시설이 증가하고 있고, 중국, 중동, 인도 등에서 신규 정유시설 가동을 눈앞에 두고 있어 주요 수입국이 수출국으로 변모하는 과도기에 놓여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셰일가스가 대체 에너지원으로 부상하고 있고, 휘발유, 경유 사용량이 10년 후에는 지금의 절반가량 줄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면서 공급과잉이 생겨 정제마진이 줄어들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 여수오일허브 운영 본궤도 못올라

인근 국가들의 사정이 이러한 가운데 여수오일허브 운영도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고 있다.
동북아 오일허브 여수사업은 석유제품과 원유 등 820만 배럴 규모 시설이 2013년 3월부터 운영중에 있다.
석유공사가 29.5%, SK인천석유화학 11%, GS칼텍스 11%, 삼성물산 10%, 서울라인 8%, LG상사 5%, 차이나 AVIATION오일 트레이딩 26% 등이 지분에 참여하고 있다.

2년반이 지난 현재 여수 오일허브는 가동률 30% 이하를 맴돌고 있다.
석유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여수 탱크터미널이 텅텅 비어있다는 소문은 2년 전부터 나돌기 시작했다”면서 “벙커C유 등 소위 돈 안되는 물건 저장 외에는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울산도 오일허브를 조성하고 있지만 이 같은(여수 오일허브) 상황에서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인다”면서 “석유 시장이 점점 위축되고 있고, 중국과 일본 등 인근의 나라들이 저장능력시설을 갖추면서 석유시장 상황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고 밝혔다.    

◇ 기업들 참여 신중한 태도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에 참여하려다 발을 뺀 보팍(Vopak)도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보팍 관계자는 “울산은 지리학적으로 유리한 위치인 것은 분명하나 태풍 등 자연재해가 발생하고 있고, 각종 규제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에너지 패러다임으로 투자보다는 기존 시설을 활용하는 등 신사업을 진행하기에는 검토돼야 할 점들이 많아지면서 투자를 보류했지만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공기업이 최대 주주인 점도 사업성 저하로 지목되고 있다. 지분을 많이 갖지 못해 수익성이 적다면 투자할 이유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이 사업을 전담할 특수목적법인인 코리아오일터미널(KOT)의 투자금액은 6천222억원으로 70%를 내고, 나머지 30%는 참여사들이 출자한다. 참여사 지분은 국내 52%, 해외 48%로 결정됐다.
한국석유공사가 최대 지분을 갖고, 2대 주주로는 시노펙, 이밖에 S-OIL이 11%, 울산항만공사 3% 참여한다.
지역업계 관계자는 “기업은 정부가 참여하는 사업의 경우 공동투자를 꺼려하는 경향이 있어 신중한 태도를 보인다”면서 “공기업, 정부 등이 참여하면 각종 제약을 받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 완성되는 2020년 텅빈 깡통 될라

이러한 상황에 오일허브 1단계 공사는 2017년 마무리된다. 상업운영에 들어갈 시점에는 유가 변동을 예측하지 못한 사업으로 단순 ‘비축기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2단계 사업이 마무리되는 2020년이 되면 그야말로 텅텅 빈 깡통으로 두게 될지 모른다는 전망이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울산항에 있는 터미널 가동률이 지난해부터 평균 50% 이하로 떨어진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라며 “이 탱크시설을 활용해 오일허브를 육성해도 늦지 않다”고 설명했다.

창조 경제는 있는 자원을 잘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 낸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경기침체를 타개하겠다며 규제개혁을 표방했다. 오일허브와 관련된 국제석유거래법, 관세법, 오일트레이더 유치 등의 법안들과 금융인프라 구축, 트레이더 정주여건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5년여째 수많은 세미나, 컨퍼런스 등에서 지적돼 왔다.

그러나 이런 규제개혁 방안들이 이해집단의 반발로 성과를 못내고 있는 실정이다.
얼마 전 타계한 싱가포르 리콴유는 수십여년 전 오일허브 육성 반대에 부딪히자 “생존에 필요하다면 뭐든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 말이 무엇보다 절실한 때이다.

리콴유는 1973년 오일쇼크가 발생했을 당시 원유 확보가 시급했지만 자유로운 수출을 보장하면서 대외 신뢰도를 쌓았다. 이를 바탕으로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나라가 1990년 이미 세계 3위의 정유생산량과 원유 비축량을 가진 대국으로 성장했다.

이 모든 것이 우리나라와 흡사하다. 리콴유의 비전처럼 생존을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다는 마음가짐으로 울산항에 추진 중인 사업을 재검토하면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지역의 한 전문가는 “업계가 바라보는 오일허브의 부정적인 여론을 수렴해 이 주장이 타당하다면 수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고 사업 재개편에 두려워하지 않고 흐름의 변화에 따라 시도는 해야 한다”면서 “정부도 기업가 정신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밝혔다.  

글=강은정·사진=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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