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공화국 울산’ 오명, 이제 벗자
'노조공화국 울산’ 오명, 이제 벗자
  • 윤왕근 기자
  • 승인 2015.11.11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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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노조 투쟁가에 국민 불신 갈수록 쌓여

▲ 조선노연공동파업현대중공업파업집회

연대를 외치다 쓰러진 동지 사라진 벗들이여/ 그대의 외침과 투쟁의 맹세 내 가슴속에/ 외롭던 투쟁 속에 사무친 기억 뜨거운 연대의 손길…(중략)…연대의 빚 빚을 갚는다/ 노동자의 세상을 향해/한 손의 술잔을 높이 올린다/ 내 청춘의 승리를 위해‥(후략)

80년대 한국노동운동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노동가요 ‘내 청춘의 승리를 위해(최도은)’ 중 일부분이다. 혹자는 “노동자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한 청계천 봉제노동자 전태일의 70년대가 한국 노동운동의 태동기라 칭하지만 현재 ‘한국형’ 노동조합과 그 문화가 탄생하게 된 시작점은 1987년 울산으로 보는 것이 정설이다.

30년 가까이 지난 2015년 울산의 노동운동은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가. 최도은의 노랫말에서 나오는 ‘청춘’들은 이제 기득권이 되고 그 청춘들은 수많은 자격증과 스펙을 갖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후배 청춘’들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실제 지난달 울산의 한 방송국에서 한국갤럽에 의뢰해 시민 1천22명을 대상으로 노동운동에 대한 유선전화 여론 조사(표본오차 ±3.1%p, 95% 신뢰수준)를 실시한 결과 50.6%의 응답자가 노동 개혁에 가장 우선돼야 할 과제로 ‘임금피크제 도입을 통한 청년실업 해소’라고 대답했다. 또 응답자의 대부분이 노동운동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긍정적인 부분보다는 ‘파업’이나 ‘시위’ 같은 부정적인 측면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듯 울산의 모습은 ‘노조공화국’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제 노조공화국의 오명을 벗고 ‘노동운동의 메카’인 울산이 ‘노사상생(相生)’ 메카가 되기 위해 필요한 부분을 들어본다.

▲ 선암동사무소쪽공장전경

◇ “달걀은 닭에서 나오는 것… 닭 잡아먹어서는 안돼”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그 직후 일어났던 골리앗크레인 점거농성 등 울산의 노동운동은 운동권 학생들은 물론 일반 대중에게도 지지를 받았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은 노조 설립 투쟁이었다. “우리는 노동자다”라는 것을 선언한 것이며 그것을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다.

당시 노조 설립 직후 현대중공업 조합원의 요구사항을 지금 들어보면 풋풋하기까지 하다.

당시 노조는 ▲안전 재해자 평생 생활대책 보장 ▲식사 처우 개선 ▲작업 전 체조, 작업시간 인정 및 중식시간 체조 1시 실시 ▲훈련소 출신과 공채 입사자의 임금 격차 해소 ▲두발 자율화 ▲3박4일 유급휴가 소급실시 등을 요구했다. 1987년, 128일이라는 현대중공업 사상 최장기 파업을 이끌었던 ‘노동운동 1세대’ 이원건 전 현대중공업 노조위원장(64)은 당시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이 전 위원장은 “당시 회사는 악수(惡手)만 뒀다. 당시 현대중공업은 날이 갈수록 기술력이 발달하고 브랜드 가치는 세계일류가 됐지만 종업원들은 삼류의 대접을 받았다. 이윤이 많이 남았었지만 그것이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정당한 요구에 사측은 구사대를 결성해 테러를 가했다(석남사 1.8 테러)”며 “그것이 80년대 전체를 아우르는 노조 투쟁을 촉발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이같은 이유로 이 위원장은 비상수습대책위원장 자격으로 128일 총파업(1988년 12월 5일~1989년 4월 10일)을 이끌었다.

그는 당시 파업으로 1년6개월간 구속됐다 풀려나 1992년 제6대 노조위원장을 지냈다.

그러나 그는 “당시 노동자는 누가 봐도 배가 고팠고 정당한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파업이 격렬할 수밖에 없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고 주장한다.

이 위원장은 “현재 후배들의 임금 수준이나 복지수준을 보면 옛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위상이 높아졌다”며 “그런데 파업이나 집회의 방식이 옛날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일갈했다.

그는 ‘닭과 달걀’론을 펼쳤다. 이 전 위원장은 “현재 울산 강성노조의 행태를 보면 닭을 잡아먹으려 하고 있다”며 “닭의 임무는 달걀을 많이 생산해서 분배정의를 실현해야 하는데, 달걀은 어디서 나오는가 하면 당연히 닭이다. 그런데 닭을 잡아먹으면 알이 나올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그가 여기서 말하는 닭은 회사고, 달걀은 생산성과 기술성을 일컫는 것이다. 노동운동계의 대선배인 이 전 위원장은 후배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는 경제가 멈춰 성장동력을 잃은 상태다. 기업에 속해 있는 사람이라면 회사의 경제사정이나 돌아가는 사정을 명확하게 보고 글로벌 경쟁시대에서 어떻게 회사의 가치를 키워 얼마나 많은 달걀을 낳게 하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그래야 노동자도 살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 “노동의 메카 울산, 노사관계 변화도 선도해 나가야”

▲ 이철우 노동지청장

노동운동 1세대들의 노력으로 시간이 흐른 현재 울산의 노동자들의 임금과 처우는 국내최고를 넘어 세계최고 수준에 가까워졌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국내 근로자 평균임금의 3배가 넘는 것은 물론 경쟁사인 도요타나 폭스바겐 근로자의 임금보다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울산 대기업 노조의 모습은 대부분 국민의 공감은 물론 특히 젊은층에게는 더욱 더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 이철우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장은 그런 악명(惡名)과 이미지를 벗을 수 있는 것 또한 노조 자신이라고 조언한다.

이 지청장은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의 경우 우리나라 평균근로자의 임금수준보다 현대차는 3배, 중공업은 2배가 넘는다”며 “이같은 상황에서 자신들의 임금만을 높이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대중들은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대자동차와 현대중공업의 경우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경쟁해야 하는 글로벌 기업”이라며 “이들의 임금은 현재 글로벌 경쟁사와 비교해도 더 많은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 지청장은 “이제 임금부분에서 고집을 부릴 시기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우리의 후세대, 즉 아들딸의 일자리를 어떻게 창출해야 하는가, 열악한 상황에 있는 협력업체들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노사가 고민할 때”라고 꼬집었다.

이 지청장은 그 답이 ‘임금피크제 도입’에 있다고 의견을 내놨다. 그는 “우리나라 노사의 경우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많아지면 자동적으로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급제가 70%를 차지하고 있다”며 “결국 그 사람의 능력과 성과와는 관계없이 임금이 자동으로 올라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지청장은 “그로 인해 신입사원과 격차는 더 벌어지고 기업체는 인건비 부담이 크다”며 “이제는 호봉 연공급제로 가기보다는 성과와 능력에 따라 임금을 제대로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고임금 상위 10%의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기업체는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장년들의 정년을 60세까지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렇게 삭감된 돈과 기업체와 정부의 투자가 합쳐져 청년고용에 쓰는 것이 임금피크제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그는 “임금피크제의 경우 국민의 70%가 찬성하고 있다”며 “노조는 사회적 책임을 갖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장년들의 일자리를 어떻게 유지해나갈 것이며, 청년들의 일자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이냐 고민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 지청장은 그럼에도 울산에 노사관계는 개선돼 나가고 있다며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는 “올해 울산의 파업은 10개소로 작년과 동일했지만 근로손실일수는 5천863일로 지난해(13만3천224일)보다 줄었으며 조정 신청 수 또한 37개소로 지난해(52개소)보다 감소했다”며 “올해 울산 노사관계의 특징은 대립은 여전했지만 극단적 선택보다는 슬기롭게 해결하려는 성숙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평했다.

이 지청장은 “‘노동운동의 메카 울산’이라는 말은 결국 울산의 노사관계를 바라보는 눈이 많다는 것”이라며 “우리나라 노동운동을 울산이 선도했듯 임금체계의 변화, 노사 상생의 길 또한 울산이 선도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윤왕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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