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예절 ‘인성교육’ 밑거름
순수공고 ‘울산공고’ 자부심
생활예절 ‘인성교육’ 밑거름
순수공고 ‘울산공고’ 자부심
  • 김정주 기자
  • 승인 2015.11.10 20: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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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렬 울산공고 교장
▲ 박성열 울산공고 교장.

인사성 밝고 예절 또한 바르다. 복도이든 교정이든 장소 불문이다. 윗사람과 마주치면 초면, 구면 안 가리고 공손하게 목례를 한다. 울산공업고등학교 1천700명 학생들에게는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몸에 밴 습관이다. 이 학교 교장선생님이 자나 깨나 강조하는 ‘인성교육’의 효과 덕분이다.

“생활 속의 예절을 늘 강조하지요. 학생들끼리이든 학생과 교사 간이든 만나면 서로 인사하는 것, 이것이 인성 함양의 밑바탕이라고 생각합니다.”

울산공고의 교육목표는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적이고 유능한 기술인 육성’이다.

-첫 발령지 울산공고와 ‘24년 인연’

지난 6일 오후 울산공고 교장실. 박성렬 교장(62)이 인자한 표정으로 객을 맞는다. 이날 오전에는 올해 첫 신입생을 받았다는 온산고등학교 개교 기념식에 다녀왔다. 울산지역 고교교장협의회 회장 자격이었다.

“내년 2월이면 저도 정년퇴임입니다. 앞으로 4개월밖에 안 남은 셈이지요.” 희끗희끗한 머리가 세월의 흐름을 말해준다.

박성렬 교장이 울산공고 교장에 부임한 것은 2013년 3월 1일. 만 2년 반도 더 넘겼다. 이 학교를 나오지는 않았어도 이 학교와의 인연은 매우 질기다. “24년을 이 학교 교정을 밟았고 내년까지 치면 25년을 채우는 셈입니다.” 한 학교에서 24년간이나 머물고 있다는 것, 실로 아무나 맺을 수 없는 대단한 인연이다.

박 교장은 동아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했다. 이후 전기·전자를 가르치는 교사로서 교직에 첫 발을 내디딘 것은 1976년 3월 6일, 울산공고가 첫 발령지였다. 중간 중간에 창원기계공고, 진주공고. 밀양기계공고 교단을 오간 적도 있었지만 다시 돌아오기 마련인 곳은 으레 울산공고였다.

2002년 3월 북구 천곡중 교감 발령을 받은 뒤부터는 더 이상 교단에 서는 일 없어졌다. 정년퇴임도 관리자 위치에서맞게 된 것이다.

-‘선진농업 선구자→선진공업 들보’로

전기과 등 6학과 45학급에 교감 2명

내친김에 울산공고의 자취를 잠시 더듬어보자. 일제강점기인 1937년에 문을 열었으니 햇수로 따지면 장장 78년 역사를 헤아린다. 다만 졸업생 배출 기수로는 올해가 74회로, 지난 2월 74회 졸업생(543명)을 내보내기까지 이 학교를 거쳐 간 졸업생 수는 3만3천268명으로 집계된다.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 김태호 전 내무부장관, ‘옥수수박사’로 불리는 김순권 박사, 그리고 김복만 현 울산시교육감에 이르기까지 울산공고가 모교인 저명인사는 수도 없이 많을 겁니다.”

‘효시’라고 한 박 교장의 말 그대로 울산공고는 울산지역 중·고등학교의 맏형 격이다. 그러나 교명은 시대의 변화를 담아내느라 몇 차례 변천을 겪어야 했다. 이 학교 본관 입구에 세워진 ‘개교 50주년 기념비’(1987. 5. 1)의 비문에서도 그런 소이연을 엿볼 수 있다.

“아득히 흘러 온 반세기! 일제 고난의 시대에서 오늘까지 우리는 이 땅을 지키며 이끌어 왔다. 민족의 삶이 농업에 바탕을 두었을 때 우리는 선진농업을 주도하는 선구자였고, 조국이 공업입국으로 빛나는 지금 우리는 선진공업의 기둥과 들보임을 자부한다. … 모교의 이름이여 영광의 불꽃이여 천만겁 영원토록 활활 타올라라!”

현재 울산공고는 자동화기계과, 전기과, 환경화학공업과, 건축설계과, 토목설계과, 전자통신과 등 6개 학과이고, 학급 수는 3개 학년을 통틀어 45개나 된다. ‘42학급 이상=교감 2명’ 규정에 따라 조규명, 백장현 교감 두 분이 박 교장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 학생 수는 조금 못 미치지만 ‘1천700명’으로 통하고, 교원 수는 교장, 교감을 제외하고 95명이나 되는 대가족이다.

-기능경기대회 수상자는 학교의 영예

“순수공고로는 우리 울산공고가 유일합니다.’ 박 교장이 그럴 만한 이유를 설명한다. 울산지역 5개 공업계열 특성화고 가운데 3개 마이스터고(에너지-·울산-·현대공고-)와 애니원고를 제외하면 울산공고밖에 남지 않기 때문이라 했다.

특히 마이스터고는 한 학년 정원이 120명으로 한정돼 있고 ‘전국구’ 격이다. 하지만 울산공고만은 특성화고를 가고 싶어 하는 울산지역 중학생들을, 그것도 많은 수를 받아들인다. 사실 ‘숨통’ 역할을 다하는 셈이다. 그런 만큼 소명의식도 남다른 데가 있다.

학과가 다양하고 학교가 너르다 보니 울산공고는 전국기능경기대회가 열릴 때마다 ‘메인 캠프 역할’을 한다. 올해 울산서 열린 제50회 전국대회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49개 종목 중 19개 종목의 대회장 노릇을 톡톡히 해냈다. 대회가 빈틈없이 진행될 수 있도록 지난봄부터 T/F팀을 꾸려 착실히 준비해 왔다. 종목별로 책임교사를 두고 직종별 문제점도 미리 파악해서 대처했다.

비록 울산공고 선수단은 금메달 1개, 장려상 3개에 그쳤지만 울산시 선수단은 전국 6위로 선전했으니 그런대로 보람을 느낀다.

‘화훼장식(꽃꽂이)’ 종목에서 처음 출전한 우리 학교 환경화학공업과 학생이 장려상 받은 것, 우린 금메달보다 더 값진 것으로 평가하지요.” 2017년 경기에선 ‘나이 제한’ 규정 덕에 금메달은 보장받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내다보기 때문이라 했다. “부산, 서울에서 서로 데려가서 가르치겠다고 난리지 뭡니까.” 박 교장은 제자에게 닥친 일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재능에다 운까지 겹쳤으나 2년 후 금메달은 ‘따 놓은 당사’이나 마찬가지란 얘기였다.

사실 고등학생이 전국 대회에서 입상한다는 것이 학교로서는 대단한 기회다. 수상 학생은 물론 전체 재학생과 교사들에게도 ‘동기 부여’의 계기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제50회 전국기능경기대회의 수상 소식은 아직도 이 학교 정문과 후문에 영광의 흔적으로 걸려 있다. 수상 학생 외에 지도교사의 이름도 함께.

-기술사관생도 30명씩 매년 과학대 진학

울산공고 교육목표의 한 축은 ‘창의적이고 유능한 기술인 육성’이다. 하지만 대가족을 거느린 교육기관이 ‘기술인 육성’에만 만족한다면 앞날은 암담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학교당국이 해마다 고민하는 것이 ‘취업률’이다.

4∼5년 전과는 달리 지금은 많이 호전됐다. 특히 정부의 배려로 ‘중소기업 기술사관 육성 사업’이 빛을 본 후로는 사정이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 사업 덕분에 울산공고 환경화학공업과 졸업생은 매년 30명씩 울산과학대 환경화학공업과에 진학한다. 올해 초만 해도 이 학과 학생 74명 중 30명이 기술사관생도로서 진학을 보장받았다.

최근 소식이지만 울산의 중견기업 대한유화에서 올해 새로 채용한 신규직원 30명 가운데 17명이 울산과학대 환경화학공업과 내 기술사관생도 출신이다. 이는 울산공고 졸업생이 이 회사의 신규 직원 절반 이상을 차지한 사실을 의미한다.

“그 과정에는 한국화학연구원 울산본부의 이동구 박사나 NCN 회원 여러분의 도움도 컸습니다.” 박 교장의 귀띔이다,

‘중소기업 기술사관생’ 출신들이 약진하는 이면에는 6년 연속 기술사관 육성 우수사업단으로 선정되도록 지원해온 울산과학대의 가시적인 배려도 빠뜨릴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좀체 개선되지 않는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자녀들의 인문계대학 진학을 갈망하는 일부 학부모들의 빗나간 열정이다. 그러나 박 교장은 이런 문제도 사회적 인식의 변화와 더불어 시간이 해결해 줄 것으로 믿는다.

-박맹우 의원과 중학동기… 은퇴 후 척과로

박성렬 교장은 안태고향이 울주군 척과리 양지마을이다. 약 10년 전부터는 오래 된 고향집을 손질해서 지금도 계속 숙소로 사용한다. “동네 이름이 자 ‘척(尺)자’에 열매 ‘과(果)자’를 합쳐 ‘척과’ 혹은 ‘자과’라고도 했던 모양이지요. 아마도 밤과 대추 같은 과일이 많이 나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습디다.”

마을 한 귀퉁이로는 너비가 20…30미터는 좋이 됨직한 척과천이 흐르고 골짜기도 깊다. 거기에다 공기 좋기 이를 데 없고 도심도 아주 가깝다. 그러니 살기에 이만큼 좋은 데도 드물 거라는 것이 박 교장이 은근히 내세우는 자랑거리다.

갑자기 생각이 났는지 교육계 선배이자 고향(울산) 선배이기도 한 박석종 전 울산시교육청 강남교육장 이야기를 떠올린다. ‘제가 중학생 때 석종이 형은 고등학생이었지요. 그분 집이 두동면 ‘비조’이다 보니 버스는 같이 타고 다녔지만 등하교 시간에는 은을암 옆의 서낭재를 타고 넘어가야 했으니 늘 고생을 더 하실 수밖에 없었지요.

학교가 중구 복산동에 있을 때 울산제일중학교를 다녔고, 박맹우 국회의원과는 일중 16회 동기다. 주량은 소주 한 잔, 맥주 한 잔이 전부라 했다.

“내년 2월에 그만두면 당분간 고향 척과에서 농사나 짓고 친구도 부르고 할 생각입니다.” 은퇴 이후의 꿈은 의외로 소박했다. 글= 김정주 논설실장·사진= 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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